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미혼 32세인 나에게 찾아온 아이
[기고] 미혼 32세인 나에게 찾아온 아이
  • 온라인팀
  • 승인 2014.07.01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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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32살. 그 해 가을 미혼의 나는 결혼을 하기로 약속한 남자와의 사이에서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 테스터기에 선명한 두 줄을 확인 했을 때 그때 내가 가장 강력하게 느꼈던 감정은 지금 다시 떠올려 봐도 ‘낳고 싶다’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어떻게 상대에게 알려야할지, 상대가 반대하면 어떻게 할지, 반대를 하더라도 나를 떠나더라도 내가 오롯이 이후의 일들을 다 감당해 낼 수 있을지’라는 생각을 했다.

임신사실을 들은 그는 처음에는 축하와 더불어 아이를 낳자고 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초조해했고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의 아이의 출산과 양육은 그에게는 너무나도 큰 두려움이었는지 그는 그렇게 나와 아이를 떠났다. 

그때의 그 복잡한 감정을 어떻게 글로다 표현 할 수 있을까? 피하고 싶은 감정이지만 마주해야할 그 감정. 내가 버림받았다는 그 느낌. 그러나 그 감정에 젖어 있는 것조차 사치인 현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내 아이의 존재를 우선적으로 나의 가족과 직장에 알려야 하기에 마냥 허우적대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때의 나는 나의 선택을 들어주고 믿어주고 지지해주고 응원할 이가 필요했다.

“엄마, 나 임신했어”라는 말을 엄마에게 했을 때 엄마의 그 놀란 눈빛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 순간에 엄마는 ‘정말 설마 내 딸이?’라는 놀라움이었다. 놀라움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내가 “나 혼자 낳을거야”라고 했을 때 엄마의 표정은 ‘내가 자식을 잘못 키웠구나’라는 것과 ‘어떻게 네가 나에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느냐’란 체념과 원망이었다. 한참을 말없이 눈물만 짓던 엄마는 나에게 “어떻게 아빠가 없이 아이를 키우려고 하냐”고 “미안하지만 보내자”라고 하셨다. 나는 절대로 아이를 낙태하는 일은 없을 거라며 돌아누웠다. 그날 엄마와 나는 서로 등을 돌린 채 소리 없는 눈물을 쏟았다.

그때 나는 배속의 아이에게 미안했다. 내 소중한 아이를 축복해주지 않는 그 현실이 하나부터 열까지 다 내 잘못인 것 같아 정말 내가 엄청난 일을 저지른 죄인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엄마뿐 아니라 다른 가족들 역시 나의 출산을 반대했다. 나는 그들을 이해한다. 그들이 제일 화가 많이 났던 건 아마 내 딸이, 내 동생이, 내 누이가 남자에게 버림을 받고 그 남자의 아이를 낳겠다고 한다는 그 사실에만 화가나 내 배속의 생명과 나의 선택에 대해서는 들으려 조차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나는 어떻게든 가족들을 설득시키고 싶었다. 아니 시켜야만했다. 가족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 나는 아이의 초음파 사진과 동영상 CD를 보여줬다. 아이는 내 배속에서 기지개도 펴고 앉고 일어서며 놀고 있었다. 그때 아이는 고작 11주였다. 

나는 아직도 그 동영상을 보면 감회가 새롭고 기술의 발달에 그때만큼 감사함을 느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어머니는 그 영상을 보고 낳으라고 했다. 그리고 절대로 약해지지 말라고 말했다. 이제부터 너는 엄마라고 누가 뭐라 하든 아이와 너만 생각하고 울지 말라며 좋은 생각만하고 좋은 것만 들으려고 노력하라고 했다. 엄마가 그렇게 나의 선택을 인정하자 다른 가족들도 하나 둘 나를 받아들이고 나의 입덧이나 배가 불러옴을 자연스럽게 인정해줬다. 나와 아이는 이제 겨우 하나의 문을 넘기 시작했다.

그때 내가 아이에게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 아가야 앞으로 우리가 넘어야 하는 문은 몇 개나 될까?

몇 개가 될지 모르지만 우리 지금처럼 씩씩하게 잘 넘어가보자.

△필자 정선옥 
 현재  한국미혼모가족협회 가족회원이자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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