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대한민국 스승상 대상, 공주여자중학교 최은숙 선생님
[인터뷰] 대한민국 스승상 대상, 공주여자중학교 최은숙 선생님
  • 김정아 기자
  • 승인 2022.05.13 13:2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독서모임, 시 쓰기, 고전 연구로 배움의 기쁨 나누고 용기 주고파"
"완전한 교사는 완전한 학생... 학교 문제는 해결 이전에 공부할 문제"
"공부하는 선생님으로 기억되고 싶어... 지역이 학생의 소중함 인식해야"
제11회 대한민국 스승상 대상을 수상한 공주여자중학교 최은숙 선생님
제11회 대한민국 스승상 대상을 수상한 공주여자중학교 최은숙 선생님

[베이비타임즈=김정아 기자] 오는 15일은 마흔한 번째를 맞는 스승의 날이다. 교육부와 한국교직원공제회는 스승의 날을 기념해 11회 대한민국 스승상수상자 10명을 선정했다. 그중 공주여자중학교 최은숙 선생님이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최은숙 선생님은 교환일기로 학생들의 글쓰기를 시작한 이후 시 쓰기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직접 쓴 시로 수업을 하고 문집을 내기도 했다. 이런 과정에서 학생들이 잘 써야 한다는 부담 없이 펜을 들게 하고, 시를 통해 서로의 생각과 마음을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했다.

이는 2018년 학생들의 시를 단행본으로 출간하는 결실로 이어졌고, 책은 여러 학교에서 시 수업 교재로 쓰이고 있다. 이로써 더 많은 학생들이 시를 통해 친구들과 소통하고 공유하며 자신들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성장할 수 있기를 바라는 최 선생님의 소망이 전국으로 퍼져나가게 됐다.

이 바탕에는 공부하는 선생님이 자리하고 있다. 최 선생님은 2006년 청양중학교에 발령받은 후 교사독서교육연구회 간서치를 만들었다. 처음 6명이 모여 월요일 독서모임을 시작했고 이후 16년이 넘게 이어지고 있다. 20여 명의 간서치선생님들은 한 달에 한 번 독서토론을 하고 1년에 두 번 작가를 초청해 더 심도 있는 시간을 갖는다.

그런데 그간의 독서활동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선생님들이 읽는 책을 지역주민, 학부모들과 공유하기 위해 지역신문에 독후감을 연재하고 이를 묶어 <선생님의 책꽂이>라는 책으로 출간했다. 교사들이 공부하고 연구하는 이 모임은 2015년부터 충남교사독서연구회로 확대 운영되고 있으며, 각 학교의 소규모 독서모임을 지원하고 있다.

최 선생님은 선생님들이 학교 현장에서 부딪치는 모든 문제는 해결할 과제 이전에 공부할 문제라는 생각과 완전한 교사는 완전한 학생이다는 신념으로 고전 연구 도서를 출간해 교육과정에 활용하기도 하고, 지역의 옛 모습을 발굴하고 축적하는 학생 아카이브 활동을 통해 마을과 학교를 연계하는 마을 교육공동체를 꾸리는 등 지속적으로 연구를 확장하고 있다.

좀 더 자세히 최은숙 선생님을 만나본다.

교원독서연구모임 활동 모습
교사독서교육연구회를 만들어 꾸준히 공부하고 연구하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처음 교사 발령을 받았을 때가 궁금합니다.

좋은 선생님이 되고자 하는 초심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제가 정한 좋은 선생님의 기준이 정말 좋은 것인지 깊이 고민하지 못했습니다. 학생들이 싸움을 일으키고, 발표를 잘 하지 않고, 토론에 적극적이지 않는 등의 상황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았고 이내 자괴감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초임 시절부터 본이 될 만한 동료·선배 교사들을 만나는 행운이 있었습니다. 그분들과 한 달에 두 번씩 만나 토론하고 문제 상황을 나누며 열심히 뛰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하는데 우리 반 학생들은 왜 이렇지...’ 답답해하며 학생들을 다그쳤습니다.

이듬해 아기를 낳고 복직하면서 제 생각이 확 바뀌는 경험을 했습니다. 지독한 난산을 하고 뭘 잘 몰라 전전긍긍하며 아기를 키우다 학교에 복직했는데, 학생들을 바라보니 말 그대로 눈이 부셨습니다. 저 아이들이 어떻게 저렇게 튼튼하게 잘 자랐단 말인가 놀라웠습니다.

