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수의 유머학개론] 최선을 다해 행복해지자
[이정수의 유머학개론] 최선을 다해 행복해지자
  • 송지나 기자
  • 승인 2021.02.02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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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수 개그맨 겸 주부작가
이정수 개그맨 겸 주부작가

저의 SNS에 댓글이 하나 올라왔습니다. ‘지금 DM를 확인해주세요. 확인하지 않으면 그 내용을 게시하겠습니다.’ 약간 위협적인 댓글을 보고 DM을 확인했습니다.

DM의 내용은 제가 예전에 살던 아파트의 커뮤니티에 누군가 이정수라는 아이디로 악의적인 글을 남겼다는 내용의 캡처 사진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사진을 봐도 그게 실제 그 아파트의 커뮤니티인지도 모르겠더라고요. 전 그곳에 살 때도 커뮤니티를 잘 이용하지 않았거든요.

어쨌든 아이디가 이정수인 사람이 그 아파트를 비방하는 글을 게시하고 있었고, 제 SNS 댓글 작성자분 말로는 그 아이디 사용자 본인이 개그맨 이정수라고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DM으로 답을 남겼죠. “당연히 제가 아닙니다.”

제가 아무리 생각이 없어도 본명을 걸고, 행복하게 잘 살았던 추억 가득한 곳에 비방의 글을 올리겠습니까? 심지어 거기에 친한 지인도 많은데요.

그 커뮤니티 글을 보고 흥분하신 분이 제게 확인을 요청하셨고, 이런 오해가 억울하고 분하지만, 그냥 유명세라고 생각하고 아니라고 말씀드리곤 끝냈습니다.

우리는 거짓이 가득한 극단의 우울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닌 전 세계적인 흐름입니다. 그런데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우울한 시대를 살아야 할까요? 우린 그냥 세상 탓을 하며 세상이 좋아지길 기다려야 할까요? 그러기엔 이 소중한 하루하루가 너무 아깝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저는 이 우울한 시대를 탈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바로, 우리 각자가 스스로 행복해지려고 최선을 다하는 겁니다. 행복해질 방법이 있다면 누군가에게 피해가 되지 않는 범위에서 모든 것을 다 동원해야 합니다.

누군가는 이런 방식을 행복에 대한 강박처럼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극단의 우울함을 탈출하기 위해 이 정도의 처방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고선 그냥 이번 생은 틀렸다며, 어두운 시대에 눌려서 그냥 찌그러진 삶을 살아야 할 뿐입니다.

인간사회는 서로 유기적으로 작용합니다. 심지어 요즘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커뮤니티를 형성하기 때문에 훨씬 더 빠르고 폭발적으로 불길이 번집니다. 한 명이 화가 나면 그와 연결이 되어 있는 사람들도 화가 나죠. 마치 화재처럼요. 불이 넓게 번지고 나면 화점인 곳을 잡는다고 해서 바로 불이 꺼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방화문이 필요한 겁니다.

스스로 행복해진 사람들이 이 분노와 우울의 방화문이 되어 줄 수 있습니다. 화난 사람들을 탓할 것도 아니고, 나부터 마음의 여유와 행복감을 만들고 유지를 하는 거죠. 그래서 불길이 더 번지지 않고 내 선에서 끊어지는 겁니다. 이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불행한 기운이 나로 인해 재생산되지 않게 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멋진 일을 한 겁니다. 불행의 통로가 되어봐야 어차피 내 불행의 시간만 길어지는 거예요. 최소한 이 글을 읽은 사람만이라도 스스로 행복해져서 세상의 방화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감정부터 컨트롤 해야겠죠. 어떻게 하면 어두운 감정을 기분 좋게 끌어 올릴 수 있을까요?

우선 허밍을 해보세요. 가장 좋아하는 곡을 허밍으로 부르는 겁니다. 노래방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요. 어떤 노래든 효과는 있지만, 가능한 밝은 노래면 더 좋겠죠?

저는 H.O.T.의 ‘캔디’나 god의 ‘촛불하나’, 러브홀릭의 ‘버터플라이’ 등의 노래를 흥얼거려요. 저는 노래를 잘하지 못하기 때문에 주로 허밍을 합니다만, 잘하시는 분은 그냥 작게 부르셔도 됩니다.

