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그루밍 처벌과 잠입수사 법제화’ 왜 필요한가
‘온라인 그루밍 처벌과 잠입수사 법제화’ 왜 필요한가
  • 최주연 기자
  • 승인 2020.06.23 14:4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는 아동·청소년’ 어른들 무책임이 N번방 범죄 키워

인터넷 시대 열린 지 20년 만의 정책 마련...늦었지만 ‘무겁고 확실하게’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베이비타임즈=최주연 기자]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세계가 열린 지 20년이 넘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미처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문명의 변화를 맞았고 디지털 기술 발전의 눈부신 성장 속에 필연으로 따라붙는 그림자처럼 디지털 범죄의 크기도 무럭무럭 자라났다. 범죄의 형태 또한 은밀하고 교묘하게 진화했으며 눈으로 보이는 울타리를 칠 수 없는 디지털 공간에서 특히나 어린아이들과 여성들은 모니터 너머의 검은 범죄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놀라운 것은 20년이 지나도록 마땅한 대책 하나 없이 속절없이 세월만 지났다는 점이다. 수많은 피해자의 외침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결국 N번방 같은 대형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사회는 그 심각성을 깨달았다.

지난 6월 19일 박완주‧진선미‧임종성‧정춘숙‧권인숙‧한준호 의원 주최로 ‘디지털 성착취 근절을 위한 제도 개선 토론회’가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렸다. (사진=최주연 기자)

20년이나 늦었지만 그만큼 무겁고 책임 있게 제도를 개선하고 피해자를 구하겠다는 정치인들과 활동가들이 모였다. 지난 6월 19일 박완주‧진선미‧임종성‧정춘숙‧권인숙‧한준호 의원 주최로 ‘디지털 성착취 근절을 위한 제도 개선 토론회’가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렸다.

최종상 경찰청 사이버수사과 과장, 이정연 여성가족부 아동청소년성보호과 과장, 이현숙 탁틴내일 상임대표가 법률제정을 위한 발제를 했으며 김진우 법무부 형사법제과 검사, 재영 리셋 활동가, 신고운 민면여성인권위원회 변호사, 김대원 카카오 정책팀장, 윤정숙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 김한균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전윤정 국회 입법조사처 보건복지여성팀 조사관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이번 토론회는 제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N번방 방지법’ 6개 법안이 통과된 이후,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후속 조치를 논의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해외에서 이미 적극적으로 시행 중인 ‘온라인 그루밍 처벌법’과 성착취 근절을 위한 ‘잠입수사’의 법제화가 주요 논점이다.

디지털 성착취는 IP추적이 어려운 다크웹‧SNS 플랫폼 등에서 성행하며 범죄의 특성상 은밀하게 진행된다. 피해자 대다수는 아동·청소년으로, 가해자들은 피해자의 심리적 취약성을 이용해 더욱 잔인한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반면 피해자들은 스스로 피해를 신고하기 어려운 상황에 실질적인 해결책이 요구되어왔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 위장수사의 필요성

함정수사 또는 잠입수사로 불리는 위장수사는 수사관이 신분을 가장해 수사대상자와 접촉하거나 특정 조직 등에 잠입하여 범죄정보 및 증거를 수집하는 활동을 통칭한다.

디지털 성범죄는 피해자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안겨주는 중대범죄로, 온라인을 통해 빠르게 유포된다. 한번 발생하면 피해가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특성이 있어 신속한 수사를 통한 범인 검거로 피해 확산을 차단해야 한다.

하지만 가입자와 IP 추적이 어려운 해외 메신저 프로그램 또는 다크웹을 사용하거나,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를 범죄수익 거래로 이용하는 범행 수법들이 이를 가로막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온라인 디지털 성범죄의 빠른 탐지와 수사를 위해 위장수사를 도입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주장이 늘고 있다. 해외 주요국들도 실무적으로 함정수사 기법을 활용하고 있지만 국내에는 아직 명확한 규정이 없는 실정이다.

미국의 경우 전미 아동 실종 및 착취센터(NCMEC)에서 5백만 개 이상의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확인하고 4103명 이상의 피해자들의 신원을 파악해 가해자들의 법적 처벌을 한 바 있다. 또한 2017년 실크로드라는 조직범죄에 대해 실무적으로 잠입수사 기법을 활용해 최초로 다크웹을 적발 폐쇄했다. 이밖에도 알파베이, 한사 등의 사건이 유사한 방법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윤정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입법적으로 다크웹, 텔레그램 등 디지털 성범죄에 있어 아동·청소년 대상 성착취 물의 제작, 유포, 소지 행위에 대해서 온라인 잠입수사제도 도입의 타당성을 검토해볼 수 있다”면서 “수사관에 의한 해킹, 악성코드 등의 기술적 수단을 활용해 다크웹 상 아동·청소년 음란물 유통 등 범죄행위의 수사와 감시가 가능하도록 하는 입법 방안 마련에 합리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위장수사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N번방 사건에서 보듯 온라인 성착취물이 유통되는 곳에 잠입할 경우 신분의 지속적 위장을 위해 범죄자들로부터 요구받은 영상을 유포할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기 때문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신고운 변호사는 “영상물의 피해자에게 사전 동의를 받더라도 이는 피해자의 취약성을 이용하는 것이므로 윤리적으로 허용될 수 없다”고 의견을 밝혔다.