그 시선을 학생들이 누구보다 먼저 알았겠지요. 거꾸로 학생들이 제게 주는 따스한 사랑을 느끼는 날들이 시작되었습니다. 내 기준을 가지고 열심일 때 저의 관심은 저에게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귀하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좋은 선생님같은 생각은 깨끗이 사라졌습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바라보기만 해도 예뻤습니다. 이후로도 오랫동안 서툰 교사였지만 그냥 그 자체로 소중한 단 한 명의 아이라는 시각으로 학생들을 한 명 한 명 바라보게 된 것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쓴 시를 지역주민들과 공유하는 시간도 갖고 있다.
학생들이 쓴 시를 지역주민들과 공유하는 시간도 갖고 있다.

학생들과 참 많은 활동을 하셨습니다. 가장 마음에 남는 것은 무엇인지요.

교사로 살아오는 동안 제가 가장 많은 시간을 들인 일이 뭘까, 생각해보니 학생들이 글쓰기와 시 쓰기 앞에서 큰 부담 없이 펜을 들게 하고, 재미를 느끼도록 도운 일인 것 같습니다. 저는 학생들의 글을 읽는 것이 다른 어떤 책을 읽는 것보다 즐겁고 뭉클해서 초임교사 시절부터 학생들의 글을 문집으로 엮거나 함께 교환 일기를 쓰곤 했습니다.

목천중학교 시절엔 저와 학생들과 학생들의 가족이 함께 교환 일기(편지)를 썼습니다. 여섯 개 모둠으로 나뉜 학생들과 가족이 돌아가며 일주일에 한 편씩, 저는 여섯 개 모둠의 일기에 매일 한 편씩, 여섯 편의 답장을 써서 돌려주었는데 일기를 읽고 답장을 쓰는 그 시간이 저에겐 휴식이었습니다. 일기장 중 몇 권은 청년이 된 졸업생들이 보고 싶다고 해서 선물했고 몇 권은 제가 간직하고 있습니다.

2018년부터는 학생들의 시를 단행본으로 출간하기 시작했습니다. 출간된 시집은 여러 학교에서 시 수업 교재로 쓰인다고 합니다. ‘청소년이 쓰는 청소년 시’, ‘10대의 경험이 기록된 시가 기획 의도입니다.

매년 3월 한 달은 시를 공부하고 시를 쓰는 달입니다. 한 달 내내 자기가 쓴 시를 들고 찾아와 피드백을 부탁하는 학생들이 참 보기 좋습니다. 시 수업은 학생들이 완성한 시를 교재로 삼아 진행합니다. 자신이 쓴 시, 아는 친구가 쓴 시로 하는 수업은 감동입니다. 몰입하고 박수 치고 웃고 눈물 흘립니다. 4월은 전교생이 교내 시 백일장에 참가합니다.

이 중에서 시인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특별한 학생들뿐 아니라 모든 학생이 시를 써보고 친구들과 공유하면서 그들이 지닌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지길, 성장하길, 서점에서 시집을 사는 청년들이 되길, 그래서 지역에 작은 서점들이 살아남아 사람들이 들락거리길, 이 아이들이 그러한 고급문화의 중심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더 큽니다.

학생들과 우리동네 아카이브를 진행하며 옛 모습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학생들과 우리동네 아카이브를 진행하며 옛 모습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교직 기간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분이 있으신가요?

꼭 한 명만 고르기는 참 어렵지만, 1998년 천안 목천중학교에서 만난 기수와 기용이 형제 부모님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목천중학교에 발령받고 학교가 있는 마을에 전셋집을 구해 이사했는데, 바로 이웃에 제가 국어를 가르치는 중학생 기수가 살고 있었습니다. 기수 어머니가 어느 날 대문 앞에 오이를 한 자루나 두고 가셨습니다.

국어 선생님이 옆집에 이사 오셨으니 오이를 가져다 드리라는 아들의 부탁을 받고 기수 어머니는 오이를 가져오긴 했으나 쑥스러워서 얼굴도 안 보고 오이만 던져두고 가신 겁니다. 오이 하우스를 하시는 기수네 덕분에 오이를 실컷 먹으면서 살게 되었습니다.

