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수의 유머학개론] 아빠육아 자리잡게 하기
[이정수의 유머학개론] 아빠육아 자리잡게 하기
  • 송지나 기자
  • 승인 2020.11.02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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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수 개그맨 겸 주부작가
이정수 개그맨 겸 주부작가

저는 우리 집에서 주양육자입니다. 딸이 7살인데도 화장실에 갈 때 자연스럽게 저를 찾습니다. 사실 7살쯤 되니까 수영장부터 화장실까지 사회적 벽으로 인해 아빠인 제가 양육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죠.

그런데 사실 그보다 더 어려웠던 것은 전반적인 아빠의 육아환경입니다. 우리 사회는 아빠의 육아참여를 독려하고 있지만 아빠육아 정착에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는 잘 모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육아하는 아빠를 열심히 응원해줘야 그들의 숫자가 늘어날 텐데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육아하는 아빠의 수를 늘릴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할까 합니다.

사실 육아는 사람이 많을수록 유리하죠. 한 아이를 보는데 보육자가 3명 이상이면 어떤 사람도 우울증이나 만성피로 같은 거 안 생깁니다. 그런데 여럿이 하기에도 어려운 일을 혼자서 하려니 안 힘들겠습니까? 그러니까 공동육아를 하려고 어린이집 친구모임이나 유치원 모임, 동네 모임 등을 하는 거죠.

그런데 이런 모임 대부분이 엄마들로 이루어져 있다 보니 아빠를 잘 끼워주지 않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좀 나은 상황이었죠. 일단 얼굴이 어느 정도 알려진 개그맨이었고, 아줌마 같은 말재주가 있어서 무리에 끼어서 어울리는 것이 덜 힘들었습니다. 사실, 그 무리에 끼기 위해서 아줌마화가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엄마들 사이에 들어가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그나마 들어가기 쉬운 곳이 바로 놀이터였습니다. 일단 공동육아에 첫째 조건이 ‘아이들끼리 친해질 수 있나? 케미가 맞아서 잘 놀고 있나’ 입니다. 부모의 케미는 그 다음이죠. 일단 놀이터에 아이를 풀어놓으면 알아서 어울리는 친구가 생깁니다. 그러면 그 부모에게 말을 걸어보는 거죠.

그런데 이때 모르는 남자라는 경계심 때문에 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아빠는 놀이터에서 고립이 되죠. 사실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지만 아이를 보육하는 사람은 어느 정도 인간적인 보장이 된다고 봐야 합니다. 그 어려운 일을 하는 사람이니까요. 그러니 이렇게 친해지려고 하는 아빠들을 신입생 챙겨주듯이 챙겨주시면 좋겠습니다. 육아하는 아빠 한 명이 또 다른 한 명에게 본보기가 되는 거니까요.

그런 면에서 문화센터도 마찬가지입니다. 문화센터에 수유실은 금남의 구역 같은 곳이죠. 그럼 아빠와 함께 나온 아이는 밖에서 식사를 해야 합니다.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특정 상황이 아니라면 아빠들이 수유실을 이용하는 것에 대해 반감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거죠. 그리고 도와줄 수 있는 것은 도와주면 더 좋고요. 예전에 저도 남자 화장실에 사람이 많아서 여자 화장실에 딸을 들여보내고 싶어 했더니 안쪽의 할머니 한 분이 도와주셔서 너무 감사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렇게 한 번씩 고비를 넘다보면 자연스럽게 실력이 늘고 편해집니다. 편하고 익숙해지면 자연스럽게 육아하는 시간이 늘 수밖에 없고요. 아빠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은 쪽팔림은 잠깐지만 편한 육아는 오래간다는 겁니다. 모르는 길 안 물어보고 꾸역꾸역 찾아가는 방식으로 육아를 하면 힘들 수밖에 없어요.

두 번째로 놀리지 말아주세요. 사실 우리 사회는 이제 놀릴 수 있는 계층이 일반 성인 남성정도 밖에 안 남았습니다. 못되게 놀린다는 것이 아니라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쉽게 장난칠 수 있는 영역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지금 잘 생각해보면 우리가 예전에 봤던 코미디프로그램은 지금 나왔다가는 비난의 폭격을 맞을 가능성이 아주 많습니다. 몸매 비하, 외모 비하, 성적인 농담 등이요. 그래서 요즘 코미디 프로그램엔 영구, 맹구가 없는 겁니다. 제가 어릴 때는 제일 재미있던 코미디인데 말이죠.

아무튼 남자를 놀릴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웃으며 넘어가기 때문입니다. 유머라는 것은 나든 남이든 누군가의 희생이 있어야 하는데, 남자들이 어느 정도 희생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는 거죠.

