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모도 엄마다②] “베이비박스는 민간재원으로 해결해야”
[미혼모도 엄마다②] “베이비박스는 민간재원으로 해결해야”
  • 백지선
  • 승인 2014.06.18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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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모들은 재취업에 어려움을 겪는다. 많은 미혼모들은 취업 시, 서류를 제출하지 않아도 되는 편의점, 호프집, 식당 등에서 일하며 어렵게 생계를 유지한다. 이마저도 미혼모라는 사실이 사업주에게 알려지면 해고당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많은 사람들이 미혼모가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버린다’고 생각한다. 미혼모의 ‘어리석고 무책임한’ 행동이 고아를 양산한다고 여긴다. 그러나 (사)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박영미 대표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아기를 건강하게 키울 수 없는 사회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며 베이비박스 운영에 대한 향후 대처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또 미혼모와 한부모가장이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는 양육에 대해서도 조언했다.

베이비타임즈는 (사)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박영미 대표와의 인터뷰 시리즈 기사를 마무리하며 더 나은 미혼모의 삶을 위해 함께 고민해봤다.

▲ (사)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박영미 대표.

 


◇베이비박스 유기? 최선의 방법 아냐

Q. 베이비박스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16일 토론에서 베이비박스에 아기가 버려지는 이유에 대해 ‘미혼모에게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란 말이 나왔다.

A. (사)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박영미 대표 :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놓고 가는 이유는 세 가지로 분석할 수 있다.

첫째, 엄마는 아기가 살길 바란다. 혼자서 몰래 아기를 낳은 엄마들은 아기를 낳자마자 당황스럽다. 맨정신이라 보기 어렵다. 이들은 현실을 부정하는 등 매우 혼란스러워 한다. 하지만 적어도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유기하는 엄마들은 아기가 살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그래서 이들은 아기를 아무데나 유기하지 않고 비교적 안전한 베이비박스에 유기하는 것이다. 이성이 갖춰진 상태에서 아기를 유기하는 거라 볼 수 있다.

둘째, 엄마가 자신이 낳은 아기의 엄마임을 밝힐 수 없는 상황이다. 예를 들어 엄마가 혼외관계로 임신해 낳은 경우다. 이 경우, 기혼엄마는 현재 남편의 아기가 아닌 다른 남자와의 관계에서 생긴 아기를 맡아 키울 수 없다.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혹은 엄마가 현재 미혼인 상태다. 엄마는 아기를 자신이 키우게 되면 ‘미혼모’로 살아가야 한다. 엄마는 아기와 엄마인 자신의 인생이 망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경우, 엄마들은 자신이 아기를 키우지 못해도 아기를 살릴 수 있는 방법으로 ‘입양’을 떠올린다.

셋째, 입양 및 보육시설에 대해 잘 모르는 엄마들이 아기를 베이비박스에 유기한다. 아기를 유기할 정도면 임신했을 때 이미 아기를 키우기 어려운 상황이었을 수 있다. 우리 때만 해도 나이 차이 많이 나는 형제의 아기 즉 조카를 직접 돌보거나 이를 목격한 혹은 동생을 돌본 경험이 있다. 그러나 요즘 엄마들은 아기를 직접 돌본 경험이 없다. 아기에 대한 양육지식이 전무하다. 또 엄마를 위한 법 제도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엄마는 몰래 아기를 낳기는 했으나 보름 혹은 한 달만 키워도 육아의 책임과 힘듦에 결국 두손두발을 들고 만다. 결국 아기와 엄마 자신 모두 살 길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베이비박스로 발걸음을 돌린다. 그러나 베이비박스 유기가 결코 옳다고 볼 수 없다. 왜냐면 어차피 이 아이들은 2~3일 내 아동센터와 같은 고아원으로 보내지기 때문이다.

자신이 엄마임을 드러낼 수 없을 때 혹은 드러내고 싶지 않을 때 엄마는 아기를 데리고 베이비박스로 향한다. 베이비박스는 생명을 살린다는 극히 제한적 의미에서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 제5회 2014 미혼모에 대한 사회인식 개선을 위한 포럼 중 엄마(발표자)를 따라온 아이.

