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칼럼] 예민하고 까다로운 아이
[건강칼럼] 예민하고 까다로운 아이
  • 유경수 기자
  • 승인 2022.07.11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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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한방병원 한방재활의학과 김형석 교수 칼럼 열네 번째 시간
경희대한방병원 한방재활의학과 김형석 교수 (사진=경희대의료원 제공)
경희대한방병원 한방재활의학과 김형석 교수 (사진=경희대의료원 제공)

아이를 키우다 보면 너무 예민하고 까다로운 것은 아닌지 고민될 때가 있다. 별것 아닌 상황에서도 유난히 힘들어한다든지, 쉽게 짜증스러워하는 모습을 자주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모습에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미움을 받아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타인에게 쉽게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부모의 걱정이 점점 번져간다.

여리고 섬세하다고도 표현되는 예민함과 선택의 입맛이 별스럽다는 까다로움은 부모 입장에서 아이에 대한 책망의 주된 핑곗거리가 된다. 안 그래도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은데 아이까지 서운함을 내보이고 보채면 급기야 '멘붕'의 상태에 빠지게 된다. ‘옆집 아이는, 길가의 저 아이는 그냥 가만히 하라는 대로 하는데, 왜 너만 그러냐는 말이 입가에서 맴돈다. 과연 아이가 예민하고 까다로운 것은 걱정해야만 할 일일까?

예민하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느끼고 감지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과한 반응이다. 고도로 발달된 센서가 장착되어 있어 같은 상황에서 다른 아이는 아무것도 못 느끼는데 내 아이만 그것을 느끼는 것이다. 이는 잔소리를 한다고 해서 바뀌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교육할 수 있는 것은 이에 대해 '대응하고 표출하는 방법'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둔감한 것보다 민감한 것이 더 나음은, 인체의 몇 가지 상황을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부부관계에서 조루증(早漏症)은 다양한 방법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지루증(遲漏症)이야말로 서로를 괴롭게 하고 약도 없음을 상기해보라. 센서가 뛰어나게 발달되어 있음을 낮추는 방법이야 많지만 둔감한 걸 살리는 건 정말로 어려운 문제다.

뇌졸중 환자의 감각 증상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뇌손상으로 인해 얼굴, , 다리에 이상 감각을 느끼거나 통증이 느껴지는 경우에는 진통제를 복용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감각이 무뎌진 곳을 예민하게 만드는 약은 없다. 감각을 전혀 못 느끼는 다리는 풀에 긁히고 날카로운 것에 베여도 위험신호가 작동하지 않아 더 큰 위험에 처할 수 있는 반면, 조금만 차갑거나 스쳐도 날카로운 통증을 느끼는 피부는, 당장은 힘들지만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하고, 오히려 자신의 몸을 소중하게 살피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까다롭다는 것은 취미나 기호가 뚜렷함의 부정적 표현이다. 선택의 상황에서, 유난히 이것 아니면 안 된다고 하는 본인 나름의 고집을 부리는 것으로, 이것은 좋고 저것은 싫다고 하는 강한 호불호(好不好)의 표현이다. 흔히 ()가 세다고도 하는데,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관철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것이다.

이런 아이들은 일찍부터 예술가적인 면모를 타고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자기가 입을 옷을 스스로 선택하고, 먹고 싶은 것과 하고 싶은 것에 강한 집착과 열정을 보인다. 키우는 입장에서 힘든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인내와 존중으로 잘 보듬어주면 독립적으로 성장하여 오히려 부모 자식과의 관계가 더 바람직해질 수 있다. 이들에게는 부모가 아이를 리드한다기보다는 부모가 아이에게 맞춰주고 도와줌으로써 서로 독립된 인격체로서 성숙한 부모자식 관계로 발전할 여지가 더 많다. 고요히 고여 있는 물에는 손쓸 일도 변화도 없지만, 요동치는 물에는 그 방향으로 물꼬만 터주면 건강하고 힘찬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처럼.

육아는 AI(artificial intelligence)로 움직이는 아기로봇을 키우는 것이 아니고 희노애락(喜怒哀樂)이 있는 인격체를 키우는 것임을 잊지 말자. 현 상황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느끼고 선택하려 하는 우리 아이에게, 자세를 낮춰 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그 너머를 들여다보며 이야기해보자. 왜 이 옷이 좋은지, 왜 꼭 이 길로 가고 싶은지, 왜 이것을 하고 싶은지 묻고 이야기하자. 예민하고 고집이 센 아이야말로 더 큰 성취를 이루거나 행복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언젠가부터 잊어버렸지만 우리도 실은 각자의 취향과 하고자 하는 바가 무궁무진했음을 떠올려 보자. 얼마 전, 뒤늦게 전공을 변경하고도 필즈상(Fields Medal)을 수상한 한국계 수학자의 어렸을 적 고집과, 그 부모의 고민과 사랑은 어떠한 모습이었을지 상상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경희대한방병원 김형석 교수 프로필>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학·석·박사

-경희대학교 한방병원 재활의학과 임상조교수

-한방재활의학과 전문의

-한방재활의학과학회 이사

-한방비만학회 이사

-추나의학 교수협의회 간사

-척추신경추나의학회 정회원

-대한스포츠한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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