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5세 입학 즉각 철회해야”...학제개편 반대 거세
“만5세 입학 즉각 철회해야”...학제개편 반대 거세
  • 황예찬 기자
  • 승인 2022.08.01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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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 빠르면 교육 격차 해소되나”
2만명 남짓, 되레 취학 유예 원하기도
1일 오후 대통령실 맞은편 전쟁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황예찬 기자)
1일 오후 대통령실 맞은편 전쟁기념관 앞에서 '만5세 초등취학 저지를 위한 범국민연대'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황예찬 기자)

[베이비타임즈=황예찬 기자] 정부가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만5세로 낮추는 학제 개편을 제시한 가운데 이러한 개편안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1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는 영유아 학부모와 교사, 교수 및 시민단체가 모여 ‘만5세 초등취학 저지를 위한 범국민연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참석자들은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낮추는 것은 대통령 공약에도 없었고, 교육계 내부의 논의나 요구도 없었다며 개편안을 규탄했다.

지난달 29일 박순애 사회부총리겸 교육부장관은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만 5세 취학 학제 개편안을 언급했다. 이에 윤 대통령은 초중고 12학년제를 유지하되 취학연령을 한 해 앞당기는 방안을 신속히 마련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범국민연대는 이번 개편안이 절차부터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송성남 참교육학부모회 서울지부장은 “장관의 보고가 논의의 시작이 아니라 결론이 되고 대통령의 ‘조속한 시행’이라는 지시로 마침표를 찍으면서 교육 주체를 배제하는 식의 정책 강행은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는 중대한 문제”라고 말했다. 학제 개편 문제는 특히나 영유아교육과 초등교육 양쪽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논의와 합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기자회견 주요 발언자들이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황예찬 기자)
기자회견 주요 발언자들이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황예찬 기자)

또한 정책이 제시한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이날 오전 박 장관은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입학 연령 단축 취지가 “출발선부터 공정한 기회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지만 이는 잘못된 진단이라는 것이다.

홍경란 전국사립유치원연합회 부회장은 “교육 격차를 심화시키는 원인인 고교 서열화와 대학 서열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비전은 제시하지 않은 채 단지 입학 연령을 낮춰 교육 격차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문제의 근본을 모르는 소리”라고 전했다. 이어 “국민 중 누구도 교육 격차의 근본 원인을 초등 입학 연령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교육격차 해소를 위해 만5세 입학을 추진하겠다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일”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오히려 교육불평등을 심화할 것이라는 지적도 이어졌다. 장애아를 자녀로 둔 이예향 학부모는 “만5세가 초등학교에 1년 일찍 들어간다는 것의 실제 의미는 1년 일찍 유아들을 잔인한 경쟁교육으로 내몰아 성적에 따라 한 줄로 서열화 한다는 것”이라며 “만2세, 만3세, 만4세 또한 초등학교 준비를 위해 선행학습을 하는 사교육 시장으로 더 빨리, 더 많이 내몰리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전쟁기념관 정문을 넘어 산책로에까지 자리를 잡았다. (사진=황예찬 기자)
이날 참석자들은 전쟁기념관 정문을 넘어 산책로에까지 자리를 잡았다. (사진=황예찬 기자)

◆ 만5세 조기입학, OECD 중 단 네 곳...“근거 약하다”

손혜숙 한국전문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협의회 회장은 “박 장관은 영유아의 성장과 인지발달이 빨라졌기 때문에 만5세도 학교에 갈 수 있다고 하는데, 학자로서 어떠한 학문적 연구에서도 들은 적 없다. 어디에서도 객관적이고 타당한 근거를 찾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오히려 OECD 국가 중 만5세에 초등학교를 보내는 곳은 단 네 곳뿐이다. 대부분은 초등학교를 만6세부터 시작하고, 덴마크와 스웨덴,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는 만7세에 입학한다”며 “인지교육을 조금 더 늦게 시작하는 것이 좋다는 연구 결과를 정책에 반영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경미 한국국공립유치원교원연합회 회장은 “이미 오래전에 실패한 모델을 도입하려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선경 전국장애아통합어린이집협의회는 “지금도 부모가 원한다면 만5세 아이도 입학을 신청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초등학교에 일찍 가겠다고 하는 아이들은 거의 없고, 오히려 유예하겠다고 하는 아이가 2020년 기준으로 2만명이 넘는다”고 지적했다.

현재 학교 체제가 영유아에게 맞지 않고, 우리나라의 부모들뿐 아니라 대부분의 나라에서도 아이가 적어도 만6세는 되었을 때 학교에 가야 한다고 본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지난 1997년부터 교육법과 초중등교육법은 만5세 유아의 초등학교 입학을 허용해왔다. 그러나 시행 첫 해에 5849명이 조기입학을 신청한 모습과 달리 지난해에는 조기입학 신청자가 537명으로 감소했다. 오히려 초등학교 취학 유예 아동은 2020년 기준 2만654명을 기록했다.

울산 동구에 거주하는 한 30대 학부모는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이 이상하고 당혹스럽다. 만5세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 규칙적인 수업을 듣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며 “이렇게 되면 초등 교사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이해할 수 없는 정책”이라고 전했다.

범국민연대 관계자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마치고 서한을 대통령실에 전달한다고 밝혔다. (사진=황예찬 기자)
범국민연대 관계자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마치고 서한을 대통령실에 전달한다고 밝혔다. (사진=황예찬 기자)

정지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대표는 “지난해 아이를 보낼 어린이집을 알아볼 때 한글과 영어, 수학 특별활동을 하지 않는 어린이집을 찾기 어려웠다. 어린이집 졸업을 앞둔 아이들에게 1~2개월 정도 초등학교 1학년 문제를 풀게 하는 곳도 있더라”며 “이제는 더 어린아이에게 졸업을 앞두고 문제집을 풀도록 하는 일이 생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이날 범국민연대를 꾸려 기자회견을 진행한 40여개 단체는 이후에도 릴레이 집회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범국민연대 관계자는 “정부는 이후 교육 정책 수립과 과정에서 교육 당사자인 학부모와 교원, 학생 등 교육 주체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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