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법률] 죽음을 연료로 기적을 배송하다

2024-10-30     송지나 기자
정창민

지난 10월 25일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부 및 소속기관 국정감사에서는 쿠팡의 산업재해 사망사고에 대한 의원들의 문제 제기가 있었다. 국회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올해 8월까지 쿠팡 근로자 20여명이 일하다 사망했다.

최근 쿠팡에서 심야 로켓배송 업무를 해오던 고(故) 정슬기 씨는 지난 5월 28일 오후 출근을 앞두고 자택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심실세동과 심근경색 의증으로 사망했고 이는 산업재해로 인정됐다.

그는 생전에 주 6일 동안 오후 8시 30분경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하루 약 10시간 30분 동안 일해 1주 평균 노동시간이 63시간에 이르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다. 이는 야간근무 시간 할증을 적용하면 약 77시간에 이르는 고강도 장시간 노동이다.

그가 생전 쿠팡 CLS 직원과 주고받은 카톡에서 “네 부탁드립니다. 달려주십쇼ㅠ”라는 메시지에 “개처럼 뛰고있긴해요..”라는 답장은 그의 상황에 너무나 적확한 표현이기에 애절하다.

 

국제적 기준과 동떨어진 한국의 노동환경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연간 근로시간은 1915시간으로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근로시간이 길고 OECD 평균보다 약 199시간 더 길다.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발표한 ‘일-생활 균형시간 보장의 유형화’ 연구에 따르면 한국 노동자들은 장시간 근로에 노출되었을 뿐만 아니라 개인이 자유롭게 시간배분을 할 수 있는 권리인 시간 주권 수준도 매우 낮아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한국 노동자들은 휴식이 필요할 때 쉬지 못하고 일과 생활의 균형이 무너지고 있다. 더 오래 일하고 더 많이 일하면서 개인의 삶, 건강, 일상은 무너지고 있다. 장시간 노동으로 일과 생활의 균형이 무너진 그 끝자락에 ‘과로사’가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노동기구(ILO)가 공동으로 발표한 <Long working hours increasing deaths from heart disease and stroke>에 따르면, 주 최대 근로시간이 55시간을 넘을 경우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근로시간이 주 35~40시간인 근로자와 비교해봤을 때 근로시간이 주 55시간 이상인 근로자의 뇌졸중으로 인한 사망률과 심장병으로 인한 사망률이 각각 35%, 17% 더 높았다. 그리고 과로로 인한 사망은 노동자가 재직 중에도 발생하지만 많은 경우 과로를 경험한 노동자의 은퇴 후 과로의 영향으로 조기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산업재해로 인정되는 과로사는 과도한 업무로 인해 피로가 누적되어 사망하는 것을 말하며 의학적으로 뇌출혈, 뇌경색, 심근경색 등 뇌심혈관계 질환을 의미한다.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 제1항 제2호 및 동법 시행령 제34조 제3항은 과로를 급성과로, 단기과로, 만성과로로 나눠 규정하고 있다.

급성과로는 ‘증상 발생 전 24시간 이내에 업무와 관련된 돌발적이고 예측 곤란한 사건의 발생과 급격한 업무 환경의 변화로 뇌혈관 또는 심장혈관의 병변 등이 그 자연경과를 넘어 급격하고 뚜렷하게 악화된 경우’를 말한다.

단기과로는 ‘발병 전 1주일 이내의 업무의 양이나 시간이 이전 12주(발병 전 1주일 제외)간에 1주 평균보다 30% 이상 증가되거나 업무 강도·책임 및 업무 환경 등이 적응하기 어려운 정도로 바뀐 경우’를 말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 만연해 있는 만성과로는 ‘업무의 양·시간·강도·책임 및 업무 환경의 변화 등에 따른 만성적인 과중한 업무로 뇌혈관 또는 심장혈관의 정상적인 기능에 뚜렷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육체적·정신적인 부담을 유발한 경우’를 말한다. 구체적으로 ‘발병 전 3개월 이상 연속적으로 과중한 육체적·정신적 부담을 발생시켰다고 인정되는 업무적 요인이 객관적으로 확인되는 상태’다.

특별히 만성적인 과중한 업무 해당 여부와 관련하여 발병 전 12주 동안 업무시간이 1주 평균 60시간(발병 전 4주 동안 1주 평균 64시간)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업무와 질병과의 관련성이 강하다고 평가한다.

또 발병 전 12주 동안 1주 평균 업무시간이 52시간을 초과하는 경우 근무일정 예측이 어려운 업무, 교대제 업무, 휴일이 부족한 업무, 육체적 강도가 높은 업무 등 업무부담 가중요인에 노출된 경우 업무와 질병과의 관련성이 강하다고 평가한다.

