[변요한목사 시론] 표적과 깨어있는 믿음

/ 변요한 경찰청교회 목사

2025-01-08     임지영 기자
변요한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요한복음 4:48)

오늘 본문 성경 말씀의 장소는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 집에 포도주가 떨어지자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게 했던 ‘첫 번째 표적’(요한복음 2:1~11)을 행한 곳과 같은 지역입니다.

‘갈릴리 가나’(Cana in Galilee)는 예수님께서 성장하셨던 고향 나사렛으로부터 갈릴리바다 동북(東北) 방향으로 6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아름다운 마을이며, 일찍이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와 보라’(Come and see)고 말한 나다나엘의 고향이기도 한 곳입니다.(요 21:2)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요한복음 1:46)

오늘 본문 앞 요한복음 4장 47절 말씀을 보면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로 오셨다는 것을 듣고” 요한복음 4장 46절 말미에는 “왕의 신하가 있어 그의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버나움에 거주하던 ‘왕의 신하’가 병든 아들의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찾아뵙고자 급히 가나로 왔다는 것입니다.

‘왕의 신하’로 번역된 바실리코스(βασιλεύς, a certain royal official)는 ‘왕에게 속한 방백이나 신하’라는 의미이므로 예수님 당시 갈릴리와 베레아(베뢰아) 지방의 분봉 왕이었던 헤롯 안디바의 신하였음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 왕의 신하가 약 34km나 떨어진 가버나움에서 가나까지 온다는 것은 말을 타고 온다고 해도 쉬운 걸음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 도대체 무슨 일일까요?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로 오셨다는 것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주소서 하니 그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요한복음 4:47) 그렇습니다. ‘왕의 신하’는 사랑하는 아들이 병이 들어 거의 죽게 되었기에 모든 일을 제쳐두고 모든 체면을 내려놓고 달려올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왕의 신하가 예수님을 찾아온 것을 기록한 요한복음 4장 47절에서 두 단어에 대해 알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먼저 “청하되”의 원어인 ‘에로타’(ἠρώτα)는 ‘에로타오’의 ‘미완료 시제’입니다. 따라서 “듣고 가서 청하되”는 예수가 매우 특별한 분임을 알고 급히 달려와서 거듭거듭 아들을 살려달라고 간청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들이 “거의 죽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거의 죽게 되었다”는 말도 미 완료 시제를 사용하였고, “죽게” 할 때 사용된 ‘아포드네스케’(ἀποθνήσκειν)의 원형 ‘아포드네스코’는 ‘자연사’라는 의미이므로 고관인 왕의 신하의 아들은 태어날 때부터 병약한 상태였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 부모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의 반응은 무안할 정도로 차갑습니다. 요한복음 4장 48절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여기서 또 주의하여 볼 단어가 “너희는”입니다. 분명히 예수님은 그 고관의 간청에 대해 답을 하시고 계십니다. 그런데 왜 “너희”라는 ‘복수형’일까요?

이는 그 고관뿐만 아니라 그 주변에 함께 있던 자들에게도 말씀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여 ‘왕의 신하’가 하는 요구에 주변에 서 있던 갈릴리 사람들도 예수님이 과연 어떤 표적과 기사를 행하실 것인가 기대하고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왕의 신하인 고관의 간청에 대해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요한복음 4:50) 하시며 표적을 보이신 목적은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능력을 통하여 예수님이 누구신지 깨닫고 예수님을 믿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예수님의 진면목을 보지 못하고 ‘표적’ 그 자체를 보는 것을 목적으로 삼으니 예수님이 답답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왕의 신하 아들을 치료해주시기 직전에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요한복음 4:48) 이 말씀은 ‘간접적인 거절’입니다.

이에 예수님을 비난하고 공격하기 위해 “예수를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마가복음 8:11)처럼 예수님께 ‘표적과 이적’을 더 보여달라고 했던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던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이 생각납니다.(마태복음 12:38~41)

여기서 예수님은 “니느웨(현 이라크 지역)라는 그 악한 도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진심으로 회개함으로 구원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들도 진심으로 회개하고 복음을 진실하게 전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영적 무지’로 깨닫지 못하여 나를 ‘십자가’에 못 받았다. 그러나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표적’인 십자가에 죽음과 성경에서 약속하신 말씀대로 사흘 만에 부활함으로 믿는 자에게 산 소망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직 영적 무지에 깨어나지 못한 분들에게 회개의 은혜를 더해 주셔서 2025년에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축복을 함께 받으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변요한 목사 약력>

- 경찰청교회 시무
- 극동방송 운영위원
-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 대한민국국가조찬기도회 경찰자문위원
- 서울대학교 동창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