한동안 유행했던 아빠에게 아이를 맡기면 안 되는 이유라는 영상들을 보면서 많이들 웃으셨겠지만, 이런 것을 당연하듯이 그냥 방치하면 아빠들은 점점 육아를 하지 않게 됩니다. 어쩌면 육아하기 싫었던 똑똑한 아빠들이 그런 영상을 퍼트렸나 싶기도 해요.

유머의 가장 무서운 점은 아무 생각 없이 웃는 사이에 그것이 마음속에 들어가서 진실이 된다는 겁니다. 그런 유머 속엔 ‘아빠들은 육아를 못하고, 아이를 위험하게 해!’라는 정서가 깔려 있는 거예요.

사실 그 영상들 속 아빠들이 좀 아슬아슬하게 육아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 몇 십초로 그 아빠의 능력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거죠. 악마의 편집이라는 것이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앞뒤 떼고, 특정 부분만 확대해서 오해하기 좋게 만들죠. 그리고 사실 따지고 보면 그 아빠들이 큰 문제를 안 만들었으니 유머도 가능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능한 아빠 육아만큼은 놀림의 소재가 되지 않길 바랍니다. 그래서 전 강의에 가서도 절대 그 자리에 있는 아빠들을 놀려서 웃기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농담에 웃어주지 마세요. 그런 것에 웃어 주다보면 강사들이 계속 하게 되고, 그럼 아빠들이 꼭 와주길 바라는 그런 자리에 오지 않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이미지를 바꿔주셔야 합니다. 사실 저도 비슷한 시선을 가지고는 있었습니다. 평일 낮 시간에 아빠가 아이와 놀고 있으면 ‘뭐하는 사람인데 이 시간에 나와 있지?’하는 생각이요.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말자는 겁니다. 뭐하는 사람이긴요? 애 잘 보고 있는 사람이죠. 중요하고 어려운 일을 하고 있는 동지로 봐주세요.

그리고 아빠들도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유모차 끌고, 아이를 안고 갈 때 오히려 더 당당하고 웃는 표정을 보여주세요. ‘나는 육아하는 사람이다! 다른 엄마들은 우리 아내를 부러워하고 있다!’

만약 당당함이 잘 생기지 않고, 웃어지지 않는다면 SNS를 적극 활용해 보세요. 육아하는 일상들을 적어서 올리고 소통해보세요. 그럼 주변에 지지자들이 많이 응원해주고 칭찬해 줄 겁니다. 그럼 괜히 신나고 힘이 납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관종의 요소가 조금씩은 있으니까요.(웃음)

아! 엄마들에게 당부 드리고 싶은 것이 있는데요.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면 육아아빠가 올린 육아글에서 문제점을 찾아내주지 말아주세요. 알려주려고 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가르쳐 달라고 할 때 가르쳐주면 되는 겁니다. 육아하는 아빠가 한번 SNS에 글을 올렸는데, 온통 교훈적인 글이 달린다면 다음부터는 글을 올리고 싶지 않아질 거예요.

일부러 SNS에 홍보를 하려고 릴레이 캠페인도 하는 세상입니다. 한 명이라도, 한 번이라도 더 아빠육아에 대해 노출되는 것은 거시적으로 봤을 때 상당히 중요한 일인 거예요. 가능한 응원 글 많이 남겨주시고요. 지나가다가도 아빠육아를 본다면 ‘좋아요’ 한번 눌러주시고요. 제 글도 눌러주시고요.(웃음)

그리고 각 가정에도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한 번 했을 때 좋은 기억으로 남게 해주세요. 어렵사리 한 번 시도했는데 그것이 좋은 기억이 아니라면 다음번은 없는 겁니다.

초보 운전할 때를 생각해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안 그래도 바짝 긴장하고 운전을 하면서 그래도 사고 안내고 잘 가고 있는데 옆에서 이렇게 해라, 끼어들어라, 왜 그렇게 운전하냐 이러면 운전 안 하고 싶잖아요. 운전은 하면 늘 수밖에 없으니 계속 하는 것이 중요한데 말입니다.

세상에 힘으로 억지로 바뀌는 것은 없습니다. 아빠들이 육아를 하기 위해선 선배들인 엄마들의 온정의 손길이 더 필요합니다. 혼낸다고 바뀌지도 않을뿐더러 기분 좋게 할 수가 없습니다. 계속 잘한다, 잘한다 해주세요. 그게 힘 있는 사람들의 자세 아니겠습니까? 여유를 가지고 지켜봐 주세요. 사실 육아가 바로 그거잖아요. 여유를 가지고 지켜봐 주는 것. 아빠 육아도 지금 잘 자라나고 있으니 이 씨앗이 자라서 나무가 되고 숲이 될 수 있게 우리 모두가 협력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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