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수의 유머학개론] 지금이 시작할 때입니다
[이정수의 유머학개론] 지금이 시작할 때입니다
  • 송지나 기자
  • 승인 2021.03.01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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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수 개그맨 겸 주부작가
이정수 개그맨 겸 주부작가

요즘 뉴스를 계속 보고 있으면 난리가 이런 난리가 없습니다. 팬데믹도 충격적이고 힘든데, 북극의 찬 공기는 거기에 그냥 가만있지 뭐 하러 내려와서 힘든 사람들을 더 힘들게 만드나 싶고요.

내 집은 없는데, 집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서 돈을 더 벌어야 하는데 경기는 계속 안 좋아지고, 심지어 내가 잘 모르는 주식은 왜 이리도 잘 되는지요. 배가 계속 아픕니다. 거기다 사람들의 인내심은 이미 한계치를 넘어서 늘 활화산입니다. 계속 용암이 흘러나오고 폭발의 연속이죠.

이렇게 적고 보니 이런 생각도 듭니다. ‘혹시 이것이 종말의 수순인가?’

그렇다고 제가 종말론자 같은 것은 아니지만, 뭐 종말이 오면 이런 식으로 오지 않겠나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쯤 되면 대체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하려고 종말까지 들먹이는가 하는 생각을 하실 겁니다.(웃음)

우리는 지금 이 시대를 함께 살고 있습니다. 비슷한 환경 속에 있다는 거죠. 그런데 각자 이 시대에 임하는 자세가 다릅니다. 이 종말적 상황에 어떻게 살고 계십니까?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불평만 하고 계신가요? 아니면 한 그루의 사과나무라도 심고 계신가요?

저는 얼마 전에 둘째가 태어났습니다. 완전 방심하고 있다가 당했죠. 사실 첫째가 4살일 무렵부터 둘째를 가지려고 시도했습니다. 근데 자존심 상하게 안 생기더라고요. 금술은 워낙 좋으니 하다 보면 언젠간 생기겠지 했는데도 안 생겼습니다.

그러다 첫째가 7살이 되니까 이제 슬슬 이 생활이 아주 편해지더란 말입니다. 첫째 리예도 그쯤 되니 딱히 동생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둘째 생각을 접었죠.

그런데 그즈음, 건강검진을 했는데 콜레스테롤 수치와 혈압이 안 좋게 나온 겁니다. 그래서 다이어트를 시작했습니다. 살을 9kg 정도 뺐더니 피로감이 많이 줄어들고, 몸도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침 기상했을 때 컨디션이 많이 다르더라고요. 그래서였을까요? 둘째가 생겼습니다. 아기가 이제 안 생기는 몸이 된 줄 알았는데 뚱뚱해서 안 생겼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2020년 12월에 둘째가 태어났습니다. 많은 분이 SNS를 통해 축하도 해주시고, 걱정도 해주셨습니다. 걱정 댓글 중 가장 많은 것이 ‘하나에서 둘이 되면 두 배만 힘든 것이 아닙니다’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말을 개의치 않았습니다. 전 육아를 잘하니까요. 하하하!

그런데 경험해보니 이것이 단지 기술적 문제만은 아니더라고요. 어쩔 수 없는 정신적, 체력적인 문제가 나타났습니다.

예전엔 첫째와 놀아주는 부분에 있어서 미안한 게 없었습니다. 워낙 많이 잘 놀아주니까요. 그런데 둘째가 태어난 이후 첫째에게 시간을 내기도, 어딜 다니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양쪽 다 잘해주고 싶은 욕심이 계속 절 힘들게 했습니다.

이에 더해 수면 부족으로 인한 컨디션 저하. 심지어 둘째 등에 붙어 있는 등센서는 저의 체력을 더욱 빼앗아갔습니다. 이런 상황을 선배님들은 미리 알고 계셨던 거죠.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저는 시간을 쪼개서 영어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처음 영어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은 딸 리예때문이었습니다.

리예를 학비가 비싼 영어유치원을 보냈습니다. 학비가 부담되지만 영어 좀 가르쳐보겠다고 보낸 거죠. 그런데 솔직히 부모가 영어를 못하면 결과적으로 이것이 의미가 없겠더군요. 그렇다고 아내에게 하기 싫은 영어공부를 강요할 수는 없으니 제가 시작한 겁니다.

그리고 제 양육철학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내가 못하는 것은 자녀에게도 강요하지 말자!’

