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의 음악육아] "8월 광복절에 돌아본 애국청년 쇼팽의 삶과 음악"
[김연수의 음악육아] "8월 광복절에 돌아본 애국청년 쇼팽의 삶과 음악"
  • 지태섭 기자
  • 승인 2021.08.31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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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작가 겸 부모교육 코치
김연수 작가 겸 부모교육 코치

쇼팽 콩쿠르는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5년에 한 번씩 열리는 피아노 국제 대회다. 음악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릴 만큼 권위 있는 대회이기도 하다. 2015년 조성진이 쇼팽 콩쿠르 첫 한국인 우승자의 영광을 누렸는데 2020년 코로나로 대회가 연기됐고 올 가을에 열릴 예정이다. 2021년에는 한국인 7명이 본선에 올랐는데 좋은 결과가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 

조성진이 최근 클래식 최고의 레이블 도이치 그라모폰과 그의 두 번째 쇼팽 앨범 ‘피아노 협주곡 2번과 스케르초’를 발매했다. 2016년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 발라드를 작업한 이후 5년 만이다. 그의 음반 소식을 듣고 있자니 쇼팽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파리 몽소 공원 쇼팽
파리 몽소 공원의 쇼팽 조각상

쇼팽은 (Frédéric François Chopin, 1810년~1849년) 폴란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이다. 역사상 피아노곡 작곡가 중에 가장 위대한 사람 중 한명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쇼팽은 폴란드 최고의 자랑이자 위인으로 손꼽힌다.

음악육아 칼럼인 만큼 쇼팽의 성장기와 부모의 교육관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자 한다. 

많은 음악가들이 유년기 시절에 부모로부터 엄청난 압박감을 받았다거나 스트레스를 받는데 쇼팽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부모가 귀족은 아니었지만, 모두 음악을 가까이 한 사람들이었다. 특히 쇼팽의 어머니가 피아노 연주가 가능해서 쇼팽이 자연스럽게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여기에서 조성진과 쇼팽이 몇 가지 어린 시절의 공통점을 가졌는데 그 첫 번째가 피아노 시작 시기가 비슷하다는 것이다.

조성진도 취미로 6세 무렵에 피아노를 시작했는데 한 기록에 의하면 쇼팽도 그즈음에 본격적인 피아노 교육을 시작했다고 한다. 조성진의 경우 6세엔 피아노를 시작하고 7세에 바이올린도 배웠는데 서서 연주하는 악기가 불편했는지 자연스럽게 피아노만 하게 됐다고 한다. 뛰어난 음악가가 모든 악기를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에게 맞는 악기가 따로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기도 하다.

조성진의 부모도 자녀의 선택을 믿고 뒤에서 그림자 같은 조력자의 역할만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자녀가 나아가고자 하는 길을 스스로 선택하고 자발성을 가지고 노력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쇼팽의 부모와 조성진의 부모는 결이 비슷한 교육을 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쇼팽의 모국 폴란드와 한국은 매우 흡사한 역사적 아픔을 가지고 있다. 여러 나라의 지배권에 있어 정식으로 독립하기까지 많은 고초가 있었고, 그 가운데 세계대전은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고 쇼팽의 음악을 들어보면 곳곳에 폴란드인의 리듬, 정서, 민족음악의 요소를 느낄 수 있다. 그가 얼마나 떠나온 조국과 가족들을 그리워하며 외로운 타지 생활을 했는지도 말이다.

쇼팽이 20살 되던 해, 바르샤바에 혁명이 일어났다. 그는 한창 유럽 여러 나라로 연주 여행을 하며 활동을 시작하던 중이었다. 조국에 대한 애국심이 컸던 쇼팽은 귀국해서 폴란드를 위해 싸우겠다는 편지를 아버지께 보냈으나 아버지는 조국을 위해 음악을 열심히 하는 길이 애국이라는 답장을 보냈다. 아버지의 편지 덕분에 20세 이후 모국을 떠났던 청년 쇼팽이 더 음악에 몰입하고 조국에 힘이 되는 음악가가 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바르샤바가 러시아 황제의 군대에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격정적인 연습곡 ‘혁명’ Etude in C Minor, Op. 10 No. 12 ‘Revolutionary’ 을 작곡했는데, 이 곡은 그의 초기 걸작으로 꼽힌다. 왼손의 거침없는 움직임과 극적인 그라데이션의 표현은 애끓는 조국 사랑과 절망 속에 타오르는 젊은이의 극대노하는 반항심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이밖에도 쇼팽은 마주르카, 폴로네이즈처럼 폴란드 인의 정서가 가득 담긴 피아노곡을 수 없이 남겼다. 그의 음악엔 늘 조국 사랑, 떠나온 조국을 생각하는 애국심이 가득했다. 

