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테라·루나는 왜 실패했나... 드러난 가상화폐의 그늘
[취재수첩] 테라·루나는 왜 실패했나... 드러난 가상화폐의 그늘
  • 황예찬 기자
  • 승인 2022.05.27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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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중앙화’ 열광, 투자자 보호에는 취약
흔들리는 가상자산, 신뢰 회복 가능할까
(출처=픽사베이)
(출처=픽사베이)

[베이비타임즈=황예찬 기자] 지난 9일부터 시작이었다. ‘스테이블 코인’으로 유명한 ‘테라’와 ‘루나’의 가격이 내려가기 시작하더니 며칠 사이에 99% 하락하며 휴짓조각에 불과하게 됐다. 주요 거래소에서는 테라와 루나를 상장 폐지하기 시작했다.

지난 17일 고승범 금융위원장이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한 발언에 따르면 현재까지 루나 사태의 손실 규모는 투자자가 28만명이며 이들이 보유한 코인이 약 700억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테라와 루나는 어떻게 그렇게 많은 투자자를 모을 수 있었을까. 또, 그 많은 투자자의 신뢰에도 왜 무너졌을까. 테라·루나 사태의 전개부터 가상화폐 및 관련 규제의 방향성에 대한 논의까지, 다소 어두울 수 있는 가상화폐의 그늘을 한 맥락으로 관통해 짚어봤다.

◆ ‘스테이블 코인’이 뭐길래

이번 사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스테이블 코인’을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한다. 스테이블 코인은 가격 변동성을 최소화해 가치를 일정하게 유지하도록 설계된 암호 화폐를 말한다. 가격 등락 폭이 커 투기 논란을 부르는 대다수 암호 화폐와 달리 ‘지급 결제 수단’으로서의 화폐가치를 추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스테이블 코인은 어떻게 가치를 유지하는가. 보통 담보를 통해 1코인이 1달러의 가치를 갖도록 설계된다. 담보를 설정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가 있는데 달러, 유로와 같은 실물 자산과 일대일로 연동시키는 방법이 있고, 다른 가상 자산으로 담보를 두는 방법이 있으며, 알고리즘을 통해 가치를 유지하는 방법이 있다.

‘테라’는 세 번째 방법, 알고리즘을 통해 가치를 유지하는 방법을 적용한 스테이블 코인이다. 우선 1테라는 1달러와 가치가 고정된다. 그런데 만약 1테라의 가치가 1달러보다 내려가거나 올라가면 어떻게 해야 할까? 테라 생태계는 테라가 아닌 ‘1달러어치의 루나 코인’과 테라를 교환하는 방식으로 이를 해결했다. 

예를 들어 1테라의 가격이 0.8달러가 된다면 테라를 사서 ‘1달러어치의 루나’와 교환을 한다. 그러면 이 과정에서 0.2달러의 차익이 발생한다. 동시에 테라를 소각해 루나를 얻는 상황이므로 테라의 가격은 다시 올라간다. 반대로 1테라의 가격이 1.2달러가 된다면 ‘1달러어치의 루나’를 사서 테라와 교환을 한다. 역시 이 과정에서도 0.2달러의 차익이 발생하고, 테라의 수요가 늘어나는 상황이므로 테라의 가격은 다시 내려간다. 이런 식으로 테라는 1달러 가치를 고정하는 전략을 썼다.

그렇다면 테라가 ‘스테이블’하기 위한 조건은 전적으로 루나에 달려있다. 즉, 테라는 루나의 시가총액만큼 담보되는 스테이블 코인이다. 그런데 만약 루나의 시가총액이 테라의 시가총액보다 낮아지면 추가 담보 없이는 테라 가치를 유지할 수 없다. 시중에 100테라가 있는데 현재 루나의 시가총액이 50달러라면 테라 보유자들이 ‘1달러어치의 루나’와 교환하고 싶어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태가 실제로 터졌다.

2022년 5월 6일부터 13일 18시까지의 업비트 거래소 LUNA 차트. (사진=업비트 페이지 갈무리)
지난 6일부터 13일 18시까지의 업비트 거래소 LUNA 차트. (사진=업비트 페이지 갈무리)

◆ 휴짓조각 된 ‘루나’...원인은?

지난 9일 테라 가격이 1달러보다 낮아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원래대로라면 루나와의 알고리즘으로 가격이 복구됐어야 했지만 한 투자자가 테라를 대량으로 팔면서 가격이 크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른 투자자들 사이에서도 공황매도가 일어났고, 덩달아 루나 가격도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틀 후인 11일, 테라와 루나를 운영하는 테라폼랩스 권도형 대표는 루나 발행량 자체를 늘리는 등의 여러 대응책을 내놨지만 13일이 되자 루나의 시세는 역대 최저가인 0.031원(12시 기준)을 기록했다. 루나의 가치가 사라지면서 ‘스테이블 코인’ 테라의 위상도 추락했다. 국내 주요 가상화폐거래소는 하나둘 루나와 테라를 상장 폐지했다.

