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수의 유머학개론] 결혼이 망하지 않는 방법
[이정수의 유머학개론] 결혼이 망하지 않는 방법
  • 송지나 기자
  • 승인 2020.09.30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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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수 개그맨 겸 주부작가
이정수 개그맨 겸 주부작가

예전엔 연애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연애사업 잘되고 있어?”

요즘은 잘 안 쓰는 말인 것 같은데, 당시엔 연애를 사업에 비유하다니 기가 막힌 연결이다 싶었습니다.

연애를 사업에 비유하자면 자영업정도의 사업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설령 사업이 망해도 피해정도가 상대적으로 덜하죠. 그래서 다시 사업을 도전하는 어려움도 적습니다. 게다가 시드머니가 없어도 가능한 사업이기도 하고요.

반대로 결혼사업은 대기업입니다. 이 사업이 잘 되기 위해선 아주 복잡한 관계들이 존재하죠. 그리고 사업이 망하면 그 충격에 복구가 어렵습니다. 때문에 다시 사업을 한다는 것이 상당히 어려운 일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제 결혼생활을 사업이라고 생각하고 운영하고 있어요. 절대 망하면 안 되는 사업이죠. 사업이 망하지 않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계속 흑자를 내면 됩니다. 물론 가족의 실제 자산이 늘어나는 흑자도 매우 신나지만, 지금 제가 말하려는 것은 ‘감정의 흑자’입니다. 불행한 시간보다 행복한 시간이 많으면 흑자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죠. 흑자를 내는 방법이 여러 가지 있지만 오늘은 말에 관한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우리 7살 딸은 논리도 있고 게으름도 있습니다. 스스로 방을 잘 치우지 않고, 나중에 치우겠다고 버티죠. 진짜 난장판입니다. 그걸 보다 못한 우리가 그걸 치워주겠다고 하면 안 된답니다. 자기가 해야 자신이 아는 자리에 잘 넣을 수 있다는 거죠. 일리는 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하라고 합니다. 그럼 나중에 한다고 하죠. 아니! 지금 해야 한다고, 지금 하라고 해도 계속 딴 소리를 합니다. 이렇게 무한루프가 시작됩니다.(웃음) 글을 쓰면서도 저도 뱅글뱅글 빠져드네요.

보통 우리 집은 이렇게 뱅글뱅글하다가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그 날은 우리 아내가 터졌습니다. 딸 리예를 잡고 조곤조곤 길고 긴 설명을 합니다. 왜 방을 지금 치워야 하는지에 대한 논리적인 설명인 거죠. 사실은 설명을 위장한 혼냄이었습니다. 결국 딸은 울면서 뭐라 중얼거리며 억지로 치웁니다.

그러면 그게 또 보기가 그래요. 그래서 셋 다 기분이 안 좋습니다. 아내는 아내 나름으로 자신이 좀 과했나 싶고, 저는 또 저대로 스트레스가 됩니다. 완전 적자경영입니다. 이걸 흑자로 돌리려면 아내가 터진 이유를 봐야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 아내가 터진 진짜 이유는 방을 치우냐 마냐가 아닙니다. 어차피 꽤 지난 시간동안 난장판이었고, 우리에겐 크게 문제되지 않았으니까요. 진짜 이유는 아내의 지금이라는 말에 리예가 바로 ‘네!’하고 리액션을 보여주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만약 우리 딸이 ‘네!’하고 바로 치우는 시늉을 하면 우리는 잘한다, 잘한다하며 마음을 놓을 겁니다. 그러다 딸이 화장실에 간다며 볼 일을 보고, 화장실에서 나와서 다른 일을 하면서 방 정리를 까먹고 하지 않았다면 우리도 깜빡하고 있다가 결국 방은 그대로 난장판인 채지만 우리는 사이좋게 지냈을 겁니다. (그러고 보니 그간 쭉 이래왔네요. 아무래도 리예는 천재인 것 같습니다. 하하하!)

어쨌든 방정리는 결국은 합니다. 우리든 리예든요. 아무튼 그 결과로 가는 과정에 흑자가 나길 바란다는 거죠. 그러기 위해 그 순간 필요한 말이 있는 겁니다. 그 필요한 말만 잘해도 흑자가 납니다.

