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요한목사 시론] 인내와 성취의 축복

/ 변요한 경찰청교회 목사

2024-12-06     임지영 기자
변요한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히브리서 6:18)

피난처를 찾는 사람은 큰 안위를 받을 수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피난처를 찾으면 소망이 이루어지고 영혼의 닻을 내릴 수 있습니다.

머리글 성경 말씀은 ‘앞에 있는 소망’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소망은 그리스도를 통해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현재에 이룩된 것이고, 앞으로 완성될 구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구원을 받았지만 완전한 구원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오, 주님! 당신께서 우리를 지으셨으므로 우리가 당신 안에서 안식할 때까지 우리의 영혼은 안식이 없나이다”라고 말했으며, 성경 사무엘하 22장 3절에서는 “내가 피할 나의 반석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요 그에게 피할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구원자시라 나를 폭력에서 구원하셨도다”고 하였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을 약속하셨습니다. 히브리서 6장 14절은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2장 2절에서 하나님은 아브람(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의 복이 될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이 약속이 바로 이루어졌을까요? 아닙니다. 아들을 주겠다는 이 약속을 받을 때가 아브라함 나이 75세였고, 이 소망이 성취될 때가 100세였으니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이 약속이 이루어지기까지 25년 동안 아브라함에게 요구되었던 것은 ‘인내’였습니다.

이 인내는 아브라함이 25년 동안 기다리는 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한 이후 25년 만에 아들 이삭을 주시고 다시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아브라함은 로마서 4장 18절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처럼 ‘영혼의 닻’을 하나님께 두고 ‘소망의 닻’을 하나님께 내려 ‘인내’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히브리서 6:13) 그리고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나니”(히브리서 6:17)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약속에 대해 보증을 서 줄 만한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는 까닭에 당신 자신을 보증인으로 내세울 수밖에 없을 정도로 크신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그런 분께 약속을 받아 성취를 이룰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히브리서 6장 15절입니다.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영국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은 1911년 노르웨이 탐험가 아문센에게 남극점 최초정복 타이틀은 빼앗겼지만, 1914년 ‘남극대륙 횡단’이라는 새로운 타이틀에 도전하기 위해 27명의 대원들과 ‘인듀어런스’(Endurance)라는 배를 타고 탐험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그의 배 인듀어런스호는 항해 도중 1915년 10월 27일 ‘빙붕(氷棚, ice shelf)’, 거대한 얼음덩이에 끼어 그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난파되고 맙니다. 필사적으로 탈출 후부터 그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극한의 고난을 겪었습니다. 영화 60도까지 떨어지는 살인적인 추위에 손발이 썩어들어가는 동상이 시작되었고, 남극에만 있는 수개월 동안 끝나지 않는 칠흑 같은 밤, ‘극야’(極夜, polar night)에 빛 한줄기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식량이 바닥나 ‘썰매 개’를 다 잡아먹고, 얼어붙은 펭귄을 씹어 먹으며 굶주림을 견뎌야 했습니다. 거기다 무엇보다 생존장비마저 모두 잃고 구조될 수 없을 것이라는 죽음의 공포와 싸워야 했습니다. 그런 그들이 무려 634일간의 항해 기간 상상하기 힘든 사투 끝에 1916년 8월 30일 단 한 명의 사상자도 없이 전 대원이 구조되었습니다.

이에 전 대원을 무사히 지켜낸 ‘섀클턴’의 리더십이 많은 이들에게 회자(膾炙) 되며 여러 책에서도 이를 다루었습니다.

그들은 2년이라는 긴 시간, 극한의 고난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요? 그 이유 중 하나로 그 배의 이름을 거명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인듀어런스’(Endurance), ‘인내’입니다. 그들이 이 탐험에서 얼마나 ‘인내’가 중요한지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인내’가 하나님의 성품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출애굽기 34:6)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베드로전서 2:23)처럼 ‘인내’의 절정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오래 참으시는 당신의 사랑으로 이 나라를, 이 민족을, 이 사회를, 이웃을 그리고 가족과 우리를 평화롭게 해 주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