◆ 피아노의 시인, 가장 잘 하는 것으로 승부를 걸었던 음악가

쇼팽은 그 당시 교향곡이나 오페라를 작곡하면 작곡가로서 인정도 받을 수 있고 경제적으로 도움을 얻을 수 있었음에도 교향곡이나 오페라는 전혀 작곡하지 않았다. 200여곡 중에 170곡 이상이 피아노곡이니, 피아노를 위한 곡만을 썼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리 길지 않은 생애에 걸쳐 피아노라는 악기에 자신의 천재성과 삶 전체를 바친 것이다. 

베토벤을 떠올리면 교향곡, 하이든은 실내악곡, 슈베르트는 가곡이 떠오르는 것처럼, 쇼팽을 떠올리면 ‘피아노 음악’ 피아노곡만을 작곡한 건반위의 시인이란 마음에 차오른다.

피아노가 가진 무궁무진한 음악적 표현력을 발전시키고 서정적 표현을 누구보다 아름답게 표현 할 수 있는 섬세한 작곡가였지만 고국 폴란드를 생각할 때는 열렬한 애국정신으로 건반을 물들이는 정열의 시인이였던 쇼팽. 명 피아니스트 루빈슈타인은 쇼팽의 폴로네이즈를 이렇게 평했다. 

"잊혀져가는 폴란드의 황금시대를 회상하게 만듦과 동시에 폴란드의 위대함과 몰락의 운명은 이 곡 '군대 폴로네이즈'가 있기 때문에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쇼팽은 음악으로, 나라를 지켰다. 녹턴, 마주르카, 발라드, 스케르초, 연습곡, 왈츠, 전주곡, 즉흥곡 등의 수많은 피아노곡의 장르를 재탄생시키며 낭만파 시대 피아노 전성기를 열었다. 그 당시 많은 작곡가들이 으레 해오던 과정들을 따르기보다는 그만의, 그가 가장 잘 하면서도 좋아하는 일을 했던 결과다. 

쇼팽의 이런 정신을 오늘날 우리 아이들이 배우면 좋겠다. 남이 하는 대로만 따라 할 것이 아니라, 독창적인 실험을 서슴지 않고, 남이 가지 않은 길을 용기 있게 걸어가며 자신의 길을 만들 줄 아는 그런 아이들이 되면 좋겠다.

부모인 우리부터 아이를 하나의 잣대로만 볼 것이 아니라, 내 아이가 가진 개성과 강점을 존중하며 자기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믿어주고 기대하고 기다려주어야겠다. 쇼팽과 조성진의 부모처럼 말이다.      

오늘은 쇼팽의 이런 음악을 들어보자

혁명(Etude in C Minor, Op. 10 No. 12 ‘Revolutionary’) - 최근 조성진이 도이치 그라모폰과 작업한 혁명을 들어보길 바란다. ‘혁명’의 느낌을 섬세한 악상 표현과 드라마틱한 기교를 통해 청년 쇼팽이 작곡했을 당시에 느꼈을 분노를 표현하고 있다. 

군대 폴로네이즈(Polonaise in A major op.40 no.1)는 루빈스타인의 연주로 들어보아도 좋을 것이다. 쇼팽이 사랑한 조국, 폴란드의 민족적 정서를 피아노 음악으로 들어보고 싶다면 쇼팽이 작곡한 58개의 마주르카를 들어보자. 

<김연수 작가 프로필>
- 시드니 대학교 피아노 연주과 학사, 석사 졸업
- 이화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 음악교육 졸업
- 前 동서울대학교 실용음악과 교수
- 現 미라클 베드타임 대표
- 저서: △미라클 베드타임 △9시 취침의 기적 △악기보다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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