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행 칼럼] 과거 30년 남녀 취업자의 직종분포 변화
[이선행 칼럼] 과거 30년 남녀 취업자의 직종분포 변화
  • 김복만 기자
  • 승인 2020.05.18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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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행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여성노동연구센터 전문연구원
이선행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여성노동연구센터 전문연구원

어린이 기자: 어떻게 하면 질병을 관리하는 본부장님 같은 분이 될 수 있을까요? 어떤 공부를 해야 질병관리본부에서 일할 수 있나요?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 질병관리본부는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어우러져 일을 하고 있어요. 의사, 간호사 같은 의료인들도 있고, 미생물이나 세균 등을 전공하신 분들도 있고, 통계분석하시는 분들도 있고, 행정을 하시는 행정전문가들도 있고, 굉장히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같이 모여서 일을 하기 때문에 학생이 이야기 한 것처럼 어떤 공부를 하더라도 질병관리본부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는 굉장히 무궁무진하고 다양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중앙방역대책본부 ‘어린이 특집 코로나19 정례브리핑’ 中)

 

어린이날 기념으로 중앙방역대책본부에서 실시했던 특집 정례브리핑의 일부이다. 천진난만한 어린이 기자의 순수하고도 흥미로운 질문에 대해 정은경 본부장의 답변이 정말 감동적이지 않은가?

정은경 본부장의 말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가 일상뿐만 아니라, 엄청난 재난에 대응하는 데 있어서도 수많은 직업과 학문들이 유기적으로 도움을 주고받는 시스템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단적으로 표현해 주고 있다.

또한 어린이 기자의 이 질문에는 ‘의학박사 정은경’이라는 이름이 이제는 개인의 이름, 의료인이라는 특정 직업을 넘어서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고위직 공무원, 이공계 전문가 등이 남성들의 전유물이라고 여겨졌던 일반의 인식을 바꿔놓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담겨져 있다.

여성들의 고위직 승진을 막는 조직 내의 보이지 않는 장벽을 일컫는 ‘유리천장’, 노동 시장에서 여성과 남성이 직종에 따라 분리되는 현상을 가리키는 ‘직종분리’(예컨대 간호사는 여성이, 기술직은 남성이 주를 이루는 현상)는 우리나라 여성 노동시장의 특징을 나타내 왔던 주요 두 가지 키워드이다.

이번 칼럼은 여성 노동시장의 이 전통적 코드들이 포스트 코로나(post corona) 시대에 어떤 변곡점을 보여줄지에 대한 길찾기라고 할 수 있겠다.

주기적으로 창궐하는 전염병이 가져올 미래사회의 변화, 그 중에서도 경제산업구조, 직업의 변화는 ‘급격한’ 변화일 것이라는 예측만 가능할 뿐 그 이상은 알기 어렵다. 왜냐하면 위기가 여전히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준비 없이 마주친 변화가 어떤 직업을 만들고 없앨 것인지, 특히 성별 직종분리에는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에 대한 근거를 보여줄 통계는 아직 전무하다.

하지만 사회경제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었던 지난 2·30여년 간의 통계들을 활용한다면 미미하나마 신박한 영감과 단서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본 칼럼에서는 비교적 긴 추세의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자료를 활용했다.

전체 취업자를 대상으로 1993년부터 2019년까지 약 30년 동안의 남녀 직종분포 추이를 살펴보았는데, 통계청의 표준직업분류체계가 여러 차례 개정되었기 때문에 시계열 단절이 발생하므로 전체 기간을 1993년~1999년과 2000년~2019년으로 구분하여 분석했다.

1999년까지의 직종분포 변화를 보면 남녀 간의 큰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1993년~1999년 기간 동안 남성과 여성 모두 ‘전문가’, ‘기술공 및 준전문가’의 비율이 높아졌지만 남성의 비율 증가폭이 훨씬 크다(직종 합: 남성 5.9%p, 여성 2.2%p).

