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김도현 목사 “베이비박스와 입양특례법은 분명 다른 사안”
[인터뷰]김도현 목사 “베이비박스와 입양특례법은 분명 다른 사안”
  • 백지선
  • 승인 2014.07.24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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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에서 ‘유기’라는 단어를 찾으면  내다 버림 또는 어떤 사람이 종래의 보호를 거부하여, 그를 보호받지 못하는 상태에 두는 일’이라 나와 있다. 그렇다면 부모가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두고 떠나는 일을 유기라 할 수 있을까.

베이비박스 관계자들과 이들에게 영향을 받은 일부 대중은 베이비박스를 ‘생명을 살리는 박스’라 인식한다. 이 말의 뜻은 아이가 베이비박스가 아닌 다른 곳에 있었다면 죽었을 테지만 베이비박스 안에 담겼기에 아이가 살았다는 맥락으로 이해된다. 아이를 베이비박스에 넣지 않고 다른 곳에 두고 떠나는 부모는 아이가 죽기를 바랐다는 것인가?

뿌리의 집 김도현 목사는 해외입양인이 모국 방문 시, 이들의 인권신장을 돕는다. 오랜 시간 해외입양인들과 만남을 가지고 입양 관련 활동을 해온 그가 내린 결론은 ‘부모가 입양이 아닌 직접 양육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는 육아와 관련한 시스템을 ‘범죄신고 112’, ‘화재신고 119’처럼 인식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 뿌리의 집 김도현 목사.

 


◇자녀 유기하는 엄마 극소수, 오해 말기를

-베이비박스는 생명을 살리는 박스인가?


베이비박스가 생명을 살리는 박스라는 것은 ‘엄마가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버리지 않았으면 엄마에 의해 아이가 죽었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이를 ‘영아 살해’ 또는 ‘유아 살해’라고 부르는데, 이런 일을 저지르는 엄마는 임신거부증이나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는 매우 극소수이고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여성들은 아이를 죽인 여성들이 아니다. 오히려 아이가 살길 바란다.

영유아살해 관련 사건은 주로 경찰과 언론을 통해 접한다. 1년 평균 12건이며, 매달 1건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이런 아이들은 베이비박스 안에 담기지 않는다. 영유아살해는 출산 직후~3일 안에 일어나는데, 아이를 화장실에서 낳아 변기에 버린 후 물을 내리거나 건물 밖으로 던지거나 화단에 묻는 등의 형태로 이뤄진다. 엄밀히 말하면, 이런 영유아살해는 어디선가 계속 일어난다.

나는 이론적 입장에서 베이비박스가 생명을 살리는 박스가 아니라고 본다. 엄마는 아이를 안고 베이비박스로 걸어오며 이 아이가 잘 살길 바란다. 그런 엄마들에게 (이곳에 아이를 두지 않았다면 죽었을 거란 전제로)‘베이비박스는 생명을 살리는 박스’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 주사랑공동체 베이비박스.

 


◇왜 아기는 돌보면서 엄마는 돌보지 않나?

-베이비박스 역할이 바뀌어야 할까?


베이비박스에 아이 혼자 두고 갈 게 아니라 ‘엄마가 아이를 어떻게 살릴까, 어떻게 키울까’를 고민해야 한다. 일단 박스가 아닌 위기지원센터여야 한다. 오히려 엄마에게 베이비박스는 양육보다 더 쉬운 대안이다. 하지만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두고 나온 엄마가 잘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왜 아이에게만 관심을 기울이나? 엄마와 아이는 모두 사회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다.

사회복지학 관점에서 보면 베이비박스는 사회가 엄마와 아이 사이를 차단하는 것과 같다. 두 사람 다 복지혜택을 받아야 하지만 엄마는 사회 속으로 숨고 만다. 이것이 베이비박스의 문제며 숙제다.

 


◇입양특례법과 베이비박스 연관짓지 말라

-왜 베이비박스가 논란의 대상이 됐나?


첫째, 베이비박스에 놓인 아이들이 늘어 입양특례법에 문제를 제기했다고 볼 수 있다. 두번째는 입양특례법의 허점을 지적하려다 보니 베이비박스를 예로 들어 제기한 경우다.

입양특례법 개정 당시 우리 쪽과 정부 관계자의 입장이 매번 부딪혔다. 정부는 입양친화적 태도를 취했고 입양기관의 편을 들었다. 우리는 여성과 아동의 인권을 옹호했다. 결국 우리 입장을 들어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양아가 친 부모를 알 권리, 입양숙려일을 (뿌리의 집에서 주장한)30일에서 (현재 입양특례법 입양숙려일인)7일로 하는 것 등 일정 부분을 양보해야 했다. 하지만 입양부모의 자격심사 강화, 가정법원의 입양허가 등 큰 원칙들은 반영됐다.