(이미지=bill oxford on unsplash)
(이미지=bill oxford on unsplash)

■ 온라인 그루밍과 해외 사례

그루밍은 아동과 성적인 관계를 갖기 위해 아동과 친구가 되는 범죄행위를 말한다. 특히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착취 범죄에서 자주 나타나는 유형으로 가해자는 SNS 등에서 신뢰 관계를 형성한다. 대부분의 온라인 그루밍 피해자들은 13~15세 사이다.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실시한 ‘2019년 성매매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3년간 국내 청소년 10명 중 1명이 온라인에서 성적 유인 피해를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인터넷 접근성이 쉬워질수록 젊은 층을 대상으로 온라인 그루밍을 이용한 성착취 범죄는 쉬워지고 있지만, 이를 처벌하기는 어려워 법적·제도적 보완이 시급한 상황이다.

임종성 의원은 “N번방 성착취 사건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의 다수가 아동·청소년이라는 점”이라면서 “그 과정에는 성적 착취를 목적으로 아동·청소년들의 취약함을 이용해 관계를 형성하는 이른바 ‘온라인 그루밍’이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정춘숙 의원도 “디지털 공간의 익명성, 폐쇄성과 아동·청소년의 경제적·정서적 취약성을 노리고 성범죄의 유인, 권유가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며 “피해자 스스로 성착취 영상 요구에 응한 것처럼 보여 처벌이 힘들어 명확한 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중에게 온라인 그루밍이 인식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지만 이미 현장에서는 꽤 오래전부터 논의가 있었고, 해외에서는 그루밍 범죄, 특히 온라인 그루밍을 법제화하는 등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미국은 아동에게 성매매 혹은 성폭력을 행사하기 전에 인터넷상으로 그루밍 행위를 통해 믿음과 신뢰를 쌓는 것을 인터넷 루어링 행위라고 규정해 처벌하고 있다.

영국은 온라인 그루밍과 관련해 ‘성행위에 참여하거나 유도하는 행위’, ‘웹캠을 통해 아동 앞에서 노출하는 행위’, ‘아동이 성행위를 하는 사람의 이미지를 보도록 하는 행위’, ‘아동이 음란물을 보도록 하는 행위’, ‘아동에게 만남을 제안하거나 주선하는 행위’를 금지했다.

이현숙 탁틴 내일 대표는 “온라인 그루밍은 과정 자체가 가해”라면서 “아동과 만남 의도를 가진 온라인 그루밍을 범죄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만남 의도와 무관한 온라인 그루밍도 범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진선미 의원(왼쪽)과 김상희 국회 부의장(오른쪽). 진선미 의원은 이날 토론회에서 “SNS플랫폼에서 발생하는 범죄들을 조기에 발견하고 예방하기 위해 잠입수사의 합법화를 적극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진선미 의원(왼쪽)과 김상희 국회 부의장(오른쪽). 진선미 의원은 이날 토론회에서 “SNS플랫폼에서 발생하는 범죄들을 조기에 발견하고 예방하기 위해 잠입수사의 합법화를 적극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그루밍의 통로 ‘온라인’

최근 조사에 따르면 2014~2018년 사이 아동・청소년 대상 성매수 범죄 경로는 메신저/SNS/스마트폰 앱을 통한 경우가 75.1%로 가장 많았고, 일반 인터넷 커뮤니티 3.8%, 애인대행사이트・음란물제작・음란물게시 또는 배포 등이 목적인 사이트 1.8% 순이었다. 오프라인 경로는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연도별 변화를 보면, 온라인을 통한 범죄경로가 2014년 46.1%에서 2018년 91.4%로 급증했다. 온라인에서 성 착취를 목적으로 친분 관계를 쌓기 위해 가해자들이 접근하는 경로는 아동・청소년들이 주로 즐기는 게임, 채팅 서비스, SNS라는 것이 확인된 셈이다.

텔레그램 성착취 신고 프로젝트 ReSET(리셋)에 따르면 조사한 110개의 채팅앱 중 91개가 만 18세 이상 이용 가능 등급이었다. 하지만 이 중 실제 연령 인증을 하는 앱은 5개뿐이었다.

이날 토론에 참석한 리셋의 재영 활동가는 “아동・청소년이 성인 랜덤 채팅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도록 의무적으로 인증을 강화해야 한다”면서 “필수 기술 장치를 마련하지 않거나 정해진 이용자 등급과 어긋나는 형태로 앱을 운영 중인 서비스 제공자들에 대해서는 단속과 제재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11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한 권인숙 의원은 “온라인그루밍 처벌법은 전 세계 63개국이 도입했으며, 잠입수사도 미국 및 영국, 호주, 캐나다 등에서 이미 시행되고 있다. 디지털성범죄의 빠른 탐지와 수사를 위해 이 법안들이 반드시 도입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