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기업인 인터뷰④] “뚜벅뚜벅 진실된 모습과 꼼꼼한 결과로 승부했다”
[여성기업인 인터뷰④] “뚜벅뚜벅 진실된 모습과 꼼꼼한 결과로 승부했다”
  • 김정아 기자
  • 승인 2022.09.2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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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공사·설계시공 전문기업 울산 가람조경㈜ 정선숙 대표
32년간 씨앗 발아시켜 키운 3000여 수종 보유, 정원 카페·나무병원도 운영

여성기업 수가 곧 300만을 바라보고 있. 전체 기업의 40%를 넘는 수치다. 하지만 매출 비중은 전체의 10%에 불과한 상황. 앞으로 여성기업의 더 많은 발전과 성장이 필요한 이유다. 베이비타임즈는 여성기업 활성화와 여성 경제활동 확대가 인구문제, 일자리 창출의 해법이라는 견해에 동의한다. 성공한 여성기업인이 걸어온 길은 미래의 여성기업인, 경제활동 여성에게 또 다른 길을 내줄 수 있다. <편집자 주>

정선숙 가람조경(주) 대표. (사진=김정아 기자)
정선숙 가람조경(주) 대표. (사진=김정아 기자)

[베이비타임즈=김정아 기자] 인터뷰를 위해 마주 앉자 그의 손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마디가 굵고 투박한 손. 대화를 이어가다 보니 전지작업으로 시작한 조경사업을 연 매출 28억 기업으로 일군 역사가 그의 손에 담겨 있었다. 손수 씨앗을 채취하고 발아시켜 나무를 키운 32년 세월의 열정과 노고를 손이 말해주고 있었다.

가람조경정선숙 대표. 울산시 북구에 위치한 가람조경은 조경공사 및 설계시공을 하는 전문업체다. 관급 국내 건설사 조경공사는 물론, 대형 놀이공원 및 각종 공원, 학교, 백화점, 아파트, 유치원, 주택, 사무실 등 전국에 걸쳐 조경을 설계하고 공사를 진행한다. 식재, 조경관리, 부자재 생산 등도 함께한다.

2003년부터 중소벤처기업부 여성기업 인증을 받았고, 정선숙 대표는 여성신문 주관 경제부문 대상, 동울산세무서장상, 민주평통 대통령상 등을 수상했다. 또한 현장 시공을 통한 다수의 감사패도 받았다. 기본 상주 직원 12, 한 달에 60~70여명에게 일터를 제공하고 있는 가람조경의 올해 매출 목표는 30. 최근 8개월간 진행되는 거제도 고현항 조경공사를 낙찰받아 이미 목표를 훌쩍 뛰어넘었다.

Q 어떻게 조경사업을 하게 되셨나?

A 취미가 직업이 됐다고 할 수 있다. 어려서부터 나무와 풀을 좋아했다. 걸어서 학교를 오가며 예쁜 풀과 나무를 보면 지나치지 못했다. 금오도가 고향인 부모님은 여수에서 어업을 하셔서 농사짓는 집 아이들을 늘 부러워했다. 무언가 심고 키우는 걸 참 좋아했다.

그러다 결혼해 남편을 따라 울산에 왔다. 아무것도 없는 참 힘든 상황이었다.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에 막사를 개조해 동네 어르신들이 주신 씨앗을 심기 시작했다. 영농조합원들이 대부분 연세가 많으셨는데 새댁이 무언가 하려 하니 농지를 그냥 빌려주셨다. 그렇게 나무와 풀 씨앗을 심다 보니 7만평이나 됐다. 그저 나무 키우는 게 재밌어서 씨앗을 보관했다 봄에 심기를 반복했다. 새들이 퍼뜨린 나무들까지 어우러져 32년 동안 참 다양한 나무들이 자랐다.

조경수로 키워 팔아야지 하는 생각은 못했다. 그냥 취미로 분재를 하고 싶어 자르면서 키우다 보니 키는 낮고 모양은 특이한 나무들이 됐다. 나무에 대해 실전으로 많이 알게 됐고 그러다 보니 전지작업을 손빠르게 아주 잘했다. 주변에서 전지작업 부탁을 받았는데 꼼꼼한 실력을 인정받으면서 식재도 하게 되고 사업으로 이어졌다. 1998년 사업 면허를 내 본격적으로 하게 됐다.

울산시 북구에 위치한 가람조경 전경 (사진=김정아 기자)
울산시 북구에 위치한 가람조경 전경 (사진=김정아 기자)

Q 가람조경만의 특장점이 있는가?

