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 성폭력 사건, 파기환송·무죄 확정 동시에 나와
해군 성폭력 사건, 파기환송·무죄 확정 동시에 나와
  • 황예찬 기자
  • 승인 2022.03.31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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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위 “대법원 엇갈린 판결 이해하기 어려워”
해군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31일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의 엇갈린 판결을 지적했다. (사진=황예찬 기자)
해군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31일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의 엇갈린 판결을 지적했다. (사진=황예찬 기자)

[베이비타임즈=황예찬 기자] 성소수자 여성 부하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해군 함장과 직속상관이 엇갈린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은 사건 당시 함장으로 복무했던 해군 A 대령에 대해 2심 무죄 판결을 파기했지만 당시 피해자의 직속상관이었던 B 소령에 대해서는 무죄를 확정했다.

대법원 판결 직후 ‘해군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이 현실을 외면하고 2심의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지 못했다”고 전했다.

◆ 징역 8·10년에서 무죄로, 이후 대법원까지

해당 사건은 지난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피해자는 근무지에 배치받은 몇 달 뒤 직속상관인 B 소령으로부터 강제추행과 성폭행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B 소령은 당시 피해자가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알고 “남자랑 관계를 제대로 해보지 않아서 그런 것 아니냐” “남자 경험을 알려준다”는 등의 말과 함께 범행을 저질렀다는 혐의를 받는다.
 
피해자는 당시 함장이었던 A 대령에게 피해 내용을 보고했다. 그러나 A 대령은 이후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저질렀다는 혐의를 받는다. 피해자의 성폭력 피해 사실을 알게 된 후 이를 빌미로 성폭행을 가한 것이다.

피해자는 사건 이후 복무를 이어가다가 지난 2017년 근무지를 이탈해 군 수사기관에 피해를 신고했다.

A 대령과 B 소령은 2018년 해군 보통군사법원 1심에서 각각 징역 8년과 10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같은 해 11월 고등군사법원 2심은 두 가해자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피해자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이유였다.

당시 고등군사법원은 직속상관이었던 B 소령의 사건을 두고 “범행 경위에 관한 피해자의 진술은 믿을 수 없다”고 밝혔으며 A 대령 사건에 대해서도 “피해자의 진술 내용에 모순과 객관적 정황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피해자의 기억을 신뢰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군검찰은 2심 판결에 불복해 상고했다. 대법원은 상고 이후 3년 4개월여 만에 이날 판결을 내렸다.

◆ 함장은 파기환송, 직속상관은 무죄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31일 A 대령의 2심 무죄 판결을 깨고 고등군사법원으로 환송했다.

대법원은 “A 대령의 행위에 관한 피해자 진술에 신빙성을 인정할 만한 사정이 있다”면서 “피해자 진술 신빙성에 의심이 드는 일부 사정만으로 피해자 진술 전부를 배척한 원심 판단은 잘못됐다”고 밝혔다.

반면 피해자의 직속상관이던 B 소령 사건을 담당한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무죄를 선고한 2심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피해자 진술에 신빙성이 부족한 정황이 있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공대위는 대법원 선고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반쪽짜리 판결’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대법원이 사건을 3년 4개월간 내버려뒀을 뿐 아니라 2심의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공대위 관계자는 “2차 가해자에 의해 발생한 성폭력은 1차 가해자가 성폭력을 한 후 피해자가 이를 보고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것”이라며 “2차 가해에 대해서는 유죄성을 인정하면서도 첫 번째 범행에 대해서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달리 판단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판결 후 피해자가 자필로 전한 심경을 공대위 관계자가 대신 전하기도 했다. 피해자는 “파기환송과 기각이 공존하는 판결로 오늘의 저는 또 한 번 죽었다”면서 “행복한 군인으로 살아보고 싶은 소망을 짓밟혔다”고 전했다.

이어 “부디 후배들은 저와 같은 경험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면서 “피해 입지 않기를, 피해를 입더라도 살아남기를, 기다림의 시간이 이처럼 길지 않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후 공대위 관계자들은 “가해자에게 처벌을, 피해자에게 일상을”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군이 가해자 징계와 피해자 보호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대법원은 “인접한 시기에 같은 피해자를 상대로 일어난 동종 범죄도 피해자 진술 신빙성이나 신빙성 유무를 기초로 한 범죄 성립 여부를 달리 판단할 수 있다”며 “이것이 실체적 진실 발견과 인권 보장이라는 형사소송 이념에 부합한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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