몇 년 후, 목천을 떠난 뒤에도 저는 목천의 아이들과 부모님들을 잊을 수가 없었고 그때 우리가 어울려 행복하게 살았던 이야기를 써서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목천중학교에서 함께 일했던 선생님들, 목천 마을의 이웃들, 학생들이 마을 교회에 모여 출판 기념회를 했습니다. 마을 분들이 음식을 정성껏 준비해오셔서 마을 잔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이크를 잡은 기수 어머님이 츰에 우리 아들이 오이를 갖다 주라고 하는디 저는 선생님들은 다 도시깍쟁이인 줄 알고 아까워서 상품 오이를 안 갖다주고 꼬부랑 오이만 한 자루 담어다 줬슈. 사겨보니 선생님은 골동품도 그런 골동품이 없슈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때 제가 먹은 오이가 꼬부랑 오이인 줄을 알게 되었습니다. 천안 근무연한을 채우고 목천을 떠나 청양으로 갈 때 기수 아버지가 제 손을 잡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헤어지더라도 아주 잊지 말고 서신이라도 주고받으며 사십시다

말씀대로 일 년에 한두 번은 꼭 만나며 삽니다. 너무나 선량하고 깨끗한 성품을 가진 그분들을 저는 인생의 스승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요즘 기쁜 일은 농촌 총각 기수가 드디어 착한 아가씨를 만나 연애를 시작한 것입니다. 기수가 결혼하게 되면 제가 주례를 맡기로 중학생 때부터 약속해서 요즘 저는 긴장하고 다이어트를 조금씩 하고 있습니다.

우리 동네 아카이브 활동 결과와 함께한 학생들.
우리 동네 아카이브 활동 결과와 함께한 학생들.

동료 또는 후배교사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우리가 학교 현장에서 부딪치는 모든 문제는 해결할 문제이기 이전에 공부할 문제라는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학생들과의 갈등도 만만치 않을 때가 있고, 학부모, 심지어는 동료 교사로 인해 마음을 다치고 좌절하는 일도 생깁니다. 이것은 교사인 내가 배워야 할 무엇이 있어서 주어지는 상황이란 것을 저도 오래전 선배 교사에게 들었습니다. ‘완전한 교사는 완전한 학생이라고 합니다. 충분히 배우고 나면 그 문제가 내게 더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나를 괴롭히는 비슷한 상황이 반복된다는 것은 아직 더 배워야 하는 시간이란 뜻이겠지요.

어떤 스승으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저는 학생들에게 공부하는 교사로 기억되고 싶고 공부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저의 공부가 학생들의 공부를 북돋워 주었으면 합니다. 공부하지 않고는 방향을 제대로 잡고 살아갈 수도 없고 성장할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공부는 고전이었고 학생들에게도 제가 고전을 공부하면서 얻은 깨달음과 자유와 용기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서툴지만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되풀이하여 공부하면서 학생들을 위한 고전 시리즈를 썼습니다.

학생들과도 공부 모임을 몇 번 시도했으나 저는 가르치고 학생들은 듣는 패턴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아쉽지만 어른도, 선생님도 여전히 공부하면서 살아가고 있고 공부를 즐거워 한다는 것을 학생들이 느꼈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포부는 무엇인가요?

제가 몸담은 지역은 교육도시, 역사도시라고 불리는 충남 공주입니다. 세종시가 생기면서 공주는 인구가 많이 줄고 연령층은 높은 편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생들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과 함께 시집뿐 아니라 우리 동네 아카이브 활동을 하고 공주를 공부하고 결과물을 내는 작업을 하는 것은 학생들의 존재를 부각하기 위한 나름의 방편입니다. 자신이 공주에서 소중한 존재라는 자존감을 느껴야 지역에 관심을 갖고 공주의 구성원으로서 정체성도 생기지 않을까요? 그러기 위해 학생들을 인정하는 지역의 노력이 있었으면 합니다.

앞으로 학교에 있는 동안 저는 꾸준히 학생들의 시집을 내서 동네 서점에 유통하고 도시재생사업을 하는 거리의 공방과 카페에 배부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제민천에 학생들의 시를 전시해 공주를 찾는 관광객들이 학생들의 생기발랄함, 솔직함, 건강한 생명력을 만나게 해주고 싶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