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교사 오미영 칼럼] 마음을 읽어주는 보건교사
[보건교사 오미영 칼럼] 마음을 읽어주는 보건교사
  • 김은교 기자
  • 승인 2020.11.24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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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영 인천보건교사회 회장
오미영 인천보건교사회 회장

학기 초, 수업을 들어가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있습니다. 출석을 부르면서 그 학생의 특징과 이름을 빠르게 연결하고 기억하는 습관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올해는 그게 참 어렵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학생들이 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다 보니 눈만 바라보게 되고, 또 이러한 이유로 얼굴과 이름을 함께 외워 불러 주기가 힘든 까닭입니다.

나는 모든 학생들이 보건실을 편안하고 안정된 곳이라 느낄 수 있도록 보건실을 찾는 학생들에게 이름을 불러주려 노력합니다.

예를 들어 “현민이 몇 반이지?”하면서 말입니다. 혹시라도 학생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을 때는 “친구! 이름이 뭐지?”라고 말하며 엄마같이, 때로는 친구같이 대해줍니다.

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터 보건실은 학생들이 답답할 때 마음에 숨을 쉬게 해줄 수 있는 안락한 쉼터가 되어 있었습니다. 아주 조그마한 것이라도 일상 속 관심과 사랑의 한마디를 듣고 싶어하는 학생들이 하나 둘씩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학생들은 마음 속의 상처를 나에게 다 꺼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나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인정해주고 믿어주며, 함께 고민해주는 교사가 되었습니다.

학생들의 말과 행동이 간혹 모두 진실이 아닐 때도 있었지만, 거짓된 내용까지 그저 이해하고 기다려주려 노력했습니다. 그렇게라도 나를 필요로 하고 찾는 학생들이 있다면 어디든 함께 뛰어나가 바라봐 주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세월이 흐르자, 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된 친구들이 연락을 해오고는 합니다. 지금도 그 연락을 계속 유지하고 있습니다. 보고싶다고 문자를 하거나 학교를 찾아오는 학생들도 많습니다. 스승의 날이 되면 나름 그 어느 교사들보다 더 많은 감동과 보람을 느끼곤 합니다.

가끔 다른 선생님들이 수많은 업무와 아이들의 방문에 함께 시달리는 저를 보고 걱정의 마음을 보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학생들과 마음의 눈높이를 함께하고 싶은 것. 훗날 그 아이들이 멋진 삶을 꾸려낼 수 있도록 작은 부분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교육관입니다. 그리고 그것에 감사하는 것이 보건교사로서의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제는 학교에서 늦은 시간까지 가족의 확진으로 코로나19 검사를 받은 학생 2명의 검사결과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부모님은 확진 판정을 받았지만, 아이들은 음성 판정을 받아 자가격리 조치만 받았다는 소식을 듣게 됐습니다.

나는 아이들과 통화하며 감사의 마음과 격려를 함께 보냈습니다. 이처럼 다행스러운 결과 모두 학교 차원에서 실시한 방역수칙을 철저하게 실천해 준 아이들 덕분이라는 생각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혼자 밥을 챙겨먹으면서 자가 격리 생활을 해야 하는 학생들을 생각하니 눈물까지 났습니다.

이런 아이들이 계속 눈에 밟혀 담임선생님과 함께 수시로 확인하고 통화했습니다. 또 위로와 격려를 반복하며 특이사항이 발생할 경우에는 반드시 담임선생님께 알려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래도 잘 견디는 학생들을 보니 기특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한층 성숙해질 학생들을 생각하니 아이들 미래에 대한 기대도 밝은 듯 보였습니다.

 

보건교사로 어느새 30년! 참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여전히 하루하루가 새롭고 또 부족하지만 나를 필요로 하는 학생들이 있음에, 내가 서 있는 이 곳이 감사할 뿐입니다.

지금도 ‘학생들의 마음을 먼저 읽어주는 보건교사가 되겠다’는 초심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내가 조금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나를 통해 웃음을 찾는 학생들이 있다면, 또 희망을 갖게 되는 학생들이 있다면 그걸로 저는 행복하답니다.

학생들과 ‘건안나라’라는 보건동아리를 함께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응급처치 대회·금연 캠페인 등의 봉사활동을 같이 했는데, 그 때 제자들이 지금은 간호사·응급구조사가 되겠다며 대학교 관련학과에 입학했습니다.

그리고 나를 ‘롤모델’이라 말하던 그 아이들 덕분에, 나는 지금도 뿌듯한 그리고 기분좋은 미소를 짓곤 합니다.

이런 추억도 있습니다. 교내 축제 공연을 위해 남학생들로 구성한 중창단을 만든 적이 있습니다. 한 달이 넘도록 아이들에게 라면·떡볶이 등을 직접 끓여주며 함께 노래연습을 했던 시간입니다.

당시 다양한 활동을 통해 아이들에게 자신감과 가능성을 열어주었는데 그 친구들, 그 때의 추억에 대해 아직까지도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물론 그 때 함께 추억을 공유했던 아이들은 서로 둘도 없는 친구들이 되어 있고요.

듣기로는 중3과 고3 졸업 기념으로 여행도 함께 다녀왔다고 합니다. 그렇게 3년마다 함께 하기로 했다는데 그 우정의 약속 또한 계속 되길 바랍니다.

아마도 마음이 있고 또 잠재력이 있지만 표현하지 못했던 그 학생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갔던 시간이, 그리고 긍정적인 자극과 말 한마디 한마디의 응원이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또 꿈과 자신감을 심어주고 성장하게 만들었던 모양입니다.

지난 9월, 해병대에 입대하기 전 잠깐 얼굴을 보았던 제자가 “필승! 쌤, 연평도로 자대배치 받고 연락드립니다”라며 카톡을 보내왔습니다.

잊지 않고 연락을 준 멋진 해병대 제자가 생겨 무척 기분이 좋습니다.

이제는 제자들이 저의 힘이 되고 있습니다. 저 또한 보건교사로서의 사명을 더욱 잘 감당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가는 듯 싶습니다.

내일 아침에도 코로나19 방역 등교 지도를 하러 일찍 나가봐야 합니다. 하지만 한 명 한 명 건강한 학생들의 모습을, 그리고 활기찬 아이들의 등교를 확인하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어 즐겁습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또 누구에게 칭찬받지 않아도 됩니다.

서로의 마음을 읽어주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과 기다림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오미영 인천보건교사회 회장>

現) 남동중학교 보건교사

現) 인천보건교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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