우리가 주변에서 노래를 흥얼거리는 사람을 보면 그러죠. “뭐 좋은 일 있어?” 그렇습니다. 기분이 좋으면 노래가 절로 나오잖아요. 반대로 노래를 흥얼거리면 기분을 끌어올릴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기분을 끌어올렸다면 그 기분을 내 주변에 느끼게 해주면 됩니다. 우선 가족부터요. 사실 우리는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잘 못 해줄 때가 많죠.

집에 있을 때 화나는 일이 있거나 슬픈 일이 있다고 해도 굳이 티를 내지 말고, 허밍을 하면서 다녀보세요. 그럼 잠시 후에 다른 가족도 허밍을 하는 것을 보게 될 겁니다. 신기하게 전염이 돼요. 그렇게 가족의 기분을 챙겨주면 가족도 내 기분을 챙겨줄 겁니다. 어려운 시기에 가족끼리라도 똘똘 뭉쳐야죠.

그리고 밖으로 나가서도 나와 관계된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세요. 그럼 위기가 왔을 때 그 사람들이 많은 힘이 되어 줄 거예요. 저도 마음이 너무 힘들었던 순간들이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제게 좋은 영향 받은 분들이 절 붙들어 주시더라고요. 너무 감사했습니다.

제가 예전에 노숙인 지원센터의 홍보대사를 잠깐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알게 된 건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게으르고 일도 안 하려고 하는 이미지의 노숙인은 사실 소수입니다. 다들 어떻게든 해보려는데 안 되는 사람들이 더 많죠.

그중에는 소위 잘 나가다가 노숙인이 된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는 일이 잘 안 됐을 때 주변에 잡아 줄 가족이나 친인척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랍니다. 진짜 마지막에 잡아 줄 사람만 있으면 노숙인까지 되지는 않는다고 해요.

최소한 내 주변만이라도 잘 챙기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내가 무너질 때 잡아 줄 사람이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분노를 분노로 받지 마세요. 제가 부부싸움에서 주로 추천하는 방법인데요. 상대가 화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설령 거기에 억울한 부분이 있더라도 시간을 두고 설명할 기회가 반드시 올테니 잠시 참고 기다리라는 거죠. 그러면 상대도 진정이 될 거고, 그 후에 천천히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천천히 풀어갈 때 더 말을 잘 할 수 있을 겁니다.

사실 저는 나중에 천천히 풀어도 우리 아내를 이길 수는 없습니다. 우리 아내가 말을 더 잘할뿐더러 마지막에 아내가 삐지거나 울면 무조건 사과하게 돼요.(웃음)

아무튼 지금 이 말이 마냥 참으라는 뜻은 아닙니다. 박명수옹의 멋진 명언이 있잖습니까? ‘세 번 참으면 호구된다!’ 마냥 참아서 호구가 되라는 말이 아니라 나중에 설명할 좋은 기회가 오니 때를 기다리자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용서를 좀 많이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용서하지 못할 기준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분노가 용서의 경계선쯤에 있다면 그래도 용서 쪽을 선택해보라는 거죠.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어떤 것이 용서일까요? 화가 나서 세상 몹쓸 소리를 댓글에 써서 분을 풀고 싶은데, 그때 그 댓글을 안 적는 것만으로도 용서인 겁니다. 마찬가지로 화가 나서 뭔가를 말하려다가 그걸 안 하는 것도 용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보통 사람은 용서하고도 분이 안 풀려서 다시 용서를 취소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만큼 용서가 어려운 일인 거죠. 그래서 용서를 한 후에 스스로 마음에 약을 발라줘야 합니다.

‘잘했다, 대단하다! 역시 용서는 강자가 해주는 거지. 내가 강자로서의 미덕을 보였다!’

이렇게 멋진 말들로 자신을 쓰담쓰담 해주는 겁니다. 그럼 용서에 대한 아쉬운 부분이 일정 부분 해소될 수 있을 겁니다.

제가 감히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제 주변의 몇몇 정도는 따뜻하게 바꿔놓을 수 있고, 마음을 진정시켜 줄 수 있습니다. 하물며 여러분들은 오죽하겠습니까? 더 잘하실 수 있습니다. 이 긴 글을 끝까지 읽어 주신 분들이잖아요.(웃음)

각자 주변 분들만 잘 챙겨줘도 우린 이 극단의 우울한 세상을 다 함께 헤쳐나갈 수 있습니다. 진심으로 여러분의 행복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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