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교사 김선아 칼럼] 보건교사는 정말 ‘울트라 만능 파워 우먼’일까?
[보건교사 김선아 칼럼] 보건교사는 정말 ‘울트라 만능 파워 우먼’일까?
  • 김은교 기자
  • 승인 2020.04.29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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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아 송정중학교 보건교사
김선아 송정중학교 보건교사

2020년 상반기에 ‘보건교사 안은영’이라는 넷플릭스 드라마를 방영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처음 이 소식을 듣고 난 후, 주변의 많은 보건교사들이 다소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심지어는 보건교사를 제대로 그려내고 있는지, 그 이미지가 왜곡되지 않도록 제작사에 연락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선생님도 있었다.

그러나 이미 해당 소설을 읽어 내용을 알고 있던 나는 이 소식을 그저 웃어 넘겼다. 작품 주인공의 직업이 단지 보건교사일 뿐, 진짜 보건실 얘기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국어교사도 영어교사도 아닌 ‘보건교사’라는 제목으로 드라마가 만들어지고, 지난해 장안의 화제였던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여주인공 정유미가 보건교사 안은영을 연기하게 된다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런데 왜 우리 보건교사들은 유독 이 제목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걸까? 나는 이런 반응이 보건교사들이 겪는 정체성의 혼란에서 오는 문제라 결론내리고 있다.

보건교사는 대학에서 간호학 전공 및 교직 이수 후 교사 자격증과 간호사 면허증을 보유해야 할 수 있는 직업이다.

이러한 보건교사의 직무는 ‘보건교육과 학생의 건강관리’다. 학교보건법 15조에도 명시돼 있다.

특히 학교의 유일한 의료인으로서 아프거나 다친 학생을 치료하고 보호하는 역할을 하며, 학생 스스로가 건강관리를 잘 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보건교육전문가’로서의 역할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보건교사가 왜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다는 것일까?

그 해답은 더 이상 학교가 교육·학습의 공간으로만 작용하지 않고 ‘돌봄’의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학교가 담당하는 복지의 영역이 넓어지면서 그 중심에 선 보건교사의 업무가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핵가족과 맞벌이 가족의 증가 ▲한부모 가정 ▲다문화 가족 ▲소년소녀가정 등 가족 형태가 다양해지면서, 가정 내 케어가 힘든 아이들이 보건실을 방문하는 횟수가 늘어났다. 통계에 따르면 10년 새 2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뿐만이 아니다. ▲학생 정신건강문제(학교폭력·따돌림·우울·자살사고 등) ▲위험에 노출된 학생 환경(성폭력·성매매·디지털성범죄 등) ▲청소년 건강문제(소아청소년 비만·흡연·음주·유행성 집단감염병) ▲건강고위험군 학생 증가(식품알레르기 1형당뇨병 등) ▲무분별한 성행동에 따른 사회문제(미혼모·낙태·영아 유기 등)까지 학교 보건 영역에서 다룰 문제들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어느날 동료 교사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너희 보건교사들은 일반 교사들이 가지지 못한 특별한 전문성을 가지고 있잖아”

하지만 그 특별한 전문성을 발휘하며 일하기에, 현실은 녹록지 않다.

‘보건’의 사전적 의미는 ‘건강을 지키고 유지하는 일’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국민의 건강을 보전 증진시키는 일’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해당 의미에 따르면 고른 영양 섭취와 운동을 통한 면역력·체력 증진도 보건의 의미에 속한다.

또 미세먼지·세균·바이러스에 오염되지 않도록 깨끗한 환경을 유지하는 것도, 학생이 다치지 않도록 학교 환경 및 시설을 관리하는 것도 보건의 영역이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생활 하나하나에 보건의 영역이 아닌 것이 없는 셈이다.

물론 학교보건의 역할은 보건교사만 하는게 아니다.

학교 관리자인 교장·교감 뿐만 아니라 행정실·체육교사·영양교사·담임교사 등 학교 내 모든 구성원들이 각자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학교에서는 특정 교과목 또는 전문 분야 교사가 존재하는 영역을 제외하고 넓은 의미의 ‘보건’ 관련 업무는 거의 전부 보건교사가 개입하고 있다. 또 학교 현장 전반에서도 그렇게 해주기를 요구하는 분위기다.

