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행 칼럼] ‘고용평등상담실’을 아시나요?
[이선행 칼럼] ‘고용평등상담실’을 아시나요?
  • 김복만 기자
  • 승인 2020.03.11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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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행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여성노동연구센터 전문연구원
이선행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여성노동연구센터 전문연구원
이선행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여성노동연구센터 전문연구원

“빼앗긴 2020년의 봄” 최근 코로나19의 확산으로 멈춰버린 대한민국의 풍경을 풍자하는 뉴스 기사들의 제목이다.

생물도 아닌, 그렇다고 무생물도 아닌 기껏해야 생명체의 세포에 기생함으로써만 증식할 수 있는 바이러스의 공격으로 우리의 일상은 이전에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상황들로 채워져 가고 있다.

한 해의 시작은 1월이지만, 통상은 새로 시작되는 학기에 맞춰서 가정의 계획, 회사나 국가의 계획이 3월에 본격적으로 돌아가는데, 그 모든 것이 멈추고 앞으로의 일정도 불투명하게 되고 있다. 초·중·고등학교 개학이 전면적으로 연기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고 3월 말이면 개최되어야 할 프로야구 시범경기 일정도 전면 보류되었다.

한 달도 남지 않은 기독교 최대의 절기 부활절을 준비하는 교회와 성당 역시 집회의 형태로 드려지는 예배와 미사를 온라인이나 가정예배로 갈음하는, 그야말로 200년 넘는 한국 선교 역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함께 잊혀진 날이 있다. 바로 ‘3.8 세계 여성의 날’이다. 이 날은 1908년 3월 8일 미국의 여성 노동자들이 열악한 작업장에서의 화재로 숨진 여성들을 기리며 궐기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당시 미국 1만 5000여명의 여성 노동자들은 뉴욕의 루트커스 광장에 모여 선거권과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대대적인 시위를 벌였다. 이때 시위에서 노동자들은 ‘우리에게 빵과 장미를 달라’고 외쳤는데, 여기서 빵은 남성과 비교해 저임금에 시달리던 여성들의 생존권을, 장미는 참정권을 뜻하는 것이었다. 이후 유엔은 1975년을 ‘세계 여성의 해’로 지정하고 1977년 3월 8일을 특정해 ‘세계 여성의 날’로 공식화했다.

해방과 함께 서구의 민주주의 제도가 계층과 사회적 갈등 없이 수혈과 같은 형태로 이식된 우리나라에서 여성이 투표권을 행사하고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보이지만, 여성의 참정권과 노동권의 획득은 실로 오랜 시간 선지자적 삶을 살아냈던 여성들의 땀과 피가 서린 기나긴 투쟁의 역사였다.

이번 글은 칼럼이기보다는 코로나가 빼앗아간 ‘3.8 세계 여성의 날’을 핑계 삼아 하는 정책홍보가 되겠다. 바로 ‘남녀고용평등법’과 ‘고용평등상담실’에 대한 소개이다. 특히 베이비타임즈 독자 중 육아와 일을 함께 하고 있는 워킹맘들께서는 꼭 한번 챙겨보시길 바라는 마음이다.

아울러 사회적 재생산이라는 거대 구조 안에서 일과 가정의 책임을 함께 지고 있는 이 땅의 어머니들께 깊은 존경과 감사를 보낸다. 물론 이에 (돕는 것이 아닌) 동참하고 계시는 아버지들께는 동지애에 다름없는 애정을 보내드린다.

‘남녀고용평등법’은 고용에 있어서 남녀의 평등한 기회 및 대우를 보장하는 한편 모성을 보호하고 일하는 여성의 지위 향상과 복지 증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하는 법률이다. 이 법에서는 일하는 여성들이 모집, 채용, 임금, 배치, 교육훈련, 승진, 정년, 해고에서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않고 육아의 권리를 보장받으며 평등하게 대우받을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1987년 처음 제정된 이후 5번의 개정을 거쳤는데, 직장과 가정생활의 양립이 고용평등의 주요 이슈가 되면서 2007년 ‘남녀 고용 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로 명칭이 바뀌었다.

이 법률에 따라 고용 상 성차별, 직장 내 성희롱, 모성보호 및 일·가정 양립 등에 대해서는 실체법적 규율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러한 고용관계에서 발생하는 분쟁의 경우 사업장 내에서 자율적으로 해결한다는 것이 ‘남녀고용평등법’ 상의 기본 원칙이다. 그리고 ‘남녀고용평등법’ 상 자율적 고충처리제도의 대표적인 정책이 2000년 제4차 개정에 의해 도입된 ‘고용평등상담실’이다.

고용평등상담실은 남녀고용평등법의 분쟁 예방과 해결을 위한 제23조 상담지원과 같은 법 시행규칙 제15조에 근거하여 운영되고 있는데, 고용평등정책의 주무부서인 고용노동부는 여성·노동단체 등 민간단체의 상담역량을 적극 활용하고 고용상 성차별,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의 신속한 권리구제를 지원하기 위하여 2000년 민간단체 10개소를 선정하여 고용평등상담실 운영을 시작했고, 현재는 총 21개 민간단체가 전국에 흩어져 고용평등상담실 운영을 지원하고 있다.

