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법률] 중대재해처벌법과 가습기 살균제 사건
[사람과 법률] 중대재해처벌법과 가습기 살균제 사건
  • 송지나 기자
  • 승인 2021.04.02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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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혜미 법무법인 사람 안전문제연구소 연구위원
오혜미 법무법인 사람 안전문제연구소 연구위원

2021년 1월 26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처벌법)이 공포됐다. 이 법은 공포 후 1년이 경과한 날인 2022년 1월 27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법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중대산업재해와 중대시민재해를 포괄하는 개념인 중대재해의 예방을 위해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의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를 두고, 이 의무를 위반하여 인명피해를 발생하게 한 사업주, 경영책임자, 법인 등을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이 법의 필요성은 법안의 제안 이유에 잘 나타나 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현대 기업의 특성상 안전관리는 다양한 직급에서 구조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형법상 업무상과실치사죄의 적용이 까다로움. 따라서 대부분의 재해 사건은 일선 현장 노동자 또는 중간관리자에게 가벼운 형사처벌을 내리는 결론에 그침.”

“이에 기업 등이 불특정다수의 시민이 이용하는 시설에 대한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위반하거나, 위험한 원료 및 제조물을 취급하면서 위험 방지 의무를 위반하여 인명사고가 발생한 경우,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및 기업 자체에 대한 형사책임을 묻는 법을 제정”

“기업의 조직 문화 또는 안전관리 시스템 미비로 인해 일어나는 중대재해사고를 사전에 방지하려는 것임.”

오늘날 사회구조의 복잡성은 대형 재해일수록 유책한 행위자를 특정하기 어렵게 한다. 대기업일수록 안전·보건 조치 의무 등의 위반으로 인한 재해의 파급력이 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규모에 따라 의사결정 구조도 분권화되어 있어 형사 책임을 물을 특정 구성원을 확정하기 어려워진다.

또한 기업의 규모가 커질수록 형사처벌로 인한 불이익의 수준이 희석되는 모순도 발생한다. 법인인 기업은 현행법상 양벌규정에 의해 처벌되는데 자연인 행위자 개인에게 적용되는 벌금 수준이 적용되는 경우, 기업이 얻는 이익에 비해 벌금액이 상대적으로 적어 처리 비용으로 인식될 수 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중대시민재해에 해당될까?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중대시민재해’는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하거나 ▲동일한 사고로 2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10명 이상 발생하거나 ▲동일한 원인으로 3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질병자가 10명 이상 발생하는 결과를 야기한 재해로, 특정 원료·제조물, 공중이용시설, 공중교통수단의 설계, 제조, 설치, 관리상의 결함을 원인으로 발생해야 한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공식적으로 환경부에 피해를 신고한 사람만 6817명이며 그중 사망자는 2020년 7월 기준 1553명이다.

문제가 된 가습기 살균제에 연루된 기업만 원료 공급 및 제조업체 20곳, 판매업체 27곳에 달하며, 그 판매량도 1994년부터 2011년까지 연간 60만개가량으로 약 627만 명이 위험에 노출됐다고 추산된다.(‘가습기살균제 피해규모 정밀추산 연구’,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연구용역, 2020.01.) 당시 중대재해처벌법이 있었다면 중대시민재해에 해당할 수 있다.

이 사건은 현재도 관련 재판이 진행 중이다. 지난 1월에는 업무상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기소된 SK케미칼 전 대표와 애경산업 전 대표 등 13명에게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가장 피해자가 많았던 옥시의 경우 지난 2018년 전 대표가 징역형을 확정받았지만, 옥시 법인은 양벌규정에 의해 벌금 1억 5000만원만 선고받았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중대시민재해 사건 책임은?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에게 재해예방에 필요한 인력·예산·점검 등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을 비롯한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를 정하고 있다.

만약 이 의무를 위반하여 사망자가 발생하는 중대시민재해에 이르게 된 경우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은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형법상 업무상과실치사상죄 적용시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는 것과 비교해보면 중한 책임을 묻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중대재해처벌법은 사망자가 발생한 경우 징역과 벌금이 동시에 선고될 수 있는 병과 규정도 두고 있다.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 기업의 최고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는 직접 근거가 생겼다는 점도 특징이다.

법인의 처벌에 있어서도 ▲사망자가 발생한 중대시민재해의 경우 50억원 이하의 벌금 ▲그 밖의 중대시민재해의 경우 10억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의 수준이 높다.

또한 경영책임자 등의 고의, 중과실이 있는 경우 법인이 손해액의 5배까지 손해배상책임을 지는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도 두고 있어 기업의 경제적 제재에 대한 부담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제안 이유와 목적을 돌아보며

중대재해처벌법의 제정은 시민의 생명과 신체를 위협하는 중대재해 발생에 대한 책임을 엄중히 묻겠다는 의지이기도 하지만 이를 통해 중대재해를 ‘예방’하는 것에 궁극적 목적이 있다.

특히 의사결정권한이 있는 사업주, 경영책임자 등에게 직접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를 부여하고 처벌 근거를 마련해 기업의 안전관리 문화와 시스템의 변화를 촉진하겠다는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돌아가 보면, 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 문제가 된 제품들은 출시 이후에 안정성 시험 의뢰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시험 결과가 나오기 이전에도 ‘인체에 안전’하다는 내용의 라벨이 부착되어 판매된 것으로 밝혀졌다. 기업의 안전관리 시스템, 준법 감시 시스템이 잘 작동했다면 과연 이러한 일이 발생할 수 있었을까 의문이 남는다.

부디 중대재해처벌법의 제정을 계기로 기업들의 안전관리에 대한 인식 변화와 예방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 이와 같은 대형 참사를 겪지 않길 바라본다.

 

<오혜미 프로필>
現 법무법인 사람 안전문제연구소 연구위원
前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근무
‘현장이 묻고 전문가가 답하다! 안전보건 101’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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