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병’ 앓는 우리 엄마, 정말 괜찮은걸까?…딸은 모르는 엄마의 황혼육아 이야기
‘손주병’ 앓는 우리 엄마, 정말 괜찮은걸까?…딸은 모르는 엄마의 황혼육아 이야기
  • 안무늬
  • 승인 2014.06.18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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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말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맞벌이 가구 약 510만 가구 중 절반 가량이 자녀 육아를 시댁이나 처가에 맡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싼 전세자금, 생활비 부담과 경력 단절에 대한 우려 때문에 일을 하는 여성이 늘면서, 그들의 어머니와 시어머니는 제2의 육아를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할머니들의 육아에는 이유가 있었다. 현재 황혼육아 중인 할머니들은 단지 ‘딸이 봐달라고 해서’가 아니라 딸에 대한 사랑과 안타까움 때문에 그들의 육아를 돕고 있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들은 양육비를 받지만 그를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양육비가 부족해 사비를 쓰기도 하는 할머니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돈을 더 달라고 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녀였지, 돈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 괜찮다는 우리 엄마, 정말 괜찮을까?

▲ 마포구에 사는 유정녀 할머니가 손자 엘림군(32개월)을 안고 있다

 


황혼육아 중인 할머니들은 60대 이상의 노인이었다. 30대 엄마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체력적으로 힘들 법도 하지만 그들은 힘들다고 하지 않았다.

체력이 떨어진 조부모가 육아에 시달리다 보면 손목이나 허리, 팔다리, 심혈관계, 우울증 등 심신 건강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이를 이른바 ‘손주병’이라고 부르고 있다.

30대 엄마들이 하기에도 힘든 일을 60대 노인이 하는 것인데, 어찌 그들이 안 힘들 수 있을까. 그들이 “힘들지 않다”라고 하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자녀가 미안해 할 것 같아서’였다.

마포구에 사는 A 할머니는 두 손자를 돌봐주면서도 아들 내외에게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아들 내외가 부담을 느끼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아들과 며느리는 밖에서 일을 하고, 나는 집에서 노는데 힘들 것이 뭐가 있느냐”고 말하는 그녀를 통해 늘 자녀부터 생각하는 엄마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손목은 하루에도 몇 번씩 아이에게 이유식을 먹이고, 설거지를 하고, 방 청소를 하느라 인대가 늘어났을 수도 있고, 장시간 아이를 업거나 안기 때문에 허리에도 이상이 있을 수 있다.

“괜찮다”고 말하는 어머니와 시어머니의 말을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괜찮다는 그들의 말에 다시 “그래?”라고 말하기보다 “그래도 병원은 가보세요”라고 살가운 말을 건네는 자세가 필요하다.

◇ 많이 배운 딸, 집에서 애 보게 하기 아까워

마포구에 사는 60대 유정녀 할머니는 두 딸에 대한 각별한 사랑을 보여줬다. 그녀는 큰 딸의 세 아이, 둘째 딸의 세 아이를 모두 직접 길러냈다. 많이 배운 딸들이 그 능력을 전부 발휘하지 못할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유 할머니는 “대학까지 나와서 집에서 아이들만 키우게 하면, 공부한 시간도 아깝고 딸의 인생도 아깝다”고 말하면서도 “엄마로서 아이를 직접 키워보기도 해야 하는데, 일만 하고 아이를 못 키우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워킹맘들의 어머니 역시 딸의 ‘경력 단절’을 염려하고 있는 것이었다.

서대문구에 사는 B 할머니 역시 워킹맘인 딸이 자녀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못할까봐 두려워 두 손녀를 직접 키웠다고 말했다. 그녀는 “딸이 큰 애 낳고 일주일 만에 일을 시작했다. 산후조리도 못하고 다시 돈을 벌어야 하는 딸이 불쌍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B 할머니는 이어 “시대가 변해서 나와 달리 딸은 많이 배웠기 때문에 딸이 나처럼 집에서 살림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고 황혼육아에 뛰어든 이유를 설명했다.

◇ “딸들아, 아이는 내가 볼 테니 너희는 걱정 마라”

 


할머니들은 자녀와 손자녀를 돌보면서 체력적으로 힘든 부분은 인정했지만, 그래도 황혼육아를 계속 하겠다고 말했다. 돈을 더 받고 싶은 생각도 없다고 말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자녀가 10분이라도 더 자고 출근하는 것, 아침밥을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고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정녀 할머니를 비롯해 A 할머니, B 할머니 역시 “딸과 며느리가 아이에 대한 걱정 없이 출퇴근 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아이를 돌봐줄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유정녀 할머니는 “아직 시집을 안 간 막내딸이 있다. 그 아이에게는 두 언니처럼 아이를 셋씩이나 낳지 말고 하나만 낳아서 일을 좀 편하게 하라고 말을 한다”며 일곱 번째 황혼 육아에 대해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할머니들은 자녀의 육아 부담을 덜어주는 것을 최우선이라고 말하며, 자녀가 조금이라도 편하게 직장 생활을 할 수 있다면 자신들은 괜찮다고 말했다. 그들은 하나 같이 “밖에서 일하는 아이들에 비하면, 집에서 애 보는 나는 힘든 것도 아니야”라고 말하며, 워킹맘인 딸과 며느리에 대한 사랑과 애틋함을 보였다.

지난 어버이날, 고맙고 사랑한다는 편지 대신 빳빳한 현금이 든 봉투 혹은 상품권을 건넸거나, 아들딸이 카네이션을 달아줬으니 끝이라고 생각한 맞벌이 부부가 있다면 어머니에게 편지를 한 통 쓰는 것도 좋다. 어머니의 황혼육아는 365일 진행 중이기 때문에 어버이날이 아니더라도 진심을 담은 편지 한 통은 시기에 관계없이 의미가 있는 선물이 될 것이다.

또한 매일 손자녀를 돌봐주는 부모님에 익숙해 고맙다는 말을 잊고 살았다면, 편지나 현금보다 우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고맙다’는 표현이 먼저다. 퇴근길 어머니 혹은 시어머니로부터 아이를 데려올 때, 눈을 맞추면서 “고생 많았어요. 고마워요”라는 말을 한다면 손주병을 앓는 그들의 손목, 허리, 목 등은 치유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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