이후 권 대표는 17일 ‘Terra 2.0’이라고 이름 붙인 새로운 네트워크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기존 블록체인과 분리한 새로운 블록체인으로 운영하며 기존의 코인을 갖고 있던 ‘홀더’ 등 네트워크 사용자에게 새로운 토큰을 지급하겠다고도 전했다. 투표를 거쳐 통과된 해당 계획은 27일부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싱가포르에 있다던 테라폼랩스 사무실이 폐쇄된 점, 권 대표가 본인의 거주지를 이동하는 등 사실상 잠적한 점이 지적되며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국회에서는 지난 23일 이번 사태의 원인을 짚고 대책을 나누는 긴급 세미나가 열리기도 했다. 사태의 원인에 대해 ‘폰지사기’ ‘세력 개입’ 등 여러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기본적으로 테라에 적용된 알고리즘 담보 방식이 문제가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전인태 가톨릭대학교 수학과 교수는 “테라·루나 생태계는 기본적으로 테라의 대량 매도에 따른 ‘죽음의 소용돌이(Death Spiral)’ 가능성을 안고 있었다”고 전했다. 테라의 가격이 내려가 이를 막기 위해 루나의 발행량이 늘어나면 루나의 가격이 떨어지고, 이는 곧 다시 테라의 가치를 담보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져 악순환을 낳는다는 것이다.

블록체인 전문 기업 ‘블로코’의 김종호 대표는 “루나와 테라가 실패한 원인은 알고리즘 기반으로 가치를 고정한다는 불가능한 발상에 도전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가상자산을 하나의 바구니에 담아 화폐가치를 고정한다는 발상은 과거에도 무수히 실패했다”면서 “문제는 이러한 논리가 유통되고 재생산되는 과정에서 안전장치가 없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다시 부활한 금융·증권범죄 합동수사단이 이번 사태를 1호 수사로 지정했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이번 사태를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렸다. 특히 시장에서는 이번 사태가 피라미드 투자 사기의 한 형태인 ‘폰지사기’와 유사하다는 언급도 나오는 중이다.

정재욱 법무법인 주원 변호사는 “이번 사건은 가상자산의 테라, 루나 코인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자본시장법 적용은 어려워 보이고, 현재까지의 정황상 특별히 다단계 조직을 통해 루나 코인을 판매 권유했다는 사정도 보이지 않는다”며 “자본시장법이나 방문판매법 위반은 성립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다만 “알고리즘을 통한 가치 고정이 애초부터 실현할 수 있었는지, 실현 불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에 운영사가 비트코인을 추가 담보로 설정한 것은 아닌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면서 “이러한 추가 조치로 문제가 해소된 것인지, 위험성에 대해 투자자들에게 사전 고지를 했는지, 고지 의무가 있는지 등이 다퉈질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사진=윤창현 의원실 제공)
지난 23일 국회에서는 루나 폭락 사태에 대한 긴급 세미나가 열렸다. (사진=윤창현 의원실 제공)

◆ 가상화폐 시장, 이대로 괜찮을까

새로운 패러다임을 선도하던 가상화폐 시장은 당분간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제도권 규제에서 벗어나 여러 혁신과 도전에 뛰어들었을 수 있지만, 그 이면에는 투자자 보호를 보장하기 어렵다는 그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향후 가상화폐 시장에 규제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주로 나온다. 전 교수는 “이런 취약점을 가진 암호 화폐가 많은 거래소에서 대량으로 거래될 수 있었던 이유는 뭐냐”며 “시중의 한 평가 기관은 테라의 등급을 사고 직전까지 A+로 유지했다는데, 가상자산거래소에서의 상장심사가 과연 전문성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전했다.

황석진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테라·루나와 같은 차익거래형 스테이블 코인의 상장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교수는 “가상자산의 가치 보장을 안전성을 갖춘 담보가 아니라 투자자들의 신뢰만으로 운영한다는 것인데, 이는 시장 변동성에 따라 위험성이 커지고 구조적 취약성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가상자산의 순기능보다는 외부 금융환경에 쉽게 노출될 수 있는 차익거래형 스테이블 코인은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거래를 허용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렇게 특정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대책 회의를 하기보다 이런 사태를 예방하고 선제 대응하기 위해 전담 기구를 설립할 필요가 있다”고도 전했다. 황 교수는 “대부분의 정부 부처에서는 이번 사태에 대해 규제 근거가 없으니 할 수 있는 부분이 제한적이라고 한다”며 “관련 대책을 사전에 내놓을 수 있고 투자자 보호 정책과 디지털자산 산업 전체를 다룰 수 있는 전담 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탈규제’ ‘탈중앙화’를 내세우며 매력을 홍보하던 가상화폐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전환점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결제 수단으로서의 진정한 ‘화폐’를 관리하고 싶다면 이제는 은행이 보여주는 만큼의 신뢰 수준을 보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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