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교사 최혜영 칼럼] 대한민국 보건교사의 삶 회고
[보건교사 최혜영 칼럼] 대한민국 보건교사의 삶 회고
  • 송지나 기자
  • 승인 2022.01.05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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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영 부산진중학교 보건교사
최혜영 부산진중학교 보건교사

대학을 졸업하고 피 터지게 공부해서 임용시험을 거쳐 졸업한 그해 바로 보건교사로 일을 시작했다. 합격을 확인하고 얼마나 기뻐했던지, 지금도 그때 그 순간이 기억이 난다. 보건교사로 벌써 종착지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지난 시간을 회상해보고자 한다.

첫 발령

첫 발령지였던 중학교에 처음 출근했던 날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떨리는 마음으로 아침 일찍 학교에 출근해서 교무회의에서 선생님들과 먼저 인사한 후 흙먼지 휘날리는 운동장에서 열린 조례를 통해 전교생에게 소개가 끝나고 나니 인수인계도 없이 바로 보건 업무를 시작해야 했다.

36개 학급에 학교가 3개 동으로 분리되어 있어 신규교사인 내가 학생 관리를 감당하기 힘든 환경이었다. 하루에 100여 명이 넘는 학생들을 관리하고 주당 11시간 수업으로 잠시 쉴 틈도 없이 그렇게 보건교사의 삶을 살았다.

당시엔 컴퓨터도 없었고 정보 교환도 힘들었던 시절이라 업무 계획, 보건일지, 내부 기안문 등 모든 업무를 수기로 처리했었다. 그러다 내용 수정이 필요하면 적었던 종이를 다 찢어버리고 다시 새로 작성해서 결재를 받곤 했다.

그때 그 시절은 교직 사회가 상위하달식의 수직적인 관계로 신규교사인 선생님들은 꼼짝할 수 없는 구조였다고 볼 수 있다. 심지어 여교사 회장은 신규교사의 복장을 지적하고 화장하는 것까지 간섭하는 등 다양한 압박으로 힘들게 했지만, 그래도 꼼짝없이 받아들여야만 했다. 세월이 지난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현장이었다.

그래도 돌아보니 그리운 것은 무엇일까? 아마 사람들의 향기 때문일 것이다. 거친 면도 있었지만, 학생들은 선생님들을 존경하고 따랐으며 교사들끼리도 끈끈한 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발령 동기 선생님들과는 학교생활의 힘든 상황에 대해 서로 위로하며 격려했고, 수업 기술 방면에서는 여러 선생님의 도움을 받았다. 이런 도움 속에서 수업 활동 매시간 학생 수준에 맞춰 학생들의 흥미를 이끌어 수업에 참여하게 만들고자 열정을 쏟았다.

발령 동기들의 끈끈한 우정과 순순했던 아이들과의 환상적인 호흡, 보건 수업을 기다리는 아이들이 힘든 학교생활에서 힘이었고 교사로 설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보건교사라는 자리는 항상 위험이 발생할 수 있어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특히 나는 병원 경력이 없어 많은 부담을 느끼고 일선 현장에서 기량을 갖추기 위해 더 노력했다. 현장 연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학생들의 다양한 사례에 적용해 항상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상황에 당황하지 않고 대처하며 보건교사의 중요성과 입지를 다져 나갔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찔한 순간도 많았다. 특히 첫 학교에서 심장병(팔로4징후) 중증을 지닌 학생이 학교에서 여러 번 의식을 잃는 상황이 발생해 학교 차(학교에 운전기사가 있던 시절)로 병원에 몇 차례 후송하면서 가슴 졸였었다. 핸드폰도 없고 학부모와 연락이 되기 쉽지 않았을 때라 응급 상황이 발생해도 오롯이 보건교사인 내가 감당해야 했었다.

강산이 세 번 변할 동안 일해온 시간

지금까지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을 살린 수많은 상황에 보건교사인 내가 있었다. 아침 일찍 학교에 와서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진 학생을 발견하고 심폐소생으로 살린 일, 친구들에게 찍힌 동영상으로 죽음을 생각한 학생을 도왔던 일, 우울감으로 진통제를 과다 복용한 학생을 발견하여 빠르게 조치했던 일, 여러 명으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입은 학생을 인지하여 조치하고 법정 증인으로 몇 차례 출석했던 일, 힘이 없는 아이들을 따돌림이나 폭력으로부터 지켰던 일 등 보건교사로서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그간 부단히 노력했고, 지금도 보건교사인 나는 쉴 수 없다.

