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요한목사 시론] 굽은 길과 구부러진 삶
/ 변요한 경찰청교회 목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신명기 8:2)
이준관 시인의 ‘구부러진 길’이란 제목의 시가 생각납니다.
‘나는 구부러진 길이 좋다. 구부러진 길을 가면 나비의 밥그릇 같은 민들레를 만날 수 있고 감자를 삶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날이 저물면 울타리 너머로 밥 먹으라고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구부러진 하천에 물고기가 많이 모여 살 듯이 들꽃도 많이 피고 별도 많이 뜨는 구부러진 길. 구부러진 길은 산을 품고 마음을 품고 구불구불 간다. 그 구부러진 길처럼 살아온 사람이 나는 또한 좋다. 반듯한 길 쉽게 살아온 사람보다 흙투성이 감자처럼 울퉁불퉁 살아온 사람의 구불구불 구부러진 삶이 좋다. 구부러진 주름살에 가족을 품고 이웃을 품고 가는 구부러진 길 같은 사람이 좋다.’
시인의 이러한 정을 느끼고 싶어 지난 금요일 강원도 산간 일대를 둘러보았습니다. 일직선으로 뚫린 길보다 함께한 삶 가운데 굴곡을 같이 한 아내를 위함으로 시작된 마음이었지만, 산 따라 물 따라 구불구불 굽이굽이 휘어진 강줄기를 따라가는 길이 정겹고, 과연 이 길의 끝이 어디일까? 곧 도착하겠지! 라는 ‘호기심’도 발동하고, 다시 시작점이 나오는 것이 또 다른 출발선에 서 있는 것 같아 좋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끝이 그냥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끝은 바닥이며 절망이고 좌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결과에만 의미를 부과하는 직선적 삶을 바라기 때문입니다. 다소 불규칙하게 움직이고 예상치 못한 일들에 대한 불안감은 있지만 설렘과 기다림이 있는 곡선의 세상은 즐기는 여유로움과 운치가 있습니다.
끝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기에 하루의 끝에서 내일이 시작되고 10월 31일에서 11월 1일이 시작되고 주말을 거쳐 주초가 시작됩니다. 주초가 되기 전에 하나님과 함께 하는 주일이 있기에 하나님이 끝이라고 하지 않으면 끝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한 번의 시도 끝에 맞이하는 기대 이하 혹은 기대 이상의 성과도 또 다른 성취를 위한 출발선이며, 모험심과 도전정신을 가지게 합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도 가나안 땅을 가기 위해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먼저 해안선을 따라서 가는 가장 빠른 길이 있었습니다. 거리상 볼 때 250km로 1주일 정도이면 가나안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길을 통과하려면 ‘블레셋’ 사람들과 전쟁을 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곳에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바란 광야와 네게브 지역을 거쳐서 가는 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곳도 이미 거주하는 족속들이 있었기에 전쟁을 치러야 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길은 시내(시나이) 반도 중앙부를 가로질러 모압 평지를 경유해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왕의 대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엄밀히 말하여 이 세 길 어느 곳으로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나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의 대로를 통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되었지만, 처음에는 시내 반도 남단까지 내려가는 완전한 우회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빠르게 갈 수 있는 직선 도로가 아니라 완전히 우회하여 곡선 길로 그들을 인도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오늘 머리글 신명기 8장 2절 말씀과 이어지는 3절입니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라”(신명기 8:3)
이는 광야의 길이라는 곡선의 길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바로 세우기 위함으로, 훈련을 시키신 것입니다. 애굽에서 노예로 400년을 살면서 습관화된 노예근성을 빼내기 위함이며,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아가게 함이었습니다. 그렇게 살아간다면 아무리 광야와 같은 힘든 상황이라 하더라도 살아낼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길도 희망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단강과 가나안 땅에서 전쟁이 남아 있는 것처럼, 우리도 건너야 할 문제도 있고 치열하게 싸워야 할 삶도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살아가야 할 길을 생각하면 곡선의 길처럼, 두려운 생각이 들고 막막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걸어가셨던 길도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때론 인기도 얻고 때론 능력을 행하기도 하셨지만, 늘 십자가를 향해가는 삶을 사셨고 이루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한 주도 예수님을 좇아 내딛는 발걸음마다 머무는 손길마다 아름답게 하시고 축복이 가득하게 하시길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변요한 목사 약력>
- 경찰청교회 시무
- 극동방송 운영위원
-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 대한민국국가조찬기도회 경찰자문위원
- 서울대학교 동창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