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을 보다] 속상하고 누군가가 미워질 때... 《왼손에게》
[그림책을 보다] 속상하고 누군가가 미워질 때... 《왼손에게》
  • 김정아 기자
  • 승인 2022.10.11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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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원 그림책, 사계절, 2022년 9월 (사진=사계절 출판사)
한지원 그림책, 사계절, 2022년 9월 (사진=사계절 출판사 제공)

어머, 왼손잡이구나! 글씨를 아주 잘 쓰네.’

그런데 조금 불편해요. 연필로 글씨를 쓰면 손에 검게 묻어나요. 손이 글씨 위로 지나가니까 글씨가 뭉개져 공책도 더러워져요. 그래서 글씨 쓸 때 불편해요.’

그러면서 오른손으로 글씨를 써서 제게 보여줍니다. 왼손으로 쓴 글씨만큼은 아니지만 오른손으로 쓴 글씨도 꽤 잘 쓴 글씨입니다. 양손을 다 잘 사용할 수 있어 좋겠다고 하니 멋쩍은 듯 씩 웃습니다. 왼손잡이라서 받은 불편한 질문과 눈초리를 여러 번 겪은 열두 살 어린이의 고충이 느껴지는 웃음이었습니다.

오른손잡이면 어떻고 왼손잡이면 어때요. 두 손을 다 사용해 온전한 나를 만들어 가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데, 정작 그걸 아는 어른들의 편협한 생각이 차별을 불러오는군요.

(사진=사계절출판사 제공)
(사진=사계절출판사 제공)

마우리츠 코르넬리스 에셔의 그리는 손을 닮은 표지를 한참 동안 봅니다. 오른손이 그리는 건 왼손이고, 왼손이 그리는 건 오른손입니다. 오른손이 왼손을 그리지 않았다면 왼손은 존재할 수 없고 그러면 오른손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 역설이 보여주듯 차별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오른손과 왼손은 각각 매우 중요하며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오른손으로 책장을 넘기자마자 참을 만큼 참았다며 오른손이 불만을 쏟아냅니다. 숟가락질, 양치질, 가위질, 빗질까지도 오른손이 한다네요. 도대체 왼손이 하는 일은 뭔가요? 똑같이 생긴 손인데, 힘든 일은 모두 다 오른손이 하고 왼손은 시계며 반지, 팔찌 등 온갖 근사한 것들을 다 차지합니다. 오른손이 불평하는 게 이해 갑니다.

(사진=사계절출판사 제공)
(사진=사계절출판사 제공)

앞에 빨간색 매니큐어가 놓여 있습니다. 오른손은 반짝거릴 자신의 손톱을 생각하며 들뜬 마음으로 왼손 손톱에 정성껏 매니큐어를 발라줍니다. 하지만 세심한 일은 몹시 서툰 왼손이 오른손 손톱을 엉망으로 칠해놓았어요. 잔뜩 화가 난 오른손은 왼손에게 바보라 쏘아붙이고, 늘 뒷전이던 왼손도 그동안 서운한 감정을 모두 내비치며 둘은 거칠게 싸우고 맙니다. 왼손의 처지도 이해 갑니다.

하필이면 오른손을 다쳤네, 왼손도 아니고.” 왼손은 정말 바보같이 듣고만 있습니다. 왼손은 오른손이 하던 일들에 최선을 다했지만 오른손처럼 할 수 없어 속상했습니다. 그러던 중 왼손 등에 앉은 모기는 빨간 자국을 남기고 왼손은 아무리 애를 써도 가려운 걸 긁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 다가온 건 다름 아닌 오른손, 오른손은 벅벅 긁어주며 가렵지 말라고 열십자 모양으로 꾹 눌러주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둘이 함께 힘을 모아 잡은 모기. “고마워라고 먼저 말을 건네는 왼손에게 오른손은 엄지와 검지로 하트를 만들어 언제 싸웠냐는 듯 보내줍니다. 오른손과 왼손이 잘 지내게 되어 다행입니다.

(사진=사계절출판사 제공)
(사진=사계절출판사 제공)

책을 다 읽고 내게 왼손은 누구일까 생각해봅니다. 세상 누구보다 가장 가깝고 친하게 지내지만 너무 가까워 할 말을 다 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다 때로는 감정의 골이 깊어져 폭발해 버릴 때도 있지만 내가 어려울 때 누구보다 빨리 다가와 줄 사람이 나의 왼손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나만 잘났다고 뻐기며, 중요한 일을 하는 건 오른손이라며 온 세상이 오른손잡이의 세상인 것처럼 행동했으니 부끄럽습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어울려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말이죠.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주고 이해하려고 하고 공감해주면 되는 간단한 일을 참 오랜 시간이 걸려 깨닫습니다. 이렇게 차츰차츰 어른이 되어가는 거겠죠.

속상하고 누군가가 미워질 때 책을 펼쳐 보세요. 왼손이 있어 오른손이 마음 놓고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다고 말하며 나의 왼손을 꼭 한번 잡아보세요. 나의 왼손은 늘 따뜻하게 나의 오른손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글쓴이·김선아

그림책씨앗교육연구소 대표

그림책을 좋아하여 여러 사람들과 그림책을 나누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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