아울러 이 ‘보건’이라는 개념의 포괄성은 다른 직군과의 업무 갈등을 초래하게 만드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보건교사는 늘 긴장을 늦추지 못하며 일하는 직종 중 하나다. 새로운 사회문제가 생길 때마다 늘 주요 담당자로 지정되기 때문이다.

성폭력·성매매 예방교육이 의무화되면서, 그것을 도덕 또는 사회과 교사가 아닌 보건교사가 담당하게 된 것은 이젠 거의 일반적인 통념이 돼 버렸다. 흡연예방사업 또한 보건교사가 담당하고 있다.

최근 몇 년 간 뜨거운 이슈로 떠오른 ▲인터넷중독 예방교육 ▲심폐소생술 등 응급처치교육 ▲도박중독 예방교육 ▲마약류 등 약물오·남용 예방교육 ▲자살예방교육 관련해서는 학교보건법상 보건교육에 추가해야 한다는 발의도 이뤄졌다. 일부는 개정도 됐다.

이와 관련해 인터넷 중독 또는 자살예방교육은 정신건강 영역에 해당하므로 이해할 수 있지만, 솔직히 도박중독 예방교육은 무리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지난해 미세먼지 문제가 심각해졌을 때에는 관련 법 개정에 따라 ▲공기정화기 관리 ▲차량2부제 관리, 심지어는 ▲저수조까지 관리했다는 보건선생님도 계셨다.

그렇게 해가 바뀌었는데, 올해는 코로나19다.

최근 감염병 관리를 위해 학교에 열화상카메라 설치가 결정되면서 열화상카메라 관리를 누가 해야 하는지에 대한 말들이 많다.

또 기초학력보장법이 개정되면서 학생 학습지원 담당 교사에 보건교사가 포함된 것을 확인한 적도 있다. 의원실에 문의하니 학생들이 정서적 어려움을 호소할 수 있으므로 해당 부분을 케어해달라는 의미에서 포함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물론 전 인구의 1/6에 해당하는 학교 인구, 그리고 그 가족 구성원의 파급효과까지 고려하면 학교보건의 역할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또 학교보건법의 추가 개정은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봤을 때도 매우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보건’교사라는 명칭 탓에 전공 학문과는 거리가 먼 업무들을 일괄 책임져야 하는 보건교사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만성피로뿐이다. 신변상 문제 등의 이유로 잠시 자리를 비워도 보건교사에게 돌아오는 것은 결국 민원이다.

좌충우돌 봉숭아학당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하고 보건실로 돌아오면 잠시 쉴 틈도 없이 아픈 아이들을 치료해야한다.

각종 보건사업 및 교직원 의무교육, 환경관리와 행정업무 등을 처리하다보면 금방 퇴근 시간이 다가온다. 어느 하나 제대로 했나 싶을 만큼 머리가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상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현재 대한민국을 사는 보건교사들의 오늘이고 또 매일이다.

나는 가끔 스스로 반문한다.

“나는 과연 학생들에게 한 번이라도 따뜻한 교사였을까?”

“나는 의료인인가, 교사인가, 행정가인가, 환경관리 담당자인가?”

할 수 있는 능력이 많다는 것은 자부심과 보람을 느낄만한 일이지만, 역할 수행에 한계가 올 때 느끼는 무력감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어느 교사는 “학생들이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며, 아이들을 빠르게 대처하게 되는 교사가 아닌, 아이들 각각의 아픈 마음을 보듬어 주는 교사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이는 54학급 이상 대규모 학교에 재직중인 보건교사의 하소연이기도 하다. 그리고 보건 교사라면 누구나 느껴본 심정이다.

지난해 정부는 건강교육을 내실화하고 건강한 교육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학생건강증진 5개년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물론 해당 정책에 따라 보건교사의 역할은 더 늘어나겠지만, 학교보건의 기능 또한 확대되는 만큼 그 영역을 세분화해 적정 전문인력 또한 학교에 배치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아울러 어느 선생님의 말처럼 내가 잘할 수 있는 특별한 전문성을 발휘하며, 보건교사로서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김선아 송정중학교 보건교사 약력>

- 現 보건교사회 부회장

- 現 송정중학교 안전부장

- 現 대한당뇨병연합 자문위원

- 現 라이프스킬보건교육연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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