A 조경 설계·공사에서 식재, 유지관리 등 몇 십만원 아주 작은 공사부터 몇 십억 입찰을 통한 관급, 아파트 공사까지 다하고 있다. 이때 필요한 나무 대부분을 우리 농장에서 조달한다. 소나무, 이팝나무, 느티나무, 메타세콰이어, 단풍 등 3000여 가지가 넘는 수종을 확보하고 있다. 32년 동안 자란 원재료가 포화 상태일 만큼 원자재를 자체 농장에서 댈 수 있는 게 가장 큰 경쟁력이다.

필요한 장비도 다양하게 구비하고 있어 공사를 주는 입장에서 불안하지 않다. 설계가 변경되고 수종이 바뀌는 등 돌발상황이 생겨도 대처할 수 있는 기반이 갖춰져 있다는 것이다. 남의 손, 남의 원자재, 남의 장비를 빌리지 않고 공사할 수 있다는 점이 남다른 면이다. 우리 매출이 기업 매출로 보면 크지 않다고 볼 수도 있지만 원재료와 장비를 모두 갖추고 있어 수익 면에서 알차다.

Q 고수하고 있는 원칙이 있다면?

A 현장의 중요성이다. 상담이 들어오면 현장에 가서 답을 찾는다. 20년 넘게 현장을 지휘하며 실력을 쌓아온 만큼 아무리 직원이 늘고 현장이 많아져도 나무 심을 때만큼은 꼭 현장에 가서 챙긴다. 조경은 공간의 가치를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요즘 자연친화적인 공간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관심도 높아졌다. 그렇다고 무조건 나무와 꽃을 많이 심는 게 능사가 아니라서 어떤 나무를 어떻게 배치하고 심느냐가 중요하다. 정면 센터가 가장 중요한데 시야를 가리는 큰 나무나 활엽수를 심는 것보다는 단풍나무 같은 아담한 나무를 권하며, 대칭되는 공간을 계속 만들어가도록 한다. 큰 나무 심는 방향은 반드시 현장에 가서 봐준다.

Q 여성대표라서 힘들었던 일도 많았을 것 같다

A 99%가 남자인 분야다 보니 인정받기가 쉽지 않았다. 모두 어디 여자가 잘하나 보자하는 눈초리로 바라봤다. 하지만 아침 일찍 작업복에 안전모 쓰고 가 누구보다 성실하고 꼼꼼하게 일했다. 그렇게 현장 한 곳 한 곳이 인정을 받으며 뚜벅뚜벅 앞을 향해 나가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새벽에 현장을 나가야 하니 모임을 해도 2, 3차는 절대 가지 않았고, 술대접 등 영업을 못 하니 성공하겠어?’ 하는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진실된 모습과 일로 승부하고 결과로 말하고자 했다.

여성대표라 만만했는지 보이지 않는 방해도 많았다. 약속을 깨고 뒤통수를 치는 바람에 10억 가까이 손해를 봐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원자재와 직원들 덕분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지만 충격에 마음은 물론 몸도 상했다. 하지만 비열하게 살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며 참고 털어버렸다. 하도 당한 게 많아서 지금은 후배 여성기업이 그런 처지에 놓인다면 발 벗고 나서 같이 싸워줄 수 있다.

올해 27년 동안 나무 모태가 된 집터를 카페로 바꿔 오픈했다. (사진=김정아 기자)
올해 27년 동안 살며 나무를 키워낸 모태가 된 집터에 정원카페를 오픈했다. (사진=김정아 기자)

Q 한 가정의 엄마이기도 하셨을 텐데...

A 두 아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큰아이가 9개월일 때부터 일했는데 일을 헤쳐나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견적서 내는 건 잊지 않아도 아이들 소풍날을 기억 못 해 챙기지 못할 때도 있었다. 한복 입고 가야 하는 유치원 행사에 작업복 차림으로 가기도 했다. 요즘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엄마였다. 일이 중요해 아이들을 챙기고 돌볼 시간이 없었다. 두 아들을 어린이 시절 없이 일찍 어른이 되게 한 것 같아 가장 마음이 아프다.

그래도 아이들이 독립적으로 알아서 잘 성장했다. 정말 감사하다. 열심히 사는 엄마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이 엄마를 염려하고 돌봐야 한다는 생각에 집안일도 척척 했다. 특히 둘째 아들은 엄마 일을 돕겠다는 생각을 어려서부터 한 것 같다. 토목학과 조경학을 복수 전공하고 지금 우리 회사에 들어와 현장을 관리하고 있다. 믿음직한 아들이 곁에 있어 든든하다.

Q 가정 기억에 남는 조경공사는?

