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화 원장의 멘탈육아] 다문화가정 아이의 말하기가 늦는 이유
[김영화 원장의 멘탈육아] 다문화가정 아이의 말하기가 늦는 이유
  • 송지나 기자
  • 승인 2021.09.18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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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화 강동소아정신과의원 원장
김영화 강동소아정신과의원 원장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 올림픽 정신을 빛낸 명장면을 꼽으라면 유도 남자 100kg급 결승전에서 조구함 선수가 패한 뒤에도 상대였던 일본 대표선수 아론 울프의 손을 번쩍 들어준 장면일 것이다.

우승자인 아론 울프는 미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선수다. 일본은 이번 올림픽 국가대표로 다문화 가정과 귀화 선수 35명을 적극 선발했다.

현재 일본은 신생아 50명 중 한 명은 다문화 가정에서 태어난다. 해마다 최저출산율의 새 기록을 보이는 우리나라도 지난해 기록을 보면 전체 출생아 50명 중 3명은 다문화 가정에서 태어났다. 다문화 가정 출생아가 전체 출생아 가운데 차지하는 비중은 5.9%로 역대 최고치이며 이는 관련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08년 이래 가장 높은 것이다.

필자가 다문화 가정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순전히 다문화가정 자녀들 때문이다. 20여 년 전부터 농촌총각과 결혼하는 결혼이주여성이 늘어나면서 그 자녀들이 소아정신과 병원을 많이 찾게 됐다. 병원에 상담하러 오는 다문화가정 자녀들은 대부분 비슷한 증세를 보인다. 특히 유아의 경우 말하기가 늦거나 자폐증과 비슷한 유사 자폐증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다문화 가정 아이들의 말이 늦은 이유는?

아이가 태어나 옹알이를 시작하면서 엄마는 모국어로 놀아주고 싶지만, 시부모와 남편은 아이는 한국 사람이니 절대 다른 나라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케이스가 많다. 그래서 대게 외국인 엄마들은 아이를 키울 때 아예 입을 다물게 된다.

이 경우 아이는 자라면서 말이 늦고 이유 없이 심하게 떼를 쓰고 처음 만나는 사람을 지나치게 경계하기도 한다. 그리고 소아정신과에서 선천적인 자폐가 아닌데도 자폐 증상을 보이는 ‘유사자폐증’ 진단을 받는 경우도 흔하다.

유사자폐증은 아기를 돌보는 사람이 우울하거나 미숙해서 아기를 기를 때 충분한 자극을 주지 않아 생기는 문제다. 선천적인 자폐증과는 달리 적절한 교육과 치료로 호전이 될 수 있다.

결혼이주 여성들은 이웃과 친척들의 문화적 편견과 배타성으로 상처받은 경험을 호소한다. 행복하지 않은 엄마의 마음은 아이에게 그대로 전달되어 아이도 병들게 되는 것이다.

호주 시드니의 유치원에는 50개국 아이들이 함께 지낸다

호주 시드니의 유치원에는 50여 국적의 이민자 자녀들이 한 교실에 모여 있다. 아이들은 교실에서 부모의 국적만큼 다양한 피부색의 인형을 가지고 논다. 이들을 글로벌 인재로 키우기 위해 전 세계 130가지 문화를 소개하는 1000여 종의 교구도 준비되어 있다. 이 아이들에게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무지개 친구들’의 옷차림과 피부색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인형은 자신과 동일시 할수 있는 좋은 친구이다. 전 세계 아이들의 사랑을 받는 바비 인형은 금발의 백인 일색이었던 것에서 이제는 흑인과 동양인처럼 더 다양한 피부색으로 바뀌고 있다. 시대변화에 발맞춰 인형의 피부색도 다양해지고 있다.

다문화가정 자녀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일찍부터 다문화사회를 맞은 선진국의 경우 이같은 문제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최근 독일과 네덜란드 등 서유럽국가에서는 다문화가정 자녀들이 양쪽 부모 나라의 언어를 모두 배울 수 있도록 하는 ‘륙섹모델’을 채택하고 있다. 국제결혼 가정에서 한쪽 부모의 언어능력 향상에만 집중하는 교육 프로그램은 결국 실패로 끝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경험에 의하면 외국계 부모의 언어를 무시한 채 국어교육만 지원할 경우 처음에는 아이의 언어능력이 향상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교육과정이 끝난 후 몇 달만 지나면 효과가 떨어졌다. 특히 모어를 배우는 것은 모든 학습발달의 밑거름이 되기 때문에 아이의 국어교육 과정에 외국계 부모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하여 양쪽 나라의 말을 함께 가르치고 있다.

순혈주의가 오랜 기간 지배해온 일본조차 다문화국가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그 변화의 속도가 일본에 비해 더 빠르다. 하지만 다문화가정이나 아이들에 대한 교육에 있어 아직도 많은 과제가 남아있다.

많은 다문화가정에서 외국인 엄마의 모국어 사용을 못 하게 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아이가 3세 전 말을 배울 때는 엄마가 적극적으로 말을 많이 시키고 신체적 자극을 주며 놀아줘야 한다.

엄마가 한국말이 익숙하지 않을 때는 자신의 모국어로 아이에게 말을 해야 한다. 중요한 애착형성 시기에 한국말을 못 한다고 입을 다무는 것은 아이의 정서발달에 치명적인 손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 입장에서 5세 이전에 이중 언어를 배우면 오히려 지능개발에도 도움이 된다. 아이가 자라면서 엄마와 아이가 함께 한국어를 배우는 것도 바람직하다.

지난 10년간 한국의 유소년 인구는 161만명이 줄고 고령인구는 279만명이 늘었다. 이런 추세라면 10년 뒤 일하는 인구는 339만명이나 줄어든다는 예측도 있다. 이런 인구변화와 함께 대한민국은 다문화국가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국내 19세 이하 다문화가정 2세들은 26만명을 넘어섰다. 이 아이들이 자라서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정신으로 ‘코리안 드림’을 마음껏 펼칠 수 있게 유아기 때부터 관심과 적극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김영화 원장 프로필>
- 現 강동소아정신과의원 원장
- 現 서울시 강동구 의사회 부회장
- 現 대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회 부회장
- 現 강동구 자살예방협의회 부회장
- 現 서울시교육청 위센터 자문의
- 現 국가인권위원회 아동인권 자문위원
- 前 여성가족부 정책자문위원 
- 前 한국 양성평등교육진흥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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