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CPTPP 가입, 이대로 괜찮나...“피해 예측 어려워”
[취재수첩] CPTPP 가입, 이대로 괜찮나...“피해 예측 어려워”
  • 황예찬 기자
  • 승인 2022.04.2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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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농어민 두 차례 총궐기...가입 철회 요구
산자부 “구체적인 영향평가 협상 후에 가능”
(사진=황예찬 기자)
지난 4일 여의도 일대에서 열린 CPTPP 가입 반대 집회 참석자들이 상여를 메고 이동하고 있다. (사진=황예찬 기자)

[베이비타임즈=황예찬 기자] 전국에서 모인 농어민들이 여의도 한복판에 모였다. 산업은행 앞에 모인 시위대는 길 건너 여의도 공원까지 자리 잡았다. 대표자들은 “오늘 농어업은 죽었다”면서 삼베옷을 입고 상여를 멨다.

지난 4일과 13일 벌어진 풍경이다. 정부가 CPTPP 가입 추진계획을 발표하자 역대 최고 수준의 시장개방 소식에 농어민들이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들은 “이미 수많은 국가와 맺은 FTA로 우리 농민들의 삶은 벼랑 끝에 닿아 있다”면서 “식량 주권을 지키지 못하면 국가는 지속할 수 없다”고 외쳤다.

CPTPP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의 약자다. 지난 2005년 출범한 다자간 자유무역협정(TPP)을 기반으로 시작돼 현재는 총 12개국이 협상에 참여하고 있다. 모든 상품에 대한 관세·비관세 장벽 철폐가 목표이며 상품 거래부터 환경, 노동 등 비관세 분야까지 총 21개 분야가 협상 대상이다.

앞서 정부는 CPTPP 가입에 따라 얻을 수 있는 경제적 효과가 크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달 25일 산자부가 개최한 CPTPP 가입 신청 관련 공청회에서 전윤종 산자부 통상교섭실장은 “CPTPP 가입은 수출시장 확보, 안정적 공급망 구축 등 경제적 효과와 함께 역내 다자간 공조에 참여한다는 전략적 가치가 크다”고 전했다.

그러나 농어민단체는 공청회에 즉각 반발했다. 농민들은 “그들만의 공청회”라고 말하며 요식행위를 중단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이날 공청회 토론자로 참석한 13명의 패널 중 학계 인사는 여섯 명, 정부 관계자는 네 명이었다. 중소기업중앙회 등 기업을 대표하는 인사도 두 명 참석했지만 농어촌 현장의 목소리를 전하는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이에 전국 농어민들은 총궐기로 대응했다. 4일에는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이하 한농연) 등 9개 단체가, 13일에는 전국농민회총연맹(이하 전농) 등 25개 단체가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 모였다.

한 집회 참가자는 “사실상 무관세에 가까운 시장 개방 계획에서 후발 주자는 더 큰 대가를 지불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가자는 “세계적인 농업 강대국인 중국이 CPTPP 가입을 적극 추진하는 만큼 피해 규모는 앞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다”고도 전했다.

◆ "피해 규모 가늠 안 돼...소통 부족했다"

이처럼 민간에서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국회의원들도 중재에 나서기 시작했다. 지난 19일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는 ‘대한민국 식량주권을 위협하는 CPTPP,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제목으로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를 주최한 윤재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일정으로 자리에 직접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개회사를 통해 “수많은 FTA에 가입하는 과정에서 우리 농업계와 수산업계가 큰 피해를 감수해왔다”면서 “농업계에서 어떤 피해를 받을지 구체적인 영향평가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날 발제를 맡은 농촌경제연구원 정대희 박사는 “CPTPP를 체결하고 나서 나온 영향평가에 대해 대응을 마련해서는 늦다”면서 “선제적인 대책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또한 “그 대책은 양적인 측면의 대책보다는 경쟁력 부분에서의 여러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문한필 전남대 교수는 정부가 CPTPP로 인한 피해 예상 규모를 보수적으로 잡은 것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문 교수는 “한·미 FTA 당시 12조원 정도의 피해가 나왔고, 그걸 위해 준비한 국내 보완대책에 24조원 가량이 들었다”면서 “지금은 그때의 절반 수준인 4000억원대 피해 규모를 예상하는데, 이는 아직 CPTPP에 포함 안 된 미국의 재가입 가능성이나 동식물 위생·검역 조치(SPS) 등의 부분을 고려하지 않은 상태”라고 지적했다.

(사진=황예찬 기자)
농어민들은 “CPTPP 가입은 농·수산업 말살”이라며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사진=황예찬 기자)

문 교수는 CPTPP에 먼저 가입한 일본 사례를 “지저분하다 싶을 정도의 양허전략”이라고 표현하면서 “우리도 최대한 농민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방식을 찾아서 협상해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CPTPP에 가입했지만 농업부문 시장개방(자유화율) 정도가 76.2% 정도다. 유제품, 쌀 이외의 곡물과 전분, 조제식료품 등 188개 세번(관세율표상 분류된 상품 번호)에 대해 전체 국가를 대상으로 기준관세율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서용석 한농연 사무총장은 소통의 부재를 지적했다. 서 총장은 “아직도 CPTPP에 대해서 농민들은 잘 모르는 게 현실”이라며 “일본처럼 협상할 수 있다고도 이야기하지만 일본이 76% 했는데, 그걸 위해 어떻게 할 것인지를 알려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협상을 위해 전략 노출을 자제한다고 말하는데, 알려준 게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농민들은 어떻게 피해를 예측하고 대책을 마련하겠냐”고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또한 “상황 시나리오별로 피해액의 최소치와 최대치, 그 구체적인 내용을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특히 일본 등 기존 가입국들이 어떤 식으로 했는지, 그래서 우리나라는 어떻게 할 생각인지 등을 알려줘야 ‘소통했다’고 말할 수 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 세부 협상 진행 전 영향평가 어려워

조수정 산자부 FTA 정책기획과장은 “정부는 지난해 12월에 사회적 논의에 착수한 후 여섯 차례의 기업 간담회를 비롯해 여러 부처가 주도한 분야별 간담회를 이어왔다”면서 “이후에도 협상 과정에서 개방되는 품목들에 대해 관련 단체와 긴밀하게 소통하고 협력을 강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특히 피해 규모를 예측하고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CPTPP 가입 절차가 어느 정도 진행돼야 한다는 점을 설명했다. 조 과장은 “이러한 FTA에서 전체적인 영향평가는 협상이 끝나고 나면 하게 된다”면서 “협상 전에는 경제적 타당성만 검토하고 협상에 돌입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렇지만 CPTPP에 대한 우려가 크기 때문에 정부도 협상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여러 방향 등을 고려해 보완대책을 선제적으로 준비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최봉순 농축산부 농업정책과장은 “현재는 아직 협상이 끝나지도 않았고, 품목별로 어떤 영향이 있을지 알 수가 없는 상태라 구체적 안을 지금 말씀드릴 수는 없다”면서도 “농촌에 계신 분들의 대부분이 연세가 많으시므로 충격 흡수에 정부 지원이 많이 필요하리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계속 피해에 상응하는 충분한 대책을 세우고 그와 더불어 농업 전반에 대한 상황을 파악해 대응 방안을 세우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정부는 앞서 지난 15일 CPTPP 가입 추진계획을 의결하고 4월 안으로 CPTPP 가입 신청서를 제출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오는 2주 안으로 신청서 제출이 진행되지 않으면 CPTPP 문제는 차기 정부로 넘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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