입양특례법 개정에 대한 입양기관의 불만은 베이비박스로 옮겨갔다. 2012년 8월 5일 입양특례법이 첫 시행된 당일 베이비박스 안에 아기와 함께 메모가 놓여 있었다. 메모의 내용은 입양특례법이 개정돼 아이의 출생신고를 할 수 없어 베이비박스 안에 아이를 두고 갈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었다. 내 개인적으로 이 사건이 의심스럽다.

이들은 입양특례법이 재개정되길 바란다. 사실 입양특례법이 개정되기 전만 해도 입양기관장이 독자적으로 아이의 ‘고아호적’을 만들 수 있었다. 이렇게 입양된 아이들은 성장을 해도 친부모를 모른다. 입양 관련 서류ㆍ자료가 조작ㆍ창작 되면 알 수 없지 않은가? 이러다 보니 입양인이 친부모를 찾는 비율이 2.7% 밖에 되지 않는다.

또 입양기관에서는 아이를 입양 보내게 되면, 아이의 흔적이 부모의 서류에서 삭탈된다는 것을 알려줘야 하는데, 오히려 겁부터 주는 실정이다. 결국 입양특례법 재개정에 대해 입양부모와 주사랑공동체 이종락 목사가 들고 일어난 것이다.

▲ 뿌리의 집 김도현 목사.

 


◇입양 겪어본 이가 입양법 개정 힘쓰다

-입양특례법 개정 배경은?


국가적 차원의 입양정보센터가 존재했으나 매우 기형적인 조직이었다. 일하는 사람은 공무원인데 건물 임대료는 입양기관에서 지불했다. 이와 같은 형태가 계속 되다 MB정부 들어와 센터를 중앙입양정보원으로 바꿨고 입양특례법도 개정했다.

입양특례법 개정은 MB정부 때 당시 보건복지부 김승희 장관의 독특한 경험에서 비롯됐다. 김 장관이 미국 유학을 갈 당시 입양기관으로부터 입양아 에스코트 비용(=비행기 티켓)을 받았다. 김 장관이 유학 떠났던 시절의 유학생들은 이런 식으로 비행기 티켓 비용을 대신했다. 우리 모두 가난했던 시절이었다. 그때만 해도 미국을 가려면 20시간 이상 걸렸다. 김 장관은 타국으로 입양 가는 아이들을 20시간 동안 돌본 셈이다. 그 사이 김 장관과 아이 사이에는 애착 관계가 형성됐다. 착륙 후 미국 백인 부모들에게 아이들을 건네자 백인 부모는 적극적인 스킨십으로 아이를 반겼다. 아이 입장에선 낯선 장소에서 낯선 사람이 자신의 얼굴을 부비고 뽀뽀하는 게 공포스러웠을 것이다. 김 장관은 이 모든 것을 직접 경험했다. 김 장관은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부임하자마자 입양 과정과 절차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관련 법 개정을 시도했다.

▲ 주사랑공동체 인터넷카페 캡처.

 


◇입양은 복잡해야…직접 양육하도록 해야 한다

-입양기관에서 지적하는 입양특례법 문제는?


물론 입양특례법도 완벽하지 않다. 첫번째는 입양아가 성인이 돼 부모를 찾아올 수 있다. 만약 부모가 입양 보낸 자녀를 만날 상황이 아니라면 이는 어떡해야 하나? 두번째는 입양 보내기 위해 부모 밑으로 출생신고를 마쳤으나 아이가 입양되지 않는다면? 장애아의 경우 입양이 잘 되지 않고, 세번째는 입양 갔던 아이가 파양되면?

위 문제는 가족관계등록법에서 다뤄야 한다. 현재 가족관계등록법 일부 개정안으로 ‘제3자가 여성사생활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즉, 여성이 아동을 출산한 사실이 현출되지 않도록 한다’가 채택되면 입양부모의 심적 부담이 줄지 않을까?

입양절차가 편리해지면 입양사업이 활성화될 것이다. 그러나 가족관계등록법이 바뀌면 키우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다. 예를 들어, 아이의 출생신고를 마쳤다고 치자. 입양을 보내기 위해 출생신고를 했다 하더라도 부모는 ‘이왕 내 밑으로 출생신고를 마친 마당에 내가 직접 키우자’라며 돌아설 수 있다.

입양특례법이 (입양이 어렵게)개정되자 입양절차가 복잡해졌다. 가정법원이 입양가정을 심사하자 입양되는 아동 수, 입양가정 수, 입양 희망 수도 확연히 줄었다. 이제는 전처럼 수월하게 입양대열에 합류할 수 없다. 아동인권 면에서 보면 결과적으로 잘 된 것이다. 당연히 입양기관의 수입이 줄었고 입양기관은 베이비박스를 통해 여론을 형성하고 있다.

현재 입양기관에서 주장하는 것을 분석해보면, 입양기관에서 아이를 데려가는 것은 괜찮고 베이비박스에서 아이를 데려가는 것은 괜찮지 않다는 뜻이 된다. 입양특례법과 베이비박스는 분명 다른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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