위와 같은 우리나라의 과중한 업무에 대한 인정기준은 국제적 기준과 비교할 때 훨씬 더 까다롭다. 과로가 근로자들의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을 고려하면 가혹하리만큼 까다롭다. 만성적인 장시간 고강도 근로가 만연한 우리나라의 노동환경과 과로의 위험성을 가벼이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가 과로로 인한 업무상 질병 인정기준에도 배어있는 것이다.

한국인의 탄생을 쓴 작가 홍대선 씨는 저서에서 한국을 ‘쉴 줄 모르는 선진국’이라고 표현한다. 한국인들이 죽을힘을 다해 노력하는 그 근원에 대해 저자는 “어떤 고생을 해도 살아있기만 하면 다행이었다. (중략) 그들은 쉬지 않고 부지런히 노력해도 굶주렸다. 그러나 살아남는 데에는 성공했다. 한국인에게 삶은 곧 노력의 연속이다. 노력은 한국인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적이며, 한국인 자체다. OECD 국가 중 근로자의 연평균 근로시간이 1위인 건 당연하다.”고 말하며 척박한 한반도 땅에서 살아남은 한국인들의 DNA에 생존을 위한 투쟁으로서의 노력이 새겨져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렇게 한국인들의 DNA에 깊이 박혀있는 생존을 위한 투쟁으로서의 노력이 오히려 한국인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주 55시간 이상 근로한 노동자들의 뇌졸중으로 인한 사망률과 심장병으로 인한 사망률이 각각 35%, 17% 증가한 사실은 결코 가벼이 넘길 수 없는 결과다. 생존을 위한 투쟁으로서의 노력이 삶의 평안이 아니라 죽음을 가져오는 현실에서 우리는 ‘과중한 업무(과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과중한 업무로부터 노동자들을 보호하려면

먼저 12주 동안 업무시간이 ‘1주 평균 60시간’(발병 전 4주 동안 1주 평균 64시간)을 초과하는 경우로 규정된 만성과로는 WHO와 ILO의 기준에 따라 ‘1주 평균 55시간’으로 변경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를 기준으로 업무와 질병과의 관련성을 평가하는 1주 평균 업무시간을 다시 산정해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가 하고 있는 장시간 근로가 죽음과 연결되어 있음을 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과중한 업무를 판단하는 기준을 완화하여 과로로 인한 업무상 질병으로 발생하는 비용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것이 아닌 국가와 우리 사회가 함께 부담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과로에 대한 비용을 체감할 때 비로소 우리의 인식이 바뀔 수 있다.

그리고 과로로 인한 사망의 책임을 사업주, 경영책임자에게 부가하여 사업주 스스로 과중한 업무로부터 근로자들을 보호할 수 있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2022년 대검찰청이 배포한 중대재해법 벌칙 해설서에서는 이와 같은 인식을 반영하여 과로사와 같은 뇌심혈관계 질환을 업무의 유해·위험 요인으로 인한 중대산업재해로 봤다.

아직 이와 관련된 법원의 판단은 내려진 바 없으나, 쿠팡에서 심야 로켓배송 업무를 해오던 고(故) 정슬기 씨의 유족들이 쿠팡의 배송전문 자회사인 CLS와 대표이사를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고소한 바 있어 이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내려질 예정이다.

시간 주권 수준이 낮은 우리나라 노동환경에서 근로자들의 장시간 고강도 노동을 방지하기 위해 사업주 책임을 강화하는 것은 필수적이므로 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해 본다.

 

죽음을 연료로 배송된 기적

우리나라가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에서 이루어낸 급격한 경제성장을 ‘한강의 기적’이라 부른다. 우리가 이루어낸 급격한 경제성장은 죽을힘을 다해 노력한 노동자들의 피와 땀, 그리고 그들의 죽음이 연료로 사용됐다.

그렇게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낸 우리는 또다시 우리에게 기적이 배송되길 바란다. 앉은 자리에서 클릭 한 번에 원하는 물건이 당일 배송되는 기적, 도로포장은 내가 운전하는 시간이 아닌 밤사이 시작하고 끝나는 기적, 24시간 동안 멈추지 않고 편의점, 병원, 약국 등이 운영되는 기적을 바란다. 다른 나라에서는 꿈꾸지 않는 기적을 우리는 매일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간다.

그러나 이는 기적이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값지고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생명을 연료 삼아 배송된 누군가의 죽음이다. 우리 사회가 차라리 불편함을 택하길 원한다. 기적과 같은 일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정창민 변호사 프로필>
-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법학전문석사
- 제12회 변호사시험 합격
- 前법률구조공단 실무수습
- 現 법무법인 사람앤스마트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