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구 준리태권도협회 의장 “꿈을 갖고 도전하면 성공한다”
이준구 준리태권도협회 의장 “꿈을 갖고 도전하면 성공한다”
  • 지성용
  • 승인 2014.10.15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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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구 준리태권도협회 의장

 

나의 이름은 이준구, 미국 이름은 준리(Jhoon Rhee)이다. 미국인들은 나를 그랜드마스터(Grand Master)라고 부른다.

충남 아산 출신 촌놈이 “태권도로 세계를 정복한 한국인”이라는 평가를 받게 된 것은 청소년기에 세운 두 가지 목표, ‘태권도를 열심히 배우는 것’과 ‘영어공부에 매진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1945년 해방이 된 후로 한국에는 미국 영화가 쏟아져 들어왔다. 왠지 촌스러워 보이는 악극단이 잔뜩 나팔을 불고 거리를 행진하던 시절에 극장 앞에 붙여진 형형색색 컬러풀한 포스터는 우리들에게 낯설고도 신비스러웠다.

포스터 안에 그려진 금발의 미남·미녀 배우들은 까만 머리의 성춘향과 이도령으로 분한 한국 배우들과는 다른 멋으로 내게 다가왔다.

학교에 가도 공부가 안 되고 수업 중에도 다시 그 영화를 보러가고 싶다는 생각뿐었던 나는 그 날부터 금발의 미녀에게 그리고 그녀가 산다는 미국 땅에 대한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하루빨리 커서 돈을 벌어 미국에 가고 싶었다. 그리고 그녀를 닮은 미녀와 결혼을 하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미국에 가게 되면 무엇을 해서 먹고 살아야 할지 고민이 생겼다.

생각하다 떠오른 것은 내가 막 배우기 시작한 태권도였다.

태권도는 우리나라의 고유의 무술이라 했으니 미국에서 그것을 알 턱이 없다고 생각했다. 미국에만 갈 수 있다면 내가 다니는 도장의 사범처럼 나도 미국에서 태권도 사범을 하면 그럭저럭 먹고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 날부터 두 가지 목표를 세웠다. 하나는 태권도를 열심히 배우는 것이고 또 하나는 영어공부에 매진하는 것!

그 당시 오늘날처럼 과외 공부니 참고서니 하는 것이 있을 리 없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해 낸 영어공부란 그저 교과서만 달달 외우는 것뿐이었다. 매일 배운 내용을 되풀이해서 읽고 또 읽어서 입과 눈이 동시에 문장을 외우게 하는 것이다.

하루는 영어시간에 선생님께서 나를 지목하시면서 영어교과서의 일부분을 읽고 해석해 보라는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떨리긴 했지만 나는 자신 있게 일어나 지목한 부분을 읽고 해석을 했다. 해석을 끝내고 나자 선생님은 급우들 앞에서 나를 칭찬해 주셨다. 혼자 하기엔 좀 어렵다 싶은 부분이었는데 잘 해냈다는 것이다.

내가 영어를 공부하는 방식은 스스로 고안해 낸 아주 단순하면서도 쉬운 방법이었다.

우선 영어의 가장 기본적인 문법들로 이루어진 짤막한 문장을 100개 정도 고른다. 그리고 나서 입으로 읽고 손으로 쓰며 계속해서 문장을 외워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보면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귀로도 들리고 또 눈에도 익어 어느새 저절로 100문장을 줄줄 외우게 되었다.
▲ 이준구 준리태권도협회 의장이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과 건강관리를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모든 분야를 통괄해 항상 통하는 원칙이 있다. 무엇을 배우든지 그 안에는 그 지식을 쌓는 데 필요한 기본 5~6가지가 있기 마련이다. 제일 먼저 이 기본 지식들을 찾아내 하나하나를 외우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이 외울 때 머리로만 또는 눈으로만 외울 것이 아니라 온 몸의 세포 안에 하나하나 습관처럼 각인을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눈으로 보면서 입으로 외우고 그 외우는 것을 귀로 들으면서 손으로 쓰다보면 저절로 몸의 각 세포가 그것을 외우게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렇게 해서 어느 정도 지식이 쌓이면 이것을 신속 정확하게 각 부분과 연결해 또 다른 지식을 습득해 나가는 것이다.

꼭 공부뿐만 아니라 운전연습 같은 것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운전대를 잡는 것만으로도  겁이 덜컥 나지만 3개월이 지나면 긴장을 풀고 운전할 수 있고 6개월이 지나면 이제는 슬쩍 한 손으로만 운전대를 돌릴 수도 있다.

처음에 온 몸으로 익힌 기술이 나중에는 곳곳에 응용이 되어 좀 더 수월하게 일을 해나갈 수 있는 것이다.

아무런 꿈도 꾸지도 못했던 나에게 어느 날 스크린에서 처음 만난 금발 미녀, 그녀를 만나겠다는 욕심에 어린 소년은 철없이 미국으로 가겠다는 꿈을 꾸고 점차 머리가 커가면서 그 꿈은 미국에서 살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으로 변했다.

그 계획을 이루기 위해 시작한 영어공부는 훗날 6·25 전쟁 때 통역관으로 활약하면서 내 목숨을 살렸고 또 타국 멀리 미국에 가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데 유용하게 활용이 되었다.

세포로 기억하라! 오늘날까지 나는 많은 강연을 하면서 만난 학생들에게 내가 스스로 터득한 이 학습법을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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