A 울산 하늘공원 공사다. 고인을 추모하는 공간이라 조경이 잘돼야 시민들의 마음을 달래줄 수 있을 텐데 공기가 늦어지면서 3개월에 해야 할 38억 규모 공사를 38일 만에 끝내 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시공일을 맞추기 위해 마감에 쫓기는 현장을 긴장 속에서 버텼다. 공정대로 나눠서 차례대로 해야 할 작업을 동원할 수 있는 장비와 사람을 한꺼번에 투입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했다. 마침내 기일 안에 해냈다.

Q 최근 공부에도 열심이셨다고...

A 나는 실전형이다. 나무와 풀을 좋아하다 보니 키우면서 잘 알게 됐고 조경 현장을 통해 역량을 키워나갔다. 물론 필요한 자격증도 따고 했지만 체계적으로 공부를 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둘째 아들과 같이 공부해 방송통신대 농학과에 입학, 올해 2월에 졸업했다. 수업 내용이 내가 다 알고 했던 것들이라 신기하기도 했다. 경북대학교 나무치료기술자 과정도 들었다. 169시간을 이수해 산림청에서 주는 나무치료사 자격증을 취득해 나무병원을 차렸다. 의뢰가 오면 직접 현장에 가서 상황에 맞는 치료를 한다.

Q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울산지회장이시기도 하다.

A 여경협과 인연을 맺은 건 2003년부터다. 함께 고충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절실했다. 조금만 조언을 해주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기회가 없었다. 스스로 여경협으로 찾아가 멋진 분들을 많이 만나 도움도 받았다. 그렇게 참여하다 올해 회장직을 맡게 됐다. 현재 85명이던 회원이 100명으로 늘었다. 150명 정도를 목표로 하고 있다. 여성기업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여경협이 지역에 또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여러 가지를 모색하고 있다.

올해 가장 큰 행사로 1026~27‘2022 전국여성CEO 경영연수를 울산에서 개최한다. 전국 여성경제인들의 경영역량을 강화하고 네트워크를 확대하기 위해 매년 개최하는 행사인데, 여성기업인 1000여명이 참여한다. 이들을 대상으로 울산의 투자유치, 지역경제 활성화 등을 도모할 예정이다. 울산시 투자유치설명회, 전문가 초청강연, 여성기업 전시부스 등을 운영하는데 울산시를 홍보할 수 있는 기회라서 기대가 크다.

카페 옥상에서 바라본 정원 모습. 씨앗을 발아시켜 심은 나무와 새들이 퍼뜨려준 나무까지 어우러져 자연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있다. (사진=김정아 기자)
카페 옥상에서 바라본 정원 모습. 씨앗을 발아시켜 심은 나무와 새들이 퍼뜨려준 나무까지 어우러져 자연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있다. (사진=김정아 기자)

Q 나무는 회장님에게 어떤 의미인가?

A 나무를 돌보며 대화를 나눈다. 조경공사에 쓰일 나무에겐 좋은 곳에 가서 잘 살아라라고 인사하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마음속 이야기를 친구에게 하듯 털어놓기도 한다. 그렇게 나무와 함께하며 나무가 자라듯 나도 성장할 수 있었다. 씨앗을 말려 보관했다 봄에 심고 또 심고 하며 늘 자연의 경이로움과 고마움을 느꼈다.

처음 땅을 임대해 나무를 키우다 보니 임대가 끝나면 나무를 옮겨야 했다. 32년 함께한 나무를 베어버릴 수 없어 늘 옮겨 심었는데 그때마다 억 단위로 비용이 들었다. 어느 순간 이것도 집착인가 싶어 이제는 정리해야 될 일이 생기면 그냥 보지 않으려고 한다. 마음만 아프니. 그래서 내 농장을 꾸준히 늘려가고 있다. 나무와 풀이 이사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사람들은 그 긴 세월 동안 나무를 심느니 땅 팔았으면 부자가 됐을 거라 한다. 하지만 난 내가 키운 나무가 도심 속에서 시민들에게 힐링을 줄 수 있어 좋다. 감사하다. 아들의 권유로 올해 27년 동안 살며 나무를 키워낸 모태가 된 집터에 카페를 오픈했다. 카페 내부 인테리어는 물론 오래된 나무정원 구석구석을 내 손으로 꾸몄다. 카페에 왔다 정원을 둘러보는 이들이 힐링하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

Q 앞으로 계획은?

A 사업을 계속 이어가면서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늘려가고 싶다. 여경협 울산지회장은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더 이상 욕심이 없다.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면 나무에 대해 다시 체계적으로 공부해 어린이에게 나무를 설명해주는 전문해설사를 하고 싶다. 지금도 내가 나무 설명을 하면 사람들이 참 좋아한다. 아이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하고, 성인들을 위한 숲 투어도 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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