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1금융권’ 잇따른 횡령 사고…이대로 괜찮은가
[취재수첩] ‘1금융권’ 잇따른 횡령 사고…이대로 괜찮은가
  • 황예찬 기자
  • 승인 2022.05.16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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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령 막지 못하는 ‘디지털 전환’, 무슨 의미 있나
‘디지털 전환’ 속도전에 빠져 소비자 신뢰 놓칠 우려
신한은행(왼쪽), 우리은행(오른쪽) 본점. (사진=신한은행, 우리은행 제공)
신한은행과 우리은행 본점 전경. (사진=신한은행, 우리은행 제공)

[베이비타임즈=황예찬 기자] 팬데믹 사태가 2년 차로 접어들던 지난 2021년, 국내 주요 금융지주는 입을 모아 ‘디지털 전환’을 강조했다.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은 “디지털 혁신으로 ‘넘버 원’ 금융플랫폼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말했고 조용병 신한금융그룹 회장은 “모든 기업이 디지털에 사활을 거는 상황에서 신한의 운명도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에 좌우될 것”이라고 전했다. 김정태 당시 하나금융그룹 회장도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해 ‘플랫폼 금융’을 강조했고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도 그룹 경영전략 중 하나로 ‘디지털 No.1 도약’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처럼 야심 찬 전략을 외치고 나섰지만 최근 주요 금융그룹의 시중은행에서 연이어 들려오는 횡령 사고 소식은 외려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횡령 사고를 잡아내거나 미리 막을 수 없는 ‘디지털 전환’이라면 과연 무엇을 위한 전환일까.

지난달 27일 우리은행은 차장급 직원 전 모씨를 횡령 혐의로 고소했다. 횡령 금액은 약 614억원이며 여기에는 과거 이란 기업 엔텍합에서 대우 일렉트로닉스를 인수하려고 했을 당시 냈던 계약보증금도 들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전씨가 2012년 10월과 2015년 9월, 2018년 6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수백억원 가량을 빼낼 동안 은행이 이를 감지하지 못했다는 데에 있다. 

심지어 한국 정부는 지난 2019년 이란과의 국제 소송에서 패소하면서 엔텍합에 이자를 포함한 계약금을 되돌려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다만 당시 미국 정부가 이란과의 핵 합의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하면서 경제 제재가 이어져 시기가 무기한 연기됐을 뿐이다.

그런데 올해 초, 바이든 정부가 이란에 원유 증산을 요청하며 이란과 경제 제재 문제를 포함한 단계적인 핵 합의 협상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한국 정부도 지난 소송 결과로 계약금을 돌려줘야 하는 상황이 됐고, 우리은행은 돌려줘야 할 계약금이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만약 경제 제재가 계속 이어지는 상황이었다면 수백 억원 대의 자금이 사라진 사실을 계속 발견하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감독원은 지난 2일 국내 주요 시중은행을 포함한 모든 은행에 내부 통제 시스템 긴급 점검을 지시했다. 정은보 금감원장은 3일 은행장 간담회에 참석해 “사고 관련자를 엄정 조치하고 내부통제 미비점에 대해서는 제도개선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은행권 횡령 사고 소식은 이어졌다. 신한은행 부산 모 지점 직원이 2억원가량을 횡령하는 사건이 드러난 것이다. 신한은행은 지난 12일 전국 지점에 특별 점검 공지를 보내고 횡령 사고를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금감원 차원에서 지시한 점검은 M&A(인수합병) 자금 등에 집중한 것이기 때문에 이번 사건과는 관련이 없다”며 “이후 은행 차원에서도 13일에 전체 시재 검사를 진행할 예정이었는데 그 전날인 12일에 지점 자체적으로 횡령 사실을 확인해 발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1금융권 은행에서 발생한 대규모 횡령으로 금융권 전체가 민감한 상황에서 횡령 사고가 재차 드러난 점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이를 몇몇 은행의 문제로만 볼 수 있을까.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국내 5대 시중은행(KB·신한·하나·우리·NH농협)에서 지난 2016년부터 2021년까지 발생한 횡령·유용 사고는 총 86건이다. 금융소비자보호법이 시행된 2021년에도 11건이 발생했다. 은행권은 디지털과 인공지능, 마이데이터에 초점을 맞추고 소비자보호에 힘쓰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이처럼 횡령 사고가 계속 이어진다면 소비자보호 측면에서도 신뢰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다만 한 은행권 관계자는 “내부 통제 시스템 자체가 미흡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며 “이번 우리은행 사고의 경우에도 당사자가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과 관련해 실무를 주도한 사람이었고, 내부 시스템 허점을 파악하면서 일어난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시스템의 문제일 수도, 개인의 일탈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그 중심에는 신뢰의 문제가 있다. 금융소비자에게 가장 신뢰감을 줘야 할 주요 금융그룹이 ‘디지털 전환’의 속도전에 빠져 신뢰를 놓친다면 순서를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소비자에게는 무엇이 더 중요하게 다가올지, 다시금 점검해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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