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모 신원 보호하는 ‘익명출산’...해외 사례는?
출산모 신원 보호하는 ‘익명출산’...해외 사례는?
  • 황예찬 기자
  • 승인 2022.07.06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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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출산 자체보다 상담 과정이 중요한 독일
정보 노출 최소화하는 프랑스...친생부 정보 없어도 돼
(출처=픽사베이)
(출처=픽사베이)

[베이비타임즈=황예찬 기자]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는 출생신고를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보편적인 개념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보편적 개념이 당연하지 않을 때도 있다. 어떨 때는 출산모가 출생신고를 원하지 않거나 피하기도 한다.

지난 4일 국회에서 열린 ‘보호출산제와 출생통보제 병행도입 토론회’에서 주사랑공동체 양승원 국장은 출생신고를 어려워하는 출산 유형을 소개하며 사각지대에 놓인 산모들의 입장을 대변했다. 주사랑공동체는 지난 2009년부터 베이비박스를 운영해 온 단체다. 

양 국장은 출생신고를 어려워하는 유형으로 강간에 의한 출산, 10대 미혼모, 외도에 의한 출산, 근친에 의한 출산, 불법 외국인 노동자 등을 꼽았다. 여기에는 주로 산모가 자신의 신분을 노출하기 꺼리는 경우라는 공통점이 있다.

양 국장은 “이처럼 출생신고가 어려운 경우 아기의 생명만은 안전하게 살리기 위해 베이비박스를 찾아온다”며 “출생통보제와 같이 병원에서 출생자동등록제를 시행하는 국가나 선진 복지 시스템이 갖춰진 국가에서도 비슷한 행위는 종종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이어 “불가피한 사정으로 아기를 키울 수 없거나 출생신고 자체가 어렵다면 출산 전·후 과정을 개인의 신상 노출 부담이 없는 상태에서 진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산모의 익명성을 어느 정도 보장하는 ‘보호출산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주사랑공동체 양승원 국장(가장 오른쪽)이 지난 4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황예찬 기자)
주사랑공동체 양승원 국장(가장 오른쪽)이 지난 4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황예찬 기자)

◆ 익명출산 자체보다 상담 과정이 중요한 독일

보호출산제가 지향하는 ‘익명출산’ 개념을 이미 도입한 나라도 있다. 지난 2013년 ‘신뢰출산법’을 제정한 독일이 대표적이다.

독일 신뢰출산법의 출발은 1999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에서는 1999년부터 이미 베이비박스가 시행됐는데,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베이비박스에 대한 찬반양론이 치열하게 일었다. 베이비박스가 신생아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익명으로 아동을 위탁할 수 있게 해주는 장치가 아동살해나 유기 저해와 관계가 있는지 통계적으로 알 수 없다는 비판도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2009년 독일 윤리위원회는 베이비박스에 생명권보호를 위한 근거가 없고, 반면 아동이 자신의 뿌리를 알 권리와 친부가 자녀와 교통할 권리를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독일 연방 정부는 신뢰출산법을 제정하고 갈등상태에 있는 아동, 임신부에게 출산 전후로 체계적인 출산을 지원하는 제도를 마련했다.

신뢰출산을 원하는 임산부는 상담 과정에서 사용하게 될 별칭을 선택하고, 아동을 위해 한 개 혹은 여러 개의 이름을 선택한다. 임신갈등 상담소는 이를 받아 아동의 출신을 확인할 수 있는 출신증명서를 만들고, 봉투에 밀봉한 상태로 출생지원 시설에 전달한다. 동시에 출생지 관할의 청소년청에도 임산부의 별칭과 출산일, 출생지원 시설 등을 알린다. 산모가 아이를 낳으면 출생지원 시설은 바로 아동의 출생일시와 장소를 통지한다. 신뢰출산으로 태어난 아동은 만 16세가 되면서부터 출신증명서를 확인할 수 있는 열람권을 가진다.

신옥주 전북대학교 교수. (사진=황예찬 기자)
신뢰출산제도를 설명하고 있는 신옥주 전북대학교 교수. (사진=황예찬 기자)

이처럼 산모의 익명성을 보장하는 신뢰출산제도의 특징은 산모가 처음 임신갈등을 겪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출산 후까지 국가 차원에서 상담을 계속 이어간다는 점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24시간 긴급전화로 운영하는 임신갈등상담소는 무조건 익명 출산을 소개하지 않고 아동과 함께 생활할 수 있는 방안을 소개하거나 출생신고 후 진행할 수 있는 일반 입양 상담을 진행하기도 한다.

이후에는 신뢰출산 과정과 효과, 아동과 생부의 권리, 입양 절차, 아동을 돌려받기 위한 요건 등 신뢰출산에 대한 정보를 상세하게 제공한다. 임산부가 신뢰출산제안을 거절했을 경우에도 다른 익명 상담과 도움 제공을 제안한다.

신옥주 전북대학교 교수는 “지난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총 2249건의 신뢰출산상담 후 일반입양 또는 아동과 함께 사는 결정을 한 여성의 비율은 40%”라며 “신뢰출산이나 완전 익명출산(베이비박스 등) 비율이 22%라는 점을 보면 ‘상담’에 중점을 둔 이 제도의 컨셉이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정보 노출 최소화하는 프랑스...친생부 정보 없어도 돼

한편 과거 1600년대부터 수도원이나 요양원의 벽에 회전문 형태의 접수구를 설치해 베이비박스와 같은 형태의 익명 출산을 시행해온 프랑스는 지난 2002년 ‘출생근원에의 접근을 위한 국가심의회(CNAOP)’를 신설했다. 친생모의 비밀은 강화하면서도 자녀가 출생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프랑스 민법 제326조에 따르면 임산부는 분만 시 정부승인 의료기관에 자신의 신원을 비밀로 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이때 의료기관은 출산모에게 어떠한 서류를 요구하거나 조사를 진행할 수 없다. 혼인했는지 여부도 물을 수 없고, 친생부의 동의나 부모(임산부가 미성년자의 경우)의 동의도 요구하지 않는다. 

출산모는 출산 직후 병원에 방문한 아동보호서비스 담당자와 만나 친권 포기를 위한 절차와 나중에 아이가 자신의 근원을 찾고자 할 때 확인할 수 있는 몇 가지 절차를 진행하게 된다. 봉인된 봉투 안에 남긴 정보는 원칙상 비공개이며 CNAOP에 보관된다.

또한 산모가 산모의 별칭과 함께 아동의 이름을 정하도록 하는 독일의 방식과 달리 프랑스는 임시출생신고를 수리하는 담당공무원이 임의로 이름 3개를 정해 기재한다. 이후 입양이 이뤄지면 양부모가 입양신고를 하며 이름을 새로 정하고 출생증명서가 확정되는 방식이다.

프랑스의 익명출산제를 소개한 김현진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법안 발의된 보호출산제도는 출생증서를 작성할 때 부모 성명 기재를 원칙으로 하고, 소재불명 등의 사유로 친생부를 찾을 수 없는 경우에 친생모의 정보만 작성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강간이나 외도 등에 의한 경우 친생부를 찾을 수 없는 상황을 친생모가 증명해야 할 텐데 이는 제도의 취지에 어긋나고 제도를 이용하는 데 장애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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