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요한목사 시론] 십자가와 침묵의 힘
/ 변요한 경찰청교회 목사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총독이 크게 놀라워하더라”(마태복음 27:14)
많은 산악인이 혼자 하는 산행은 위험하다고 말립니다. 그것도 새벽 이른 시간 홀로 산행은 더 위험하다고요. 그러나 저는 혼자 산행을 합니다.
왜 혼자 산에 오를까요? ‘리트릿’(retreat)입니다. 이 단어는 ‘퇴각, 후퇴, 물러남’이라는 의미가 있고, 가톨릭에서는 ‘피정’(避靜)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를 ‘침묵’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제가 그동안 알게 모르게 뱉었던 말이나 행동들을 돌아보며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세밀하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못 들은 것이나, 잘못 들은 것이나, 내 생각대로 해석한 것이 없는지 듣고 싶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머리글처럼 십자가를 지시기 전 ‘침묵’하셨던 그 ‘침묵’의 의미와 행하심을 배우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침묵하셨을까요? 말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 재판 과정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어서 자신에게 십자가형이 선고되고, 그 선고에 따라 십자가형이 집행되도록 기획해 놓으셨다는 것을 아시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재판 전날 저녁 겟세마네 동산에서 필사적으로 기도하시며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확인했습니다. 그것도 마태복음 26장 39절과 42절에서 보듯이 두 번씩이나 말입니다.
그러므로 그 뜻은 누구도 막을 수 없고 변경시킬 수 없다는 것을 예수님은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비록 빌라도가 예수님 앞에서 스스로 처분을 내리는 것 같지만, 예수님은 이미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가 자기의 역할만 하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는 구약에서부터 예정된 사실임을 아셨기에 침묵하신 것입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이사야 53:7)
예수님의 침묵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사실 십자가는 고대시대의 사형 집행 도구입니다. 아마도 인간이 개발한 사형 도구 가운데 가장 끔찍한 형틀일 것입니다. 고통의 강도나 고통받는 시간이나, 더욱이 고통당하고 죽어가는 그 모습이 공개되는 것 모두 그럴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십자가는 저주요, 모두가 외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후 십자가의 의미가 달라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죄를 사하셨기에 십자가는 용서의 상징이 되었으며, 하나님과 사람이 이 십자가에서 화해했기 때문에 이 십자가는 화해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 십자가 위에서 결정적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이 십자가는 사랑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십자가는 ‘용서’요, ‘화해’요, ‘사랑’입니다.
침묵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을 해야 하는데 용기가 없어서 입을 다무는 것은 비겁한 침묵이며, 곁에 누군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못 하는 것은 어색한 침묵입니다. 그러나 지금 빌라도의 법정에서 보여주신 예수님의 침묵은 다릅니다.
십자가를 지기 위해 하실 말씀을 하지 않으신 침묵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실 말씀을 하지 않으신 침묵입니다. 그래서 이 침묵은 우리에게는 사랑입니다.
그리고 침묵에는 오늘 성경 말씀처럼 힘이 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의 침묵을 보면서 그 안에 놀라운 힘이 있음을 느꼈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죄인을 심문해 보았지만, 이렇게 침묵하는 죄수는 처음 봅니다.
그러면서 진실을 알게 됩니다. “이는 그가 그들의 시기로 예수를 넘겨준 줄 앎이더라”(마태복음 27:18)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서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마태복음 27:23)
예수님의 ‘침묵의 힘’은 누가복음 23장 47절에서 더욱 놀라운 힘으로 나타납니다.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
여기에서 로마 장교인 백부장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재판의 전 과정을 지켜보았던 사람이며, 처형과정을 집행하는 군 지휘관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결국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침묵’의 의미와 예수님이 몸소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용서와 화해, 사랑을 우리가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실천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변요한 목사 약력>
- 경찰청교회 시무
- 극동방송 운영위원
-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 대한민국국가조찬기도회 경찰자문위원
- 서울대학교 동창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