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을 보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호랭떡집》
[그림책을 보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호랭떡집》
  • 송지나 기자
  • 승인 2023.02.01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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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랭떡집, 서현 글·그림, 사계절 출간, 2023년 1월. (사진=창비 제공)
호랭떡집, 서현 글·그림, 사계절 출간, 2023년 1월. (사진=사계절 제공)

노란색 스쿠터를 탄 청년이 맛있는 떡을 싣고 배달을 갑니다. ‘꿀 넣으면 꿀떡, 물 넣으면 물떡’이라며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달려갑니다. 그 모습을 본 배고픈 호랭이 한 마리, 앞을 가로막고 떡 하나 얻어먹었는데 그 맛이 아주 기가 막힙니다.

호랭이는 떡 맛에 반해 실컷 먹고 싶은 욕심으로 아예 ‘호랭떡집’을 차렸습니다. 벌써 떡 주문이 들어왔어요. 그런데 주문한 곳이 지옥입니다. 염라대왕 앞으로 보내달라네요. 호랭이는 무지개떡, 시루떡, 송편, 꿀떡, 가래떡, 절편, 화전 등등을 온 정성을 다해 빚어 생일 떡 케이크를 만들었습니다.

호랭떡집 본문 이미지. (사진=사계절 제공)
호랭떡집 본문 이미지. (사진=사계절 제공)

자, 이제 배달을 가 볼까요. 어라! 지옥을 지키고 있는 온갖 이상한 요괴들이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하며 달려들어 떡을 모두 먹어버렸어요. 큰일 났다 싶어 어찌할 줄 모르던 호랭이는 남은 떡고물 주워 모아 몸에 바르고 떡인 척하고 있으니, 지옥요괴들이 염라대왕 앞으로 데려갑니다.

셀 수도 없이 나이를 많이 먹었지만 앳된 얼굴의 염라대왕은 기뻐하며 생일 떡인 줄 알고 호랭이 꼬리를 덥석 베어 물어요. 그 바람에 호랭이는 아파죽겠다며 펄쩍 뛰어오르고 그 모습을 본 지옥요괴들은 깜짝 놀라 먹은 떡들을 뱉어냅니다.

호랭떡집 본문 이미지. (사진=사계절 제공)
호랭떡집 본문 이미지. (사진=사계절 제공)

지옥요괴가 먹고 뱉은 떡은 떡요괴가 되어 지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리고는 기절한 호랭이를 머리에 이고 잽싸게 호랭떡집으로 돌아옵니다. 떡요괴들이 만든 지옥떡은 인기 상품이 되어 불티나게 팔리네요.

『커졌다』의 소년과 『눈물바다』의 소년, 『간질간질』의 나들과 『호라이』의 호라이도 떡을 사 먹으러 왔습니다. 서현 작가님도 줄 서 계시네요. 염라대왕도 온 건 비밀이예요! 얼마나 맛있을까 궁금해 저도 하나 먹어 보고 싶습니다.

호랭떡집 본문 이미지. (사진=사계절 제공)
호랭떡집 본문 이미지. (사진=사계절 제공)

표지를 다시 보니 호랭이 얼굴이 호랭이가 만든 떡으로 되어 있어요. 호랭이가 떡이고 떡이 호랭이인 물아일체 상태입니다. 오랜 시간 동안 한 가지 일에 전념해온 장인들을 보면 왠지 모를 아우라가 느껴지는데 호랭이도 그렇습니다. 그 먼 옛날 해와 달이 된 오누이가 있던 그 시절부터 떡을 좋아했으니 얼마나 맛있게 만들었을지는 표지만 봐도 짐작 가능합니다. 하하하.

이 세상에 태어나 백일 동안 잘 지냈으니 앞으로 백 살까지 건강하게 잘 살라는 백설기와 붉은색이 재앙을 막아주어 좋은 일만 있을 거라는 수수팥떡, 오색 만물의 조화로움처럼 속이 꽉 차고 넓은 마음을 가지라고 먹는 오색 송편은 아이의 백일과 생일을 축하해주는 떡입니다.

새집으로 이사를 했거나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는 좋은 일이 많이 생기기를 바라면서 이웃과 떡을 나눠 먹었습니다. 설이나 단오, 추석에 먹는 떡도 좋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귀한 쌀로 만든 쫄깃하고 고소한 떡에는 경사를 축하해주고 복을 비는 의미가 담겨 있어 우리 조상들의 선한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 옛날 호랑이가 떡을 탐낸 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림책인데 칸칸이 나뉜 그림이 만화 같아 책을 좋아하지 않는 어린이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별다른 설명 없이 그림만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는 다음 장의 그림이 궁금해 책장을 빨리 넘기게 합니다.

지옥요괴가 떡 하나 달라며 호랭이 괴롭히는 장면이나, 떡요괴가 튀어나와 지옥요괴들을 괴롭히는 장면은 너무 웃겨서 몇 번을 들여다봐도 재밌습니다. 언제나 강자인 줄만 알았던 호랑이가 떡을 빼앗기는 모습이나, 염라대왕에게 꼬리를 물려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라는 모습은 그동안 호랑이에게 당하기만 했던 옛이야기 주인공들을 대신해 통쾌함을 느끼게도 해줍니다. 이렇듯 무섭고 두려운 호랑이와 염라대왕도 친근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그림책의 매력입니다.

한편, 염라대왕의 생일 떡을 몰래 먹은 걸 들킨 지옥요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잘못을 했으니 벌을 받았을 텐데 과연 어떤 벌을 받았을까요? 혹시 무한히 떡 만드는 벌을 받고 있는 건 아닐까요?

 

 

글쓴이·김선아

그림책씨앗교육연구소 대표

그림책을 좋아하여 여러 사람들과 그림책을 나누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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