자녀가 나를 뛰어넘어 더 대단한 사람이 되어 주길 바라는 것은 부모의 당연한 마음이겠지만, 어차피 우리의 유전자에서 나온 아이이니 그 아이가 수능 만점자가 될 거라는 환상은 갖지 말자는 거죠. (우리 부부는 수능을 만점 받아 본 적이 없음) 그런 환상이 부모와 아이들을 동시에 힘들게 만드는 거니까요. 콩 심은 데 콩이 나는 겁니다.

그러니 아이를 성장시키고 싶다면 부모가 먼저 성장하면 됩니다. 그러면 아이도 자연스럽게 성장할 수 있다는 거죠. 내가 외국인과 대화하는 것이 두려운데, 아이에겐 외국인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라고 시키는 것이 말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제가 먼저 외국인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해보려고요.

다행히 저는 상황이 좋습니다. 코미디언들은 영어를 배우기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거든요. 틀리는 것이 두렵지 않다는 거죠. 틀려도 웃기니까요. 결국, 맞든 틀리든 둘 다 좋은 쪽으로 흐르기 때문에 인내심과 시간만 있으면 다른 사람들보다 쉽게 영어를 배울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바쁜 애 둘 육아 상황 속에 제가 과연 인내심과 시간을 만들 수 있느냐는 거였죠. 그런데 그게 되더라고요. 만들려고 하니까 만들어지더란 말입니다. 새벽 5시, 모두가 자는 조용한 시간에 먼저 일어나서 공부합니다. 둘째 로이가 태어나기 전엔 알람으로 일어났고, 태어난 후엔 ‘응애’에 일어납니다. 로이가 거의 아침 5~6시에 깨서 울거든요.

제가 영어공부를 시작한 지 4개월 정도 됐으니 그리 대단한 진보를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시작 전보다는 확실히 영어능력이 성장했습니다. 이대로만 쭉 가면 저는 미국인이 될 것 같아요.(웃음)

이게 제 사과나무입니다. 바쁘긴 하지만 그래도 제 삶을 위해 한 그루 심어 봤습니다.

요즘같이 우울한 시절엔 의욕이라는 것이 잘 생기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기회인 거죠. 남들이 의욕이 없어서 무언가를 시작하지 못할 때, 여러분은 시작하는 겁니다. 그동안 미뤄왔던 일이나 해보고 싶었는데 상황이 되지 않아서 못했던 것을 시작해보세요.

죽어라 파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식으로 마음을 먹으면 시작하기 힘들어요. ‘그냥 한번 해보지 뭐!’라고 쉽게 생각해보세요.

그런 타입들 있잖아요. 뭔가를 시작하려면 일단 연장부터 싹 세팅해야 하는 타입들이요. 저도 그랬거든요. 근데 그런 사람은 그 일을 하기 전에 두려워서 시간을 끌 핑계를 대는 것뿐입니다.

사진을 찍고 싶으면 일단 핸드폰으로도 시작할 수 있어요. 글을 쓰고 싶으면 sns에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예쁜 글씨체를 연습하고 싶으면 오선노트가 아니어도 그냥 쓰면 됩니다. 다이어트를 하고 싶으면 지금 5분이라도 스트레칭을 해요. 그냥 지금 당장 시작하라는 거죠.

약간 부끄러운데, 여러분께 도움이 되길 바라며 말씀드릴게요. 제가 영어공부를 시작한 시기에 유튜브도 같이 시작했습니다. 스스로 행복해지는 습관에 대한 영상을 올렸습니다. 제가 보기엔 너무도 중요한 영상이었죠. 그런데 초반에 큰 호응을 못 받았습니다. 저는 이것이 유튜브 채널 시작단계에서 흔히 보이는 폭풍전야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최근에 둘째 로이와 육아로 씨름하다가 힘들어서, 프리하게 라이브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영상이 행복습관 영상에 비해 조회수가 훨씬 높았습니다. 폭풍전야, 이딴 거 아니더라고요.(웃음) 단지 습관 영상이 여러모로 부족한 부분이 있었던 거였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실망하면서 끝이냐? 아니죠. 물론 결과물이 별로였지만, 저는 지금 편집 실력이 많이 늘었습니다. 시간은 거짓말하지 않잖아요. 지금은 5분짜리 편집하는데, 4시간이면 됩니다. 시작할 때는 10시간 넘게 걸렸거든요. 앞으로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모르지만 일단 저는 어제의 나보다 나아졌습니다.

지금이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최적의 상황입니다. 안된다고 하지 말고, 그냥 해보세요. 그냥 하면 됩니다. 지금 당장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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