마찬가지로 서비스 및 판매직 근로자의 비율 역시 남성과 여성 모두 증가했지만 이번에는 여성의 비율 증가폭이 훨씬 큰 것으로 나타났고(남성 0.6%p, 여성 5.3%p), ‘농업 및 어업 숙련근로자’는 남녀 동일하게 비율이 감소하였다(남성 –1.2%p, 여성 –1.7%p).

이 기간 동안 서비스업 중심으로의 산업구조 개편은 여성의 서비스 및 판매직 집중을 심화시킨 반면, 남성은 전문가, 기술공 및 준전문가 직종의 비율이 높아지면서 직종 분포를 오히려 고르게 변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그림] 직종 분포 변화(대분류): 2000년-2019년 (자료: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각년도 원자료 분석 결과)
[그림] 직종 분포 변화(대분류): 2000년-2019년 (자료: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각년도 원자료 분석 결과)

[그림]은 남성과 여성의 지난 20년 동안의 직종 분포 변화를 살펴본 것인데, 남성에 비해 여성이 더욱 드라마틱한 변화를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남성의 경우 2008년까지는 ‘전문가 및 관련 종사자’와 ‘사무 종사자’가 타 직종에 비해 큰 폭으로 증가하고, ‘기능원 및 관련 기능 종사자’와 ‘농림어업 숙련종사자’의 비율이 약간 감소 추세인 것을 제외하면 2010년대에는 큰 변화 없이 분포가 비교적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여성의 경우 전 기간에 걸쳐 관리자와 단순노무종사자를 제외한 모든 직종이 단조적인 증가 혹은 감소 특징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전문가 및 관련 종사자’의 급격한 증가, ‘농림어업 숙련 종사자’의 급격한 감소가 눈의 띈다.

물론 이 기간 정책적인 이유로 주로 여성들이 많이 종사하고 있는 가사 및 돌봄노동 종사자들의 수가 급격히 늘었고 이러한 직종이 대부분 준전문가로 분류된다는 점에서 여성의 전문가 직종 증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중분류, 소분류 단계에서의 분석을 통해 명확하게 밝힐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여성의 ‘서비스 종사자’의 비율은 2008년까지 가장 높은 비율을 유지하다가 2009년 큰 폭으로 하락했고 2011년 이후 조금씩 다시 증가하는 추세를 보인 반면, ‘단순노무 종사자’는 반대로 2008년에서 2009년 큰 폭으로 증가했다가 점차 감소하는 대칭적인 추세변화를 보이고 있다. 이 시기는 미국에서 시작된 전 세계적 금융위기가 진행되었던 시기로, 여성 노동시장이 사회경제적 위기에 더욱 취약함을 보여주는 단적인 근거라 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이 단순한 분석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중요한 단서는 여성 노동시장은 남성보다 더욱 변화에 민감하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 변화의 방향이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혹은 긍정도 부정도 아닌 중립적일 수 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변화에 민감하다는 뚜렷한 사실은 앞서 언급한 성별직종분리현상을 더욱 고착화 시킬 우려가 있다. 대학진학률과 학업성취도의 차이가 사실상 사라지고 성별 직종분리를 해소하기 위한 무수한 정책과 예산이 투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20년간 악화 내지는 정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구자들마다 그 현상과 원인, 미치는 악영향(임금 및 고용상태 등)의 정도를 바라보는 관점의 다소 차이는 있지만 지난 수년간 여전히 강고한 직종분리 현상을 보이고 있고 여성의 저임금, 불안정한 고용의 주요 원인이 되어, 인력의 효율적 배분 등 경제적 효율성을 저해한다는 점에서는 큰 이견이 없다.

코로나 위기를 통해 ‘정은경’으로 상징되는 ‘한국 여성 이공계 전문직 고위 공무원’의 위상이 세계가 한국을 바라보는 인식, 여성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인식, 직업에 대한 어린 여학생들의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면, 이제는 위기가 기존의 불합리한 현상을 고착화 시키지 않도록 정책적인 고민과 노력을 투입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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