여학교로는 첫 근무지였던 M여중은 재량 시범학교였다. 3학년 6개반 보건 수업에 성교육 시범학교로 1학년 2개반을 1년을 이끌면서 전교생 강연, 학부모 수업, 대표 교사 수업, 시범학교 발표를 통해 많이 성장한 기회가 되기도 했다. 또 “아이들에게 이렇게 유용한 수업이 진행되는 것에 안심이 된다. 전체 학교에 적용되면 좋겠다”는 학부모들의 뜨거운 반응과 동료 교사들의 격려도 기억에 남는다.

이렇게 많은 학교를 거치면서 다양한 경험을 통해 나름의 노하우가 생겼다. 이제는 학생의 눈빛, 상처의 모양만 봐도 그 상황과 진실을 잡아낼 수 있는 가히 ‘초능력’을 가지게 됐다.

위험에 처한 학생들,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에게 언제든지 열려있는 보건교사가 되고자 달려온 시간만 해도 강산이 세 번 변했다. 그래도 아직 마음은 청춘인데….

교육현장이 변화되길 바라는 마음

내가 보건교사로 일한 시간 동안 학교 현장에도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모든 것이 전산화되고 심지어 블렌디드 러닝 수업이 보편화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보건교사의 직무와 관련된 부분은 아직도 과거에 멈춰 안타까운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1953년 당시 문교부 훈령에 보건교사의 업무를 ‘학교 환경위생의 유지 관리 및 개선에 유의하고 필요한 사항을 학교장에게 조언하며 환경위생 검사에 협력한다’고 규정하면서 지금도 학교의 시설, 설비를 담당하는 해당 부서에서 편의적인 해석으로 환경과 관련된 시설 관리 업무를 보건교사에게 지우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다행히 나는 지금까지 학교 현장에서 환경업무 갈등이 없었고 보건교사의 직무인 학생들의 건강관리 및 보건교육을 충실히 할 수 있었다. 이는 매우 당연한 일인데도 감사함을 느끼게 되는 것은 어째서일까.

일선 현장은 보건교사의 전문성과 상관없는 많은 업무를 부여하고 있어 보건교사들을 지치게 하고, 결국 학생들에게 쏟아야 할 에너지가 비건설적인 부분에 소모되면서 교육의 수요자인 학생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이 도움이 필요하고 마음이 아파서 견딜 수 없는 상황이 될 때 어디를 찾을까? 내 경험으로는 먼저 상담실 문을 두드리는 경우는 극히 적었다. 아이들은 배가, 머리가 아프다면서 보건실을 찾는다. 보건교사는 배가 아프다고 머리가 아프다고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한 개인은 전인적인 존재로 단순한 문제처럼 보이는 것이 복합적인 다양한 문제로 얽혀 있는 경우가 정말 많다.

학교에서 보건교사가 아이들을 제대로 잘 관리한다면 많은 문제로부터 아이들을 지킬 수 있다. 내가 보건교사라서가 아니라 보건교사의 업무는 너무나 막중하고 생명과 직결되어 있으므로 보호받아야 한다. 모든 보건교사가 아이들을 제대로 파악하고 그들을 보듬어 줄 에너지를 갖고 있을 수 있도록 교육현장이 제대로 변화되기를 바란다.

지금의 학교 현장은 힘들고 낙후됐던 과거와 비교해도 한 명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많은 업무량으로 인해 보건교사들이 번 아웃(burn-out) 상태가 되고 있다. 교육청 보건 담당 8~9명의 업무가 일선 보건교사 1인에게 주어지고 있는 상황을 생각하면 ‘업무 과중’이라는 표현조차 부족하다.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2년 동안 새벽부터 달려온 출근길과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 관련 업무, 그에 더해 매년 증가하는 업무 폭주로 보건교사들의 몸과 마음이 아프다. 보건교사가 행복하고 건강해야 학생들을 행복하고 건강한 아이들로 자라게 할 수 있다. 보건교사들의 아픔이 속히 치유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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