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하라법 재추진…“자식버린 엄마가 딸 목숨 값 가져갔다”
구하라법 재추진…“자식버린 엄마가 딸 목숨 값 가져갔다”
  • 김은교 기자
  • 승인 2020.08.27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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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호인 씨…상속자격박탈 조건에 ‘부양의무 미이행 추가’ 청원
전북 소방관 순직·천안함 및 세월호 사건 때 등 유사사례 꾸준

[베이비타임즈=김은교 기자] 어렸던 두 남매와의 연을 져버리고 소식없이 살던 엄마가 변호사와 함께 20년만에 나타났다. 장소는 딸의 장례식장. 남매의 친모는 동생을 잃고 상심한 아들에게 딸이 남기고 떠난 부동산매각대금의 절반을 요구했다. 지난해 11월24일, 29세라는 젊고 예쁜 나이로 세상을 떠난 가수 故구하라 씨의 가족 이야기다.

 

“저희들의 친모는 하라가 9살, 제가 11살이 될 무렵 가출해 거의 20여년 동안 연락이 되지 않았습니다.…

저희들에게는 엄마라는 존재가 없었다기보다는 엄마라는 단어가 없었습니다. 부를 수 없는 단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2020.05.22. 故구하라 씨 친오빠 구호인씨의 국회 기자회견 中-

 

 

지난 11일 국회 소통관에서 진행된 구하라법 통과 촉구를 위한 긴급 기자회견 현장. (사진제공=서영교 의원실)
지난 11일 국회 소통관에서 진행된 구하라법 통과 촉구를 위한 긴급 기자회견 현장. (사진제공=서영교 의원실)

◇ 故구하라 친오빠 “자식버린 친모, 상속 자격 없어”

올해 3월18일, 구하라 씨의 친오빠 구호인 씨가 국회 홈페이지에 이른바 ‘구하라법’ 제정을 촉구하는 입법청원 글을 게재했다.

자녀 양육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부모가 자녀 사망으로 재산적 이득을 취하는 것의 부당함, 즉 자녀를 버린 부모는 상속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호소하며 이른바 ‘구하라법(민법 상속법 일부 개정안)’ 제정을 청원한 것이다.

해당 청원은 구 씨가 친모를 상대로 제기한 ‘상속재산분할심판청구소송’ 준비와 동시에 진행됐다. 그리고 내용 게재 17일 만에 국민 10만 명의 동의를 얻어 소관 상임위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로 넘겨졌다.

하지만 당시 법사위는 구하라법 추진을 위해서는 상속제도 전반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결론지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20대 국회 임기가 만료되면서, 해당 법안은 본회의 상정도 되지 못한 채 자동 입법폐기됐다.

대중이 의문을 가진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였다.

과연 실질적 친권과 양육권을 스스로 버린 사람에게 상속의 권리를 주는 것이 정말 합당한 일일까? 또 친권자의 도움없이 자립을 이룬 지극히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시간과 인생에, 과연 부모의 의무도 이행하지 않은 사람이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 것일까?

실제로 구하라법 역시 이 점에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부모 또는 자녀에 대해 부양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람일 경우, 그 상속권을 박탈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법안이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상속결격사유’ 조건은 가족 살해 또는 유언장 위조·은닉 등에만 해당한다. 부양 의무 소홀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울러 이처럼 시대착오적인 법의 공백, 그리고 배우자 없이 사망한 자녀의 상속권이 모두 친권자에게 전해지도록 한 현행법은 사회 내 각종 악용사례들을 지속 양산해내는 근거로 작용해 왔다.

◇ ‘전북판 구하라 사건’…유족급여 1억 챙긴 비정한 친모

‘전북판 구하라 사건’으로 불리운 유사 사례도 있었다. 소방관 딸이 순직해 유족급여가 나오자 32년만에 나타난 친모가 1억원에 가까운 돈을 수령해 간 사건이었다.

지난해 1월, A씨의 둘째 딸(당시 32세) B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당시 B씨의 사망 사유는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 이후 순직을 인정받아 유족급여 지급결정을 받게 됐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32년 전 집을 나간 친모 C씨가 ‘법적 상속인’의 명분으로 약 8000만원을 수령한 것. 이에 더해 친모는 향후 사망 시까지 유족연금 91만원도 매달 받게 됐다.

이에 분노한 A씨와 큰 딸은 올해 1월, 결국 친모를 상대로 양육비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A씨에 따르면 부부가 이혼한 시점은 딸들이 5살·2살이던 지난 1988년 3월. 그러나 아이들의 친모는 이혼 후 두 딸을 찾지도, 양육비를 부담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둘째 딸이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했을 때는 장례식장에 오지도 않았다고 했다.

지난 32년간 딸들에게 엄마는 없었다. 노점에서 배추장사·수박장사를 하며 아이들을 키우는 아빠만 있었다.

그리고 올해 6월12일, 법원은 결국 친부 A씨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전주지법 남원지원 가사1단독 홍승모 판사는 “부모의 자녀양육 의무는 자녀의 출생과 동시에 발생하고, 양육비 또한 공동 책임”이라며 전 부인인 C씨가 전 남편 A씨에게 양육비 7700만원을 지급할 것을 판결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경주 마우나리조트 체육관 붕괴사고·천안함 사건·세월호 사건 때도 마찬가지였다. 안타까운 생명을 담보로 지급한 보상금이 수십년 전 아이들을 버린 직계존속들에게 전해진 경우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최근, 그렇게 흘려보낸 시간을 상쇄하기 위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앞선 내용의 비극적인 상황을 막기 위한 노력으로 지난해 입법폐기 된 구하라법의 통과를 외치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구하라 씨 친모에 대한 상속재산분할심판청구 재판도 계속 진행중이며, 오는 9월9일 새로운 재판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현재 이들 남매의 친모는 개인사를 이유로 구하라법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는 상태. 향후 재판 결과 및 입법 방향의 귀추가 더욱 주목되는 시점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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