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행위자, 76%가 ‘부모’…훈육으로 둔갑한 일방적 폭력
아동학대 행위자, 76%가 ‘부모’…훈육으로 둔갑한 일방적 폭력
  • 김은교 기자
  • 승인 2020.08.13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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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재학대 비율 11% 중 94%도 부모에 의해 발생
기존 부모 징계권, 시대 흐름 역행한 구시대적 유물

[베이비타임즈=김은교 기자] 정부 통계 결과, 아동학대 대부분은 친권자인 부모에 의해 일어나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7월 2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11차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 발표된 내용이다.

2015~2019 기준, 전국 발생 유형별 보호조치 아동 현황. (자료 출처=교육부)
2015~2019 기준, 전국 발생 유형별 보호조치 아동 현황. (자료 출처=교육부)

◇ ‘등잔 밑 어두운’ 폭력 사각지대…부모 의한 아동학대 많아

교육부·법무부·보건복지부 등 총 7개 관계부처가 한 데 모인 이날 회의에서는 제1호 안건으로 ‘아동·청소년 학대 방지 대책’이 논의됐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아동학대 행위자의 76%는 친권자, 즉 부모인 것으로 파악된다. 그리고 그 외에는 초·중고교 직원(7.2%)·보육교직원(4.6%)·친인척(4.4%)·타인(2.2%) 순이었다.

부모에 의한 아동 재학대 비율도 높았다. 아동 재학대 비율 총 11% 중 약 94%가 부모에 의한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 특징은 전체 아동학대의 약 80%가 가정 내에서 발생했다는 것. 그리고 그 원인으로는 부모의 ‘양육 태도 및 방법 부족(22.2%)’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렇듯 부모에게 학대당한 아이들은 비신고의무자(본인·이웃·친구 등)을 통해 주로 발견된다. 하지만 신고 아동 중 다수(82%)는 다시 학대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원가정으로 돌아가야 한다. ‘원가정 우선 보호’ 원칙에 따라서다.

이는 ‘아동보호 및 안전 사각지대’가 바로 가정이었음을 명확히 보여주는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모든 아동, 청소년이 안전하고 행복한 사회를 위한 정부 정책 과제. (자료 출처=교육부)
모든 아동, 청소년이 안전하고 행복한 사회를 위한 정부 정책 과제. (자료 출처=교육부)

◇ 가정 내 아동학대 방지…‘친권 제한’ 도입 필요

이날 회의에서는 가정 내 아동학대 방지를 위한 다양한 대책 논의도 이뤄졌다.

먼저 모든 아동·청소년이 안전하고 행복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제시된 정책 과제 중 하나는 바로 ‘친권의 제한 및 보완 시스템 구축’이었다.

아울러 정부는 관련 정책의 실현을 위해 ▲친권자 징계권 조항 개정 ▲보호대상아동 친권보충제도 개선 ▲즉각분리제도 도입 방안을 약속했다.

이중 친권자 징계권 문제는 현재 ‘민법 제915조 삭제’ 입법예고로 이어진 상태다. 아동을 부모의 소유물 또는 훈육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사회분위기 전환을 위해서다. 현재 국회 통과만 남아있다.

정부는 ‘보호대상아동의 친권보충제도 개선’ 계획도 밝혔다. 보호대상아동이 친권자 소재불명 등으로 사실상 친권 공백상태인 경우, 일상에서의 권리 행사 보장을 위해 친권을 대신할 보충제도를 마련하기 위함이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향후 ‘미성년 후견제도 활성화를 위한 공공후견인 제도’ 도입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즉각분리제도’의 도입도 시사했다.

아동학대 조사과정 중 대부분의 아이들은 다시 집으로 돌려 보내진다. 재학대 위험이 있는 위급 상황이 아니라면 ‘원가정 우선 보호’ 원칙 및 ‘아동 의사 존중’이 고려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당 조치는 결국 또 다른 아동학대 양산의 위험성을 내포한다. 지난 6월 천안에서 발생한 여행가방 아동 사망 사건이 바로 그 사례다.

