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고 ○○ 왔구나!"
할머니 집 대문을 들어서면 버선발로 뛰어나와 반겨주던 목소리, 아직도 그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네댓 살쯤이니 무척 오래된 기억이죠. 그런데 ○○은 제가 아니라 남동생 이름입니다. 그게 이상했던지 제가 엄마에게 물었어요. “엄마, 왜 할머니는 항상 ○○ 왔구나만 해? △△왔구나,라고는 안 해?” 엄마는 어린 딸아이가 그런 질문을 하는 게 무척 인상적이셨나 봐요. 제가 커서도 종종 그날의 물음을 상기하곤 하셨거든요.

《우리 다시 언젠가 꼭》 책 속의 나는 할머니가 보고 싶어요. 멀리 떨어져 있는 할머니를 무척 만나고 싶어요. 로켓을 타고 하늘을 날아 할머니 집 앞에 내려 문을 두드리는 상상을 해요. 그런데 당장 학교도 가야 하고 축구도 해야 해 못 가서 아쉬워요.
편지는 어떨까요? 보고 싶은 마음을 담은 그림과 함께요. 그러면 할머니는 답장을 보내주시겠죠. 할머니 사진도 한 장 보내달라고 할 거예요. 편지 끝에 ‘우리 다시 언젠가 꼭’이라고 써달라고 하고요. 직접 편지 안에 들어가 할머니를 깜짝 놀라게 할 수도 있어요. 그러고 싶지만 봉투 안에 들어가기는 내가 너무 커버려서 이건 좋은 방법이 아니에요.
앗, 전화가 있어요. 밤새 이야기를 나누고 밤하늘의 별들이 새벽을 향해 갈 때 ‘우리 다시 언젠가 꼭’이라고 말하며 잠이 들 거예요. 오! 컴퓨터로 할머니 얼굴을 보는 방법도 있네요. 할머니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 더 좋아요. 할머니가 방금 차린 따뜻한 저녁밥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리운 할머니 곁에 있는 기분이 들어요. 할머니도 그러시겠죠?
난 할머니께 내 멋진 받아쓰기 시험지를 보여드릴 거에요. 눈이 커다래진 할머니가 보고 싶거든요. 그리곤 헤어지기 전에 꼭 그 특별한 주문을 보내요. 바로 내가 어렸을 때 할머니가 가르쳐 준 바로 그거요. ‘우리 다시 언젠가 꼭’. 편지도 좋고 전화랑 컴퓨터도 좋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할머니 옆에 딱 붙어있는 거예요.
할머니를 너무 만나고 싶어요. 할머니에게 가기까지 난 계속 편지를 쓰고 전화를 걸 거예요. 보고 싶은 할머니에게 갈 방법을 찾아야겠어요. 언젠가 다시 꼭 만날 그날이 바로 지금이 되도록요. 그때까지는 내 사랑을 열심히 모아 할머니에게로 보낼게요. 우리 다시 언젠가 꼭! 만나게 되길 바라면서요.

동그라미와 네모로 뚫어진 구멍 사이로 서로를 보고 싶어 하는 할머니와 아이의 마음이 책장을 넘나들며 전해집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크게 벌리며 할머니를 향해 한껏 소리치는 아이는 할머니를 꼭 만나러 가겠다고 우리 모두에게 큰 소리로 말합니다. 로켓이 그려진 티셔츠는 할머니에게 날아가고 싶은 아이의 마음이 그대로 나타나 있어요. 할머니가 손자 선물로 산 티셔츠도 똑같이 로켓이 그려져 있네요.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음이 통하는 두 사람입니다.
할머니가 새로 산 안경에 달린 날개는 손자에게 날아가고 싶은 할머니 마음일 거예요. 책상 위 머그컵에는 ‘I ♡ gran’이라고만 써 있지만 이어진 낱말이 무엇인지, 누가 선물한 것인지 우리는 알 수 있어요. 아이 방 벽에 붙어있는 할머니와 함께 찍은 아이 사진과, 할머니 노트북 옆의 아기 사진은 두 사람을 더욱 단단한 사랑으로 묶어줍니다. 할머니 손에서 떠나지 않던 아이의 편지는 그리움을 더욱더 크게 만드네요.
노랑과 보라, 주황과 연두의 보색이 서로의 마음을 번갈아 나타내 주는데 이 화사한 색의 배열이 독자를 한없는 동심의 세계로 끌고 들어갑니다. 할머니의 회색 공간에 노란색이 스미고 마침내 노란색이 지면을 온통 물들일 때는, 찾아가 안길 수 있는 할머니가 있는 아이가 너무 부러웠습니다.
나란히 소파에 앉아 눈을 맞추며 이야기에 흥을 돋우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흘러넘치는 사랑을 저도 조금 받을 수 있어 좋았어요. 이들의 사랑이 모두에게 전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제 마음도 그 안에 포함해서요.
그림책 한 권이 마음속 깊이 있던 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불러왔습니다. 비록 제 이름을 부르며 환영해주시지 않은 할머니였지만 지금은 할머니가 무척 보고 싶습니다. 이제는 만나면 제 이름을 부르며 반가워해 주시겠죠? 아주 오랫동안 만나 뵙지 못했거든요.
편지도 전화도 안 되는 너무 먼 곳에 계셔서 낡은 흑백사진으로밖에 볼 수 없지만 그리워할 수 있는 할머니가 계셔서 좋습니다. 할머니가 계셨기 때문에 제가 여기에 있을 수 있으니까요. 할머니도 나를 기억하시겠지요. 그리운 할머니, 보고 싶습니다.

글쓴이·김선아
그림책씨앗교육연구소 대표
그림책을 좋아하여 여러 사람들과 그림책을 나누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