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칼럼] 육아와 노화
[건강칼럼] 육아와 노화
  • 유경수 기자
  • 승인 2021.11.15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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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한방병원 한방재활의학과 김형석 교수 칼럼 일곱 번째 시간
경희대한방병원 한방재활의학과 김형석 교수 (사진=경희대의료원 제공)
경희대한방병원 한방재활의학과 김형석 교수 (사진=경희대의료원 제공)

육아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나가서 밭 갈래, 아니면 애기 볼래?’ 라고 물으면 얼른 신발을 신고 나갈 채비를 했다는 우스갯소리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남이 보기엔 한없이 예쁘기만 한 아이를 키우는 것이 그리 어려울 것 같지만은 않은데, 막상 해보면 하루하루가 갈수록 갈 길이 멀게만 느껴지는 게 바로 육아다. 천하의 박지성도, 근육질 영화배우 드웨인 존슨도 육아 앞에서는 그저 평범한 초보 아빠일 뿐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육아는 힘이 들까? 아마도 자유의 제한, 즉 내가 지금 하고 싶은 것을 못 하고 당장 아이가 원하는 것을 해줘야하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이것을 수년간 반복해야 한다. 졸려도 자지 못하고, 배가 고파도 아이 먼저 챙겨야 하는 것이다. 무언가 한 가지 일에 진득하니 집중하고자 함은 한낱 사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진료실에서는 추간판탈출증, 퇴행성관절염 등의 근골격계 통증 환자뿐 아니라, 뇌졸중, 안면마비 등의 신경계 마비 환자 등 다양한 환자들을 만나게 되는데, 어쩌다가 이런 증상이 생기고 안 좋아졌는지를 추적해가다 보면, 의외로 아이를 보다가 그렇게 되었다는 경우가 적지 않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아이의 엄마, 아빠에게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고, 아이의 육아를 분담 혹은 전담하고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더 절실하게 와 닿는 이야기다. 이미 무릎에 퇴행성관절염이 있음에도 아이를 수시로 안고 달래주어야 하고, 안 그래도 낮에 일에 치여 사는 사람인데 일과 후에도 아이와 사투를 벌이느라 잠이 부족해져서 만성피로에 시달리는 이들도 많다. 이것이 장시간 반복되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질환이 악화되는 것은 물론이고 없던 병이 생기기 시작한다.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오고, 주름은 늘어가고, 없던 새치가 보이기 시작하면 어느새 한숨이 나온다. 아이를 키우면서 늙어간다고 한탄을 하게 된다. 사랑스런 아가와의 만남이 결코 거저 이뤄지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동물들은 태어나자마자 걷기도 하고 헤엄치기도 하는데, 사람의 아이는 왠지 더 손이 많이 가는 것 같다. 인간의 유전자를 후대에 퍼뜨리기 위한 과정은 이처럼 결코 쉽지 않다.

2021년 4월 수면 건강(Sleep Health) 잡지에는, 33명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수면부족과 노화와의 관련성을 규명한 논문이 실렸다. 저자들은 출산 후 6개월 이내의 수면부족이 생물학적 노화의 가속화와 관련이 있다고 보고하였다. 즉, 출산 직후 수면이 부족했던 여성은 출산 후 1년 시점에 3-7년가량 더 늙어있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또한, 2016년 미국 예일대학교 연구팀은 폴란드의 폐경 후 여성 100명을 대상으로 출산력을 조사하였는데, 출산과 육아를 많이 경험한 여성일수록 노화와 관련된 DNA 손상이 많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즉, 출산과 육아 스트레스가 노화를 앞당겼다는 얘기다.

우리는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어렸을 적 물리 시간에 배운 열역학의 법칙을 생각해보자. 에너지의 총량은 보존되고,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뭔가가 쑥쑥 자라난다는 것은 어딘가 쇠퇴의 작용이 더 활발하게 이루어짐을 말한다. 한 송이의 꽃이 온전하게 피어나기 위해서는 주변의 수많은 죽음과 희생의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아이가 부모의 피와 땀을 양분으로 피어날 때, 부모는 조금씩 시들어간다. 어린 아이를 한의학에서는 순양지체(純陽之體)라고 하는데, 활발한 생명의 기운이 돋아나기 위해서는, 어딘가에는 음(陰)의 수렴 작용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이도 키우고 내 몸도 지키기 위해서는 잘 쉬는 것이 기본이다. 잘 수 있을 때 자두고, 주변에 도움을 청할 수 있을 때 쉬어 두는 것이다. 그리고 크고 작은 욕심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 아이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성장하도록 인위적으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타고난 모양을 인지하고 가장 잘 뻗어나갈 수 있도록 지지하고 기다려줄 수 있어야 하겠다. 지친 몸을 회복하기 위한 한의학의 팁 하나. 흔히 감기약으로 알려진 쌍화탕은 실제로는 과로로 몸이 축난 노권상(勞倦傷) 상태를 회복시키는 데에 가장 좋은 약이다. 육아로 지친 몸을 회복하기엔 적격이다. 한의사의 정확한 진단에 따른, 개인의 몸 상태에 맞춘 약재의 가감(加減) 및 다른 처방과의 합방(合方)이 있어야 그 효과는 배가된다.

노화고 근육통이고, 그럼에도 아이는 그 자체만으로도 사랑스러워 이 모든 것을 잊게 한다. 아이와 함께 할수록 내 몸은 어쩌면 아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와 더불어 우리를 똑같이 길러냈을 우리 부모님을 생각해본다. 육아(育兒)는 육아(育我)라고 하지 않았나. 아이를 키우면서 결국 우리도 어른이 되어 간다. 아이의 웃음소리와 순수함에 우리는 오늘도 미소 짓는다.

〈경희대한방병원 김형석 교수 프로필〉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학·석·박사

-경희대학교 한방병원 재활의학과 임상조교수

-한방재활의학과 전문의

-한방재활의학과학회 이사

-한방비만학회 이사

-추나의학 교수협의회 간사

-척추신경추나의학회 정회원

-대한스포츠한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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