해당 아동의 부모는 앞선 5월 이미 아동학대 혐의로 조사를 받았으며, 아이는 원가정 우선 보호 원칙에 따라 가정 내 보호처리 된 바 있다. 당시 부모가 체벌행위를 인정 및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고 아동 또한 분리 의사를 나타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6월1일, 아이는 여행가방 감금이라는 끔찍한 재학대 방식으로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이틀 후인 3일 사망에 이른다.

즉각분리제도는 이 같은 사례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정부 대책이다. ‘아동복지법 제15조의2(일시분리조치)’ 조항을 신설해 학대전담공무원이 피해 아동을 가해 대상으로부터 즉시 분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이같은 정책 방향은 기존의 징계권 조항의 한계를 여실히 증명하는 결과이기도 하다. ‘인권 정립(正立)’이라는 현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 채 역행한 ‘낡은 법’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민법 제915조는 지난 1958년 민법 제정 이후 개정이 전무한 조항이다. 지난 62년동안 한 번도 변하지 않은 것이다.

민법 제정 당시 가족법의 근간은 철저히 ‘부계중심적 가족제도원리’에 기반했다. 그리고 관련 법조항들 역시 시대가 바뀜에 따라 수차례 개정을 거듭해 왔다. 하지만 징계권만은 예외였다.

지난 7월 1일 신현영,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아동단체 굿네이버스, 세이브더칠드런, 초록우산재단, 사단법인 두루가 함께 국회에서 개최한 징계권 삭제 촉구 공동 기자회견 현장. (사진제공=세이브더칠드런)
지난 7월 1일 신현영,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아동단체 굿네이버스, 세이브더칠드런, 초록우산재단, 사단법인 두루가 함께 국회에서 개최한 징계권 삭제 촉구 공동 기자회견 현장. (사진제공=세이브더칠드런)

◇ “잘못은 때려서 훈육”…사회인식 개선 절실

한편 ‘부모 징계권 삭제’라는 정부 결정이 있기까지는 시민사회의 끊임없는 자성 촉구의 목소리가 존재했다. 부모의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아동단체 및 관련 전문가들이 관련 조항의 삭제를 주장해 왔기 때문이다.

특히 국내 주요 아동단체 3곳(굿네이버스·세이브더칠드런·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부모의 체벌이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고 있는 사회 인식의 부당성을 지속 주장해 왔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 지난 1월에는 정의당과, 7월에는 더불어민주당 신현영·양이원영 의원실 및 사단법인 두루와 함께 ‘민법 915조 징계권 조항 삭제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또 앞선 6월에는 법무부 주최 간담회에 참석해 징계권 삭제를 논의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왔다. 모두 가정 내 아동학대 발생의 근원적 방지를 위한 노력이었다.

이와 관련해 박정순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사업본부장은 “지난해 5월, 정부가 ‘포용국가 아동정책’을 통해 징계권 용어 변경을 약속했으나, 개정 작업이 속도를 내지 못하는 기간동안 수많은 아동학대 사건이 또 발생했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아울러 “법 개정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사회인식개선이므로 아동 체벌금지 및 권리 증진을 위한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태영 세이브더칠드런 사무총장은 “민법 제915조 징계권 삭제는 아동학대 근절의 출발점”이라며 “징계권 조항 삭제를 비롯, 체벌금지 법제화를 통해 정부와 국회가 아동권리 증진의 소임을 다해주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한전복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복지사업본부장은 “아동학대 부모 상당수가 본인의 행위를 가리켜 아이의 잘못을 고치기 위한 훈육이었다고 설명한다”며 “잘못은 때려서라도 가르친다는 잘못된 고정관념이 학대로 이어지고 있는 현실을 우리모두가 직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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