우리 아내와 저도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임신 7개월인 우리 아내가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제게 뭔가 화가 났는지 째려보는 겁니다. 꿈을 꿨답니다. 제가 유명 남자 연예인들과 술을 마시며 놀고 있었답니다. 저는 아내가 임신한 후에 같이 술을 끊었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심지어 그 자리에 뜬금없이 아내의 지인인 동생들이 와서 같이 신나게 놀고 있었다는 겁니다. 완전 개꿈이죠. 억울…. 저는 그럴 사람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아내가 화가 났습니다. 어이없게요. 그런데 이게 무슨 변명이나 해명을 하는 것도 이상하잖아요. 그렇지만 뭐라고 설명이라도 하지 않으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아내가 원하는 답이 아닐 것 같았고, 해봐야 소용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말했습니다.

“미안해, 잘못했어. 꿈에서도 내가 잘했어야 했는데!”

그리고 아내를 토닥토닥 안아줬습니다. 그랬더니 금방 풀렸지요. 마치 답정너였습니다. 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그 답만 하면 된다는 거죠. 저는 무조건 사과를 해야 되는 겁니다(웃음).

보통은 이런 답정너에 자존심이 상해서 답을 알지만 그 답을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밀당을 하는 상황으로 가는 거죠. 게다가 답정너의 상대가 눈치가 심하게 없다면 오히려 답정너만 답답해서 죽어납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방식이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라고 생각하는 거죠. 완전 적자입니다. 어차피 하게 될 말은 긴 고민하지 말고 바로 하는 것이 흑자가 되는 길입니다.

마지막으로 흑자를 만드는 최고의 말을 소개하겠습니다. ‘사랑해’라는 말입니다. 다소 진부한 소재 같아 안 다루려고 했지만 일단, 눈 떼지 말고 더 읽어 주세요. 좀 다른 이야기에요.

연애 때는 사랑한다는 말이 입에서 자주 나옵니다. 금사빠들은 만난 첫날 사랑한다는 말이 나오기도 하고요.

그러다가 결혼을 하거나 연애가 길어지면 점점 사랑한다는 말이 나오지가 않습니다. 언젠가는 자신이 사랑을 하는 건지도 잘 모르겠는 순간이 옵니다. 그러면 어색해서 안 나온다기보다는 진심인지 몰라서 사랑해가 나오지 않는 경우가 더 많죠. 사랑하지 않는데 어떻게 사랑한다고 말하냐는 겁니다.

바로 이 부분인데요. 이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거죠. 진짜 사랑하고 있는지 보다 사랑하기로 한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겁니다. 우리는 결혼할 때 형식적이든 진심이든 평생 이 사람만을 사랑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그런데 약속했으니 최선은 아니더라도 노력은 해야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스파크가 ‘파팍’하고 튀기고 심장이 콩닥콩닥한 사랑은 도파민적 사랑인데, 도파민은 2년 정도 후엔 분비가 안 되거든요. 그래서 그즈음부터 위와 같은 사랑해 실종이 벌어지는 겁니다. 그런데 2년 이후부터는 옥시토신, 엔돌핀으로 돌려막으면 됩니다. 효과는 비슷해요.

아무튼 사랑을 이어가기 위해서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겁니다. 사랑하니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해야 하니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고, 덕분에 사랑하고 있는 상황이 돼서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죠. 오~ 이거 뭔가 블랙홀 같은 느낌이네요.

우리 부부는 하루에 평균적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20번 정도 하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연애 때보다 더 하는 것 같아요. 물론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습니다. (진짜임. 하나님 걸고 맹세함) 그런데 이렇게 7년 넘게 말하다보니 이것이 마치 깨고 싶지 않은 꿈속에서 깨어나지 않게 하는 주문 같기도 했습니다. 사랑한다고 말하니까 사랑한다는 말을 들을 수 있고, 사랑한다는 말을 들으니까 사랑 받고 있는 기분이 들어서 사랑이 자라나고요. 그럼 그 사랑으로 다시 고백을 했습니다.

사랑을 고백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고민할 것도 없이 그냥 던지세요. 그럼 진실이 되어 갈 겁니다. 말은 타이밍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집니다. 누가 먼저라고 생각하지 말고, 이 글 읽은 사람부터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개그맨 이정수 프로필>
- 현) 네이버 칼럼니스트
- 현) EBS 라디오 행복한 교육세상(라행세) 출연
- 이리예 주양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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