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백현정 소장 “한국, 저출산 보다 아이를 어떻게 잘키울까 고민해야”
[인터뷰]백현정 소장 “한국, 저출산 보다 아이를 어떻게 잘키울까 고민해야”
  • 백지선
  • 승인 2014.07.22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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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웃는 세상’ 백현정 소장(35)의 요즘 삶은 2012년 7월 여주 4세 여아 성폭력 사건, 8월 나주 여아 성폭력 사건 등을 만나면서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는 사건을 접하며 분노했고 ‘아이가 웃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각 부처를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그는 누군가 바꿔주기를 기대하기보다 ‘나’ 자신이 바꿔야 하고 내 남편, 내 친구가 바뀌어야 세상이 조금씩 바뀐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이 원칙을 똑같이 적용한다. 부모라 해도 세상 모든 위험으로부터 자녀를 보호할 수 없다.

백 소장은 아이 스스로 위험을 감지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는 방법을 알리는데 요즘 동분서주하고 있다.

▲ 아이가 웃는 세상 백현정 소장.

 


◇인명구조사 취득 교직원에게 가산점 부여?!

-영유아를 대상으로 한 안전교육은 늘었는데 교사 안전교육은 어떤가?

요즘은 초중고 교직원도 심폐소생술 교육을 한다. 차라리 교육을 하기보다 ‘인명구조사 자격증’을 취득할 시, 가산점을 준다고 하는 게 어떨까 한다. 모두 다 취득하지 않을까? 예를 들어 한 단체가 위기상황에 처했다고 가정했을 때, 그 가운데 단 한사람이라도 인명구조에 대한 지식이 있다면 단체 구성원의 생존율은 급격히 높아진다. 독일에선 자전거면허 자격증과 수영 인명구조 자격증을 반드시 따야 한다. 우리나라도 인명구조사가 많아져야 한다. 이를 장기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어린이집ㆍ유치원은 물론 베이비시터 활용 가정에서도 CCTV 사용, 긍정적인가?

부정적이라 생각해왔다. 감시받는 느낌이다. CCTV의 특징은 소리는 들리지 않고 영상만 볼 수 있다는 거다. 오해의 소지가 있다.

그러나 최근 많은 사건들을 접하며 CCTV가 없어서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만약 교사가 아이를 때렸거나 밀친 장면이 CCTV에 녹화돼 있다면 교사의 잘못을 잡아낼 수 있다.

CCTV 설치는 하되, 아무 때나 볼 수 있도록 하는 게 아니라 사건이나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해당 시각, 증거 자료 등으로 사용한다면 CCTV 설치 및 사용을 찬성한다. 유치원에 갔다온 아이의 몸에 심하게 멍이 들었을 때 엄마는 CCTV 확인을 서류로 요청할 수 있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CCTV 확인을 거부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CCTV 확인 목적은 감시가 아니라 사실 확인이다.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CCTV 설치가 감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CCTV는 현장의 진실을 담을 수 있는 유일한 눈이다.

▲ 2014년 여성주간 기념토론회 - '서울여성, 안전을 다시 보다'에서 발표중인 백 소장.

 


◇출산율에만 관심…태어난 아이 잘 지켜야

-2012년 여름, 여아 성폭력 사건 등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사실 이 사건들을 접하기 전부터 소소하게 활동을 해왔다. 아이를 낳고 나서 조금 더 ‘극성 엄마’가 됐다(웃음). 어렸을 때 ‘한 아이’라는 책을 읽었다. 특수교사가 반에서 장애가 있는 아이를 보듬어주는 내용인데, 그 가운데 아이가 성폭행 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에게 그 장면이 무척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외국책이기에 외국에서만 일어났던 일로 생각했다.

그러던 중 2012년 7월 성폭행 당한 여주 여아가 딸 아이와 동갑인 것을 알게 됐다. 사건을 많이 알려야겠다고 고민하던 중 8월 나주 여아가 성폭행 당한 사건이 또 일어났다. 당시 집회도 했는데, 돌이켜보면 휩쓸린 면도 있었다. 이후 ‘성폭력이 뭘까?’, ‘아동 성폭력은 무엇이고 아동학대는 뭘까?’, ‘사람들은 왜 이런 나에게 정치를 한다고 하는 걸까?’ 등. 현재 성폭력 상담, 가정폭력 상담 등을 수료한 상태다. 또 포럼을 찾거나 하면서 공부를 계속 하게 됐다.

지금까지 내가 보고 느낀 한국은 아이에게 대해 참 무관심한 나라다. 아이를 많이 낳으라고 얘기하지만 출산율 숫자에만 관심 있을 뿐, 태어난 아이를 어떻게 보호하며 잘 키울 수 있을까란 고민은 깊게 하지 않는다. 그래서 미혼모에게 양육지원비를 월 7만(미혼모가 25세 이상인 경우)~15만원(24세 이하인 경우) 밖에 안 준다. 미혼부 혼자 아이를 등록할 수 없고 정 등록하려면 3번의 재판과 DNA검사를 거쳐야 한다. 한국은 아직까지 ‘아동인권후진국’이다.

