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女 근로자 “엄마로서 권리 찾고 싶다”
백화점 女 근로자 “엄마로서 권리 찾고 싶다”
  • 안무늬
  • 승인 2014.06.10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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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사진은 기사와 무관

 


백화점에는 ‘용모 단정’한 여직원들이 언제나 밝은 미소로 고객을 맞이한다. 누군가의 아내, 엄마, 딸일 수 있는 그들은 하루 10시간을 일어서서 근무한다. 하지만 손님이 많을 때에는 화장실도 못 가고 밥도 못 먹는다. 그들은 엘리베이터, 식당, 화장실도 전부 따로 쓴다.

손님이 없어도 손을 모으고 서서 대기 자세를 취하고, 직원 통로에서 나와 매장에 가기 전 90도 인사를 해야 하는 서비스 라인(스마일존), ‘하세요’가 아니라 ‘하십시오’ 등 그들은 복장, 말과 행동 그 어떤 것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매일 웃으며 고객을 맞는 그들의 하루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욱 열악했다.

◇ 백화점 일하는 엄마들, 자녀는 어떻게 돌보나

백화점에 일하는 엄마들 역시 다른 워킹맘과 마찬가지로 늦은 퇴근 시간으로 인한 육아 고충이 있다. 특히 백화점의 경우, 퇴근한 직장인 고객을 잡아야 하는 만큼 늦게까지 운영된다.

백화점들은 대체로 오전 10시 30분~오후 8시, 9시간 30분 동안 운영을 하며, 금~일요일에는 30분 연장해 10시간 운영을 한다. 하지만 백화점의 영업 시간이 8시, 8시 30분이라고 직원들이 그때 퇴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매대 정리, 마무리 청소, 판매 정산 등이 모두 끝나야 그들은 퇴근할 수 있다.

이처럼 백화점에 근무하는 엄마들은 늦은 출근 시간 덕분에 자녀의 등원, 등교를 도울 수는 있지만 하원, 하교를 함께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이나 학교가 일찍 마치는 날에는 갈 곳이 없어 일단 엄마가 일하는 백화점으로 가는 경우도 있지만, 의자가 준비된 매장은 한정적이다. 의자가 있는 매장은 주로 신발 매장이며, 의류 매장에는 의자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는 언제 쉴지 모르는 엄마 옆에서 앉아 있지도 못하고, 일하는 엄마를 지켜봐야 하는 것이다.

초등학교 저학년의 경우, 오후 1시면 모든 수업이 마치는데 개인적으로 학원에 다니지 않는다면, 아이가 엄마를 기다리는 시간은 최대 7시간인 것이다.

◇ 온몸 쑤시는 백화점 맘의 하루

의자가 있는 매장이라고 해도 직원이 의자에 앉아서 쉴 수는 없다. 국내 모 백화점의 경우, 하루에 1시간의 점심시간과 15분씩 2회, 30분 쉬는 시간이 주어진다. 이것이 본사에서 정해준 휴식시간이다. 손님이 많다면 이마저도 쉬지 못하는 직원들이 많다.

이처럼 서서 장시간 일하는 백화점 직원들은 하지정맥류, 방광염 등에 쉽게 노출된다. 서서 일하는 것뿐만 아니라, 매장에 혼자 있을 경우 대소변이 급해도 화장실에 갈 수 없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은 2008년 백화점 화장품 판매직 여성노동자 61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그들 중 230명은 알레르기성 비염을, 153명은 방광염을 앓고 있었다. 전체의 9.7%를 차지하는 57명의 여성이 우울증에 걸렸다고 응답하기도 했다.

방광염을 앓는다는 한 직원은 “고객을 상대하다가 화장실을 가기가 힘들기 때문에 참는 버릇이 생겼다”며 “그러다 보니 물도 잘 안 먹게 되고, 결국 방광염에 걸렸다”고 말했다.

올해 3월까지 백화점에서 근무했던 20대 여성 안씨는 “양팔을 제외한 온몸이 쑤셨다. 서 있기 때문에 어깨, 허리, 다리가 아팠고, 창고에서는 앉아서 작업을 해 목과 무릎이 아팠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어 “서 있는 게 너무 힘들어 차라리 무릎을 꿇는 게 낫겠다고 생각해 바닥 청소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백화점 관리자들이 보면 다시 일어서서 대기자세(팔을 모으고 서 있는 자세)를 취해야 했다”며 서서 근무하는 백화점 판매직에 대한 고충을 털어놨다.

◇ 임신부 판매직 종사자에 모성권 보장도 없어

 


화장품 매장이 많은 백화점 1층의 직원은 대부분이 여성이며, 이들 중에서는 만삭인 임신부도 가끔 볼 수 있다. 그들은 경력 단절, 병원 검진비 등 개인적인 문제 때문에 그만 두지 못하는 경우가 있지만, 대체 인력을 구하지 못했거나 회사 측에서 출산 휴가를 허락하지 않아 일을 계속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5월, 화장품 업체인 엘카코리아에 다니던 김씨는 신세계 강남점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그녀는 조산 위험이 있다는 진단을 받고, 회사에 무급 휴직을 신청했지만 회사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근무 중 갑자기 양수가 터졌고, 29주 만에 아이를 낳게 됐다. 그녀는 “회사에서 ‘양수 터진 게 아닐 수도 있으니 다른 병원에 가서 진찰을 다시 받아봐라’라는 말을 들었을 때 화가 많이 났다. 양수가 터져서 외롭게 택시를 타고 병원을 가야하는데도, 회사에선 ‘다음 고객은 어떻게 하느냐, 대체인력을 알아봐라’고 했다”며 최소한의 모성권 보장도 해주지 않는 회사에 대한 분노를 나타냈다.

이처럼 백화점에서 일하는 여성들에게는 ‘육아 휴직’은 꿈, ‘권고사직’은 현실이었다. 조금만 걸어도 힘든 임신부가 하루 10시간 노동을 한다는 것은 산모와 태아 모두에게 위험한 일인데도 그들은 본사가 아닌 근무 매장 동료들의 배려를 받아 5분, 10분씩 더 쉴 수 있을 뿐이다.

정신적 스트레스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아이를 위해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보고 싶을 그들은 손님들로부터 심한 욕설을 듣기도 하고, 무리한 요구를 들어줘야 하는 등 여러 가지로 고통 받고 있다.

◇ 백화점 노동자도 편히 아이 키울 수 있게 해야

육아 휴직, 직장 내 어린이집 등은 사무직 종사자가 아닌 판매직 종사자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만삭의 몸에도 서서 일해야 하고, 학교가 일찍 끝나 백화점에서 아이를 기다리게 하는 엄마들은 이직을 하고 싶어도 쉽지 않다. 퇴근 시간 10분 차이, 급여 10만원 차이는 있을 수 있어도 판매직 근무 환경 자체는 어떤 백화점, 어떤 매장에 가도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근무를 지속할 뿐, 해고가 두려워 처우 개선에 대해 아무런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딸린 식구가 없다면 모를까, 이제 아이도 있어 몸을 사리게 된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여성민우회에서는 백화점 노동자들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여성가족부와 고용노동부 등 관계 부처에서도 백화점 노동자들을 위한 인권 보장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실정이다. 흔히들 ‘감정노동자’라고 불릴 만큼 신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정신적 고통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는 그들의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해 정부와 사회의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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