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임·유기 아동의 그늘과 내막…“출생신고조차 안해”
방임·유기 아동의 그늘과 내막…“출생신고조차 안해”
  • 김은교 기자
  • 승인 2020.03.10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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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자에게 외면당한 아이들…학대 피해 끝에 사망까지
정부, 인권위 권고 후 출생통보제·보호출생제 도입 선언

[베이비타임즈=김은교 기자] 모든 아동은 출생 즉시 정부 공식 절차에 따라 등록돼야 한다. 아이들에게는 ‘이름과 국적’을 가져야 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7년 11월,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당시 법무부장관과 대법원장에게 ‘가족관계 등록 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할 것을 권고했다.

분만에 관여한 의사‧조산사 등이 아동의 출생사실을 국가기관에 직접 통보할 수 있도록 의무화해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유엔아동권리협약 제7조에 명시돼 있는 '아동의 이름과 국적을 등록할 권리'. (자료제공=유니세프한국위원회)
유엔아동권리협약 제7조에 명시돼 있는 '아동의 이름과 국적을 등록할 권리'. (자료제공=유니세프한국위원회)

◇ 버려진 아이들, 시작도 없었다

이보다 앞선 같은 해 3월, 투명인간으로 살다 간 아동의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졌다. 죄책감에 시달리던 아이 엄마 A씨의 자백에 의해서다.

2010년 10월 태어난 A씨의 아이는 그해 12월 생을 마감했다. 생후 2개월만이었다. 수일간 고열에 방치된 것이 원인이었다.

확인 결과 A씨 부부는 아이의 출생신고도 하지 않았으며, 딸의 시신까지 유기한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남편이 아이에게 폭력을 가했다는 사실도 발각됐다.

부모에게조차 외면당한 아이의 마지막은 결국 학대였고 방치였으며 끝내는 죽음이었다. ‘이름과 국적을 가질 권리’의 부재는 결국 존재에 대한 부정이었던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동들과도 그 맥락을 같이 한다. 지난 2018년 기준, 유기 아동의 수는 총 320명. 이 중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동은 무려 171명에 이른다.

반면 아이의 출생신고를 시도하지만 거부당하는 사례도 있다. 혼외자녀의 경우, 원칙적으로 엄마만 출생신고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지난 2015년 11월19일, 기존의 출생신고 법의 문제점을 개정한 이른바 ‘사랑이법(가족관계등록법 제57조 2항)’이 시행됐다. 미혼부도 아이의 출생신고를 할 수 있는 방법이 마련된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이 무척 까다로워 출생 즉시 등록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렇게 존재 자체를 부정당한 아이들은 보호받을 권리도, 교육받을 권리도 모두 박탈당한 채 사회 속 유령이 된다. 당연히 누려야 할 복지 혜택은 그 대상에서부터 이미 배제된다.

‘아동이 등록될 권리와 아동 최선의 이익’. 앞서 언급한 인권위의 법률안 개정 권고 배경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이는 곧 ‘출생통보제’ 도입의 필요성으로 이어졌다.

2019년 정부가 발표한 '포용국가 아동정책' 추진방향. (자료제공=보건복지부)
2019년 정부가 발표한 '포용국가 아동정책' 추진방향. (자료제공=보건복지부)

◇ 아동의 등록될 권리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

지난해 5월 23일. 정부가 ‘포용국가 아동정책’ 발표를 통해 ‘출생통보제’와 ‘보호(익명)출산제’ 도입을 선언했다. 아동의 ‘등록될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서다.

이 같은 정부 결정은 해당 제도가 보호자로부터의 유기·학대·방임·사망 등의 문제를 예방 및 개선해 줄 것이라는 기대에서 비롯됐다. 물론 모든 아동이 반드시 누려야 할 복지 혜택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시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먼저 출생통보제는 아동이 태어난 의료기관이 해당 아동의 출생사실을 국가에 직접 통보하는 제도다. 부모에만 의존해 누락 건 발생을 자초했던 기존 출생신고 시스템의 문제점 개선을 위해 마련했다.

다만 개인 사정에 따라 출산 사실을 알리고 싶어하지 않는 임산부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보호출산제 도입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출생통보제 시행으로 발생할 수 있는 의료기관 내 출산 기피 현상을 보완하기 위한 조치다.

여기서 보호출산제란, 임산부가 자신의 신원을 감춘 채 출산 및 출생등록 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단, 해당 절차는 일정한 상담 등 엄격한 요건에 따라 진행된다.

아울러 해당 정책들은 앞선 2011년, 유엔(UN) 아동권리위원회가 한국 정부에 권고한 ‘모든 어린이가 차별없이 출생등록될 수 있는 제도 마련 촉구’의 대안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작 의료계 내에서는 해당 제도를 달가워하지 않는 듯 보인다. 특히 직접 당사자인 의사들의 반발이 무척 거세다. “행정기관 아닌 의료기관이 국가의 행정업무를 대신하는 것은 공무원법에 위배되는 행위”라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정부는 해당 내용이 담긴 국가보고서(제5·6차 유엔아동권리협약 국가보고서 쟁점목록에 대한 답변서)를 유엔에 제출하며 출생통보제(온라인 출생신고제도) 도입을 공식화했다.

이에 따라 향후 출생통보제 및 보호출산제 적용을 위한 정부의 대처, 즉 산부인과계와의 적절한 협의 및 효과적인 가족관계등록법 개정이 어떻게 이뤄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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