남녀고용평등법에 명시되어 있는 고용평등상담실의 주요 업무는 ▲민간기업 근로자를 대상으로 고용상 차별 및 직장 내 성희롱, 모성보호, 일·가정 양립 등에 관한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상담결과의 자체 해결 유도 및 위법 사항 확인 시 고용노동부 등 행정기관 사건 이송이 있다. 이밖에 2018년 미투국면이 진행되면서 직장 내 성희롱 사건들이 크게 부각되었고 이에 대한 대책의 일환으로 심리정서 치유프로그램과 사업장 교육이 추가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최소한의 기능이고, 원래 그 지역사회에서 오랫동안 뿌리를 내리며 활동하던 민간 여성노동단체들이 선정되어 고용노동부의 고용평등업무 일부를 담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고용평등상담실은 고용상 성차별 해소와 고용평등인식 확산을 위한 다양한 활동과 자체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이를테면 그동안의 상담 통계를 분석하여 보도자료를 배포한다거나, 3.8 세계 여성의 날이나 매년 7월 첫 주 기념되는 성평등주간에 맞추어 각종 차별 사례들을 고발하고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하기도 한다. 또한 각종 캠페인, 토론회 등을 통해 이슈를 확산시키고, 구성원들과 정책입안자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정 시기나 충격적인 사건이 터지지 않으면 관심을 끌지 못하는 이슈들이 대부분이므로 우리는 그 존재를 잘 인식 못하지만 고용평등상담실은 20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정부 고용평등정책의 실질적인, 거의 유일한 전달자로서 역할을 충실히 해오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용평등상담실의 인건비로 쓸 수 있는 운영비는 10년 동안 거의 인상된 적이 없고, 지원되는 운영비 역시 상담종사자 1인의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현실이다).

또한 직장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일상적으로 직면하는 차별과 폭력에 대한 상담은 법과 제도 상의 절차들을 알려주고 돕는 기술적 차원의 상담에만 머무를 수가 없는 구조로, 실제 고용평등상담실을 이용하는 내담자들은 상담을 통해서 자신들의 상처까지 치유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용평등상담실이 단순히 정보만을 전달하는 콜센터라는 식의 인식을 바꿔야 하는 이유이다.

2019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발간한 연구보고서 “고용평등상담실 운영 현황과 개선방안 연구”(김난주·박선영·이선행) 보고서에는 이와 관련한 상담실 종사자의 생생한 증언이 있다.

“돌고 돌고 돌아서 다른데 전화해보니까 “이렇게 하세요” 단순하게 알려준 곳도 있고, 그 복잡한 마음을 충분하게 얘기하고 싶은 거예요 상담자에게. 그러면 여성들의 특징을 얘기하면서 직관을 통해서 힘을 받고 자기 정리가 되잖아요. 상담을 통해서 자기 정리를 하세요. 저희는 좋은 게 힘들지만 자기가 정리가 되시면서 스스로 힘이 생기는 것 같아요. 내가 이렇게 할 수 있겠구나 교통정리가 되는 거예요. 내가 대응해야지 하면서 그걸 얘기를 하는 과정이 굉장히 긴 거죠. 울고 뭐하고 하시면서 얘기하고, 오시면 다른 데 상담할 때 이런 위로는 못 받았다, 선생님들이랑 상담해서 굉장히 힘이 되고 뭘 할 수 있을 것 같다, 용기가 난다고 하시고, 자기가 상처를 받으셨잖아요, 누구한테 그 얘기를 듣는 게 치유가 되는 거예요”(김난주 외, 2019, p.55)

혹자는 바이러스와 전쟁이 무서운 것은 눈에 보이지 않은 적과의 싸움이기 때문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바이러스 역시 전자현미경을 통해 볼 수 있다. 지금은 이 전쟁이 언제 끝날지 그 시기를 장담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언젠가는 이 코로나바이러스의 대유행도 결국은 끝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전자현미경으로도 보이지 않는 일상화된 폭력과 차별의 바이러스는 더 무섭고,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더구나 그 폭력이 우리 삶의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직장과 가정에서 생기는 것이라면, 이것은 한 개인의 인간성을 파괴하는 것을 넘어서 공동체의 유지와 안전에도 큰 해악이 될 것이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이제는 결핵으로 피를 토하면서도 재봉질을 하던 어린 여공들의 비참한 노동현실도, 현실을 극복해야 할 근로기준법의 유명무실함도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을 고발하는 유일한 수단이 분신(焚身)이었던 시대도 아니다. 그러나 권력과 위계를 통한 차별과 폭력은 더욱 교묘해지고 악랄해지고 있다. 마치 바이러스가 계속 변이를 일으키는 것처럼 말이다. 고용평등상담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는 이유이다.

*본 기고문은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2019년 연구 보고서인 ‘고용평등상담실 운영 현황과 개선방안 연구(김난주・박선영・이선행, 2019)’의 내용 일부를 인용하여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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