 


◇베이비박스, 민간 재원으로 해결해야 하는 이유

Q. 해외 베이비박스 운영에 대해 알려달라.

A. 박영미 대표 : 독일의 경우, 병원에서 베이비박스 제도를 운영한다. 프랑스는 병원에서 아기를 낳은 산모에 대해 익명출산제를 보장한다. 현 한국정부는 익명출산제 시행이 어렵다. 그렇다고 병원에서 나서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정부는 헤이그협약 및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이 두 협약은 아동의 권리를 우선으로 한다. 여기서 말하는 아동권리란 아동이 친부모에게서 자랄 권리, 아동이 자신의 정체성을 알 권리 등이다. 독일과 프랑스는 입양아가 성인이 됐을 때 부모를 알게 한다.

정부는 아기를 베이비박스에 유기하는 엄마들의 특성을 이해한다면 프랑스나 독일처럼 익명출산제 혹은 병원에서 베이비박스 운영하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 또 정부는 입양특레법에 의해 아기가 입양되면 아기에 대한 엄마의 기록이 지워진다는 것을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 아기를 유기하는 대부분의 엄마들은 아기를 낳은 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버리는 경우도 많다.

아까 말했듯 아기를 유기한 엄마들은 자신의 익명성을 보장받고 싶어한다. 하지만 정부가 베이비박스를 관리하면 수급자 즉 엄마는 자신의 익명성을 보장받을 수 없다. 정부지원을 받기 위해 서류를 작성하는 등 자신을 노출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문제는 민간단체의 재원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만약 재원이 갖춰진다면 (사)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는 센터(쉼터)를 마련해 익명을 바라는 엄마가 아기 양육과 입양을 결정할 수 있을 때까지 두 사람을 보살피며 지원할 계획이다.

▲ (사)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박영미 대표.

 


◇미혼모 양육, 훌륭한 케이스 많다

Q. 많은 한부모가장, 미혼모가 이 기사를 볼 것이다. 이들을 위한 양육팁을 알려달라.

A. 박영미 대표 : 미혼모와 한부모가장을 위한 육아팁 첫째, 엄마(혹은 아빠)와 아이를 위한 육아공동체를 만들면 된다. 한부모가족들끼리 가까이 살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5~10명이 가까이 살며 공동체를 형성한다면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 가능하다.

둘째, 마을을 만들면 된다. 마을에서 존재를 드러내지 않은 사람을 찾아 드러내 마을 주민으로서 존재를 인정받도록 하는 ‘풀뿌리여성운동’을 예로 들 수 있다. 미혼모 혹은 한부모가족끼리 마을을 형성해 살게 되면 이들은 자신의 존재를 자유롭게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앞서 말한 공동체가 마을을 만드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대부분의 미혼모는 아이를 길러본 경험이 없어, 아이 양육에 대한 조언을 주변사람들로부터 구해야 한다. 이때 공동체나 마을 사람들에게 구한다면 양육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셋째, 아이를 양육할 때 본인의 노동을 이유로 아이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아이를 너무 올곧게 양육하기 위해 지나치게 간섭해서도 안 된다. 미혼모는 대부분 스스로 노동해 생계를 꾸린다. 하지만 분명한 건 돈만으로 아이에게 잘 해주거나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는 점이다. 아이와 같은 눈높이에서 양육해야 한다. 양육 또한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

미혼모라 해서 양육에 특별함이 있지 않다. 미혼모 또한 일반 워킹맘과 같은 고민을 한다. ‘아빠의 부재’만 다를 뿐이다. 실제로 많은 미혼모가 자녀를 잘 양육한다. 미혼모가 자녀를 훌륭히 길러낸다는 것을 많은 분들에게 알리고 싶다(웃음).

▲ 지난 5월 26일 미혼모에게도 출산휴가를 거리캠페인 중 슬로건을 들고 있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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