베이비박스가 있는 곳도 갔다 왔다. 이곳에선 아이의 생명권과 인권에 대한 문제가 논의된다. 인권이 생명보다 우위에 있을 수 없다. 인권을 위해 생명을 버릴 수 없지 않은가?

▲ 아이가 웃는 세상 백현정 소장.

 


◇시민은 시민역할, 정부는 정부역할 충실하자

-아이들을 보호하고 지키기 위한 근본적인 문제와 해결방안은?

우리나라 부처는 탁구를 한다. 만약 학교 교내에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다고 하자. 맨 먼저 교육부가 ‘성폭력’ 사건이기에 여성가족부로 사건을 넘긴다. 그러면 여가부는 ‘교내’에서 사건이 발생했다면서 교육부로 다시 넘긴다. 만약 여기 경찰이 개입되면 안행부가 나오고, 피해자 가정형편이 어렵다면 보건복지부까지 등장한다. 이런 식으로 원인을 분석하고 따지고 들면, 결국 피해자에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나라의 보호나 보상을 받는 게 아니라 탁구공이 된다. 본인이 혼자 알아보다 지쳐서 포기하는 게 우리나라 구조다.

내가 이들을 대신 뛰어다녔던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나는 당사자가 아닌 제3자이기에 감정적으로 격해지는 게 덜하며 꼼꼼하게 따질 수 있다. 피해자와 연대가 돼 있고 피해자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으니 정부에서도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대신 따졌다.

- 두 성폭행 사건 외 다른 사건에도 협조했나?

있다. 그러나 나는 그저 평범한 시민이다. 같이 분노해줄 수 있고 슬퍼해줄 수 있으나 이를 벗어나 역할을 하기 굉장히 힘들다. 이후는 정부가 맡아서 해줘야 한다. 난 법원에 가서 피해자의 손을 잡고 옆에 같이 앉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법률적으로 도움을 줄 수 없다. 일반 시민이기에 한계가 있다. 정부는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한다.

 


◇30ㆍ40대 여성 큰 목소리만큼 권리도 누려라

- 유모차를 끌고 거리로 나온 엄마들에게 ‘앵그리맘’이라는 별칭은?

엄마들이 처음 거리로 나갔던 때는 ‘광우병’ 집회였다. 이후 엄마들은 성폭력, 원자력, 아동폭력 등의 사건과 관련해 계속 나갔다. 어느샌가 앵그리맘이라는 표현을 쓰더라. 앵그리맘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아직 우리나라는 엄마를 대표하는 집단이 없다. 일본에는 엄마당이 있다. 정당은 아니나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엄마들은 보통 집에 있어 사회활동이 적다. 하지만 엄마들의 활동과 맞닿아 있는 사회활동이 굉장히 많다. 보육문제, 가정경제 문제 등 엄마가 연관돼 있다. 우리나라에서 30ㆍ40대 엄마들이 돈을 제일 많이 쓴다. 아이 교육비, 생활비, 의류비, 집값 등 엄마와 연관돼 있다. 냉장고 세탁기 광고만 봐도 30ㆍ40대 여성이 안 낀 광고가 없다. 주 소비층이 30ㆍ40대 여성이다 보니 이들이 타깃이다. 그런데 정작 엄마는 정책에 참여하지 못 하거나 안 한다.

▲ 사진 설명 = 횡단보도 신호등에 초록불이 들어왔지만(빨간 네모 안) 차들이 횡단보도 위에 있다.

 


◇아이에게 기아감 느끼게 하지 마라

- 아이를 기르는 엄마들에 조언한다면?

대부분 교통안전교육에서 ‘녹색불이 켜지면 건너가요’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녹색불이 켜져도 승용차가 지나갈 수 있어요’라고 알려줘야 한다. 세상에 ‘A=B’가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항상 예외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어른들은 다 안다. 그러나 아이에게는 융통성이 없다. 그래서 아이에게 ‘규칙이 있어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있어’, ‘너무 급하면 지키지 못하고 지나갈 수 있어’ 등 세상의 예외규정들을 알려줘야 한다.

예를 들어 시중에서 과자가 아닌 천연재료로만 만든 과자를 아이에게 먹이는 엄마가 있다. 엄마는 시중에서 파는 과자를 가리켜 ‘나쁜 것이니 먹지 마’라고 아이에게 가르친다. 이 아이가 친구들과 있는데, 한 아이가 이 아이에게 시중에서 파는 과자를 나눠줬을 때 아이가 ‘나는 이런 과자 안 먹어’라고 말한다면 이 아이는 친구들 사이에서 어떻게 되겠나?

아이가 뭔가 ‘목마름’을 느끼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떤 엄마는 아이에게 사탕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는 사탕을 보면 자제하지 못한다. 모르는 어른이 아이에게 ‘이리 오면 사탕 줄게’라고 말했을 때 아이는 유혹을 이겨야 한다. 집에 가서 사탕을 먹을 수 있는 아이라면 모르는 어른에게 다가가지 않거나 위험을 감지하고 그 자리를 피할 것이다. 그러나 사탕이 충족돼 있지 않으면 아이는 흔들린다. 개인적으로 아이에게 ‘기아감’을 주는 것에 반대한다.

△백현정 소장은?

1979년생.
SK C&C, 다음커뮤니케이션에서 근무했음. 유럽발 금융위기 때 임신으로 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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