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수의 유머학개론] 번외 - 회식으로 인한 부부싸움, 어찌 하오리까
[이정수의 유머학개론] 번외 - 회식으로 인한 부부싸움, 어찌 하오리까
  • 송지나 기자
  • 승인 2020.03.02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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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수 개그맨 겸 주부작가
이정수 개그맨 겸 주부작가

제 블로그 댓글에 고민이 하나 올라왔습니다.

남편은 회사를 다니고 아내는 전업주부인 가정이었습니다. 아내는 신혼 때부터 남편의 잦은 야근과 회식이 불만이었습니다. 그러다 아이가 태어나고 남편의 잦은 회식은 다툼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남편은 아내에게 딱히 이야기를 하지 않고 회사의 회식을 빠지며 집에 일찍 돌아왔습니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어느날 남편이 아내에게 고민이 있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고민을 듣고 아내는 놀랐습니다. 남편이 회식에 빠지면서 일찍 귀가를 하는 대신 회사에서 왕따처럼 됐다는 것입니다. 상사에겐 미운털이 박혀서 승진도 밀리게 된 것 같고요.

이야기를 들은 아내는 자책했습니다. ‘나 때문에 회식도 피하고, 승진할 수 있는 기회를 날리게 된 건가?’

이런 고민은 단지 이 집만의 문제라기보다는 우리나라의 많은 가정이 공감하고 있는 일일 겁니다. 회식을 가자니 가정에 눈치가 보이고, 회식에서 빠지자니 회사의 눈치가 보이고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결국 회사 눈치를 더 보게 되지만요.

아무튼 저는 워라밸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이 회식 문제에 대한 해법을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우선 회식으로 인해 부부싸움이 나면 대략 이런 대화로 이어집니다.

“나는 집에서 혼자 애 보며 힘들어 죽겠는데, 또 술 마시고 늦게 들어와?!”

“내가 놀다 온 거야? 나도 가기 싫은데 어쩔 수가 없어!”

이 대화 안에 싸움의 문제와 해법이 다 들어 있습니다.

우선 “나는 집에서 애를 보며 힘들어 죽겠다”입니다. 주로 육아를 담당하는 주양육자(특히 전업주부)의 가장 힘든 부분은 자유가 없다는 것이죠.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아이 때문에 쉽지가 않고, 가끔 친구들과 회포라도 풀고 싶은데 기회가 잘 안 주어집니다. 그 와중에 배우자는 재미있게 놀다 온 것 같아서 화가 나는 거죠.

이 문제는 남편이든 아내든 자신의 회식 숫자만큼 아이를 돌본 배우자에게 비슷한 자유시간을 주면 상당히 해결이 됩니다.

사실 주양육자들 중에는 배우자를 믿지 못해서 홀로 나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믿어야 합니다. 처음만 어려울 뿐입니다. 자꾸 하면 거침없이 나갈 수 있습니다!(웃음) 온실 속의 배우자는 절대 실력이 늘지 않습니다. 과감하게 아이를 맡기고 나가세요. 그러면 집안일과 육아가 얼마나 어려운지 깨닫는 기회도 될 겁니다.

자유의 타이밍이 거의 주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평일 저녁에 4~5시간의 자유만 생겨도 마음에 평화가 많이 찾아옵니다. 그 약간의 자유시간도 회식 트러블을 줄여줄 겁니다.

다음은 “또 술 마시고 늦게 들어 와?!” “내가 놀다 온 거야?”입니다. 물론 진짜 어쩔 수 없는 회식자리도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 중엔 그렇지만은 않은 자리도 있는 것 같으니 화가 나는 거죠. 친구간의 술자리도 있을 것이고, 회사 사람들과 더 놀고 싶은 마음도 있을 것이고, 집에 일찍 귀가하기 싫은 마음도 있었을 겁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핵심은 ‘술’입니다. 친구를 만나서 어쩌다보니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술을 마시고 싶어서 친구를 만나는 경우도 있고, 또 술을 마시다 보면 더 늦게 들어오게 된다는 것이죠. 이런 경우만 빠져도 다툼을 더 줄일 수 있습니다.

아이가 어느 정도 말이 통하는 6살이 되기 전에는 부모에겐 전시상황이라고 봐야죠. 전시상황에 병사가 한 명이라도 더 있어야 하는데, 갖은 이유로 자리를 비운다면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그래서 드리는 제안입니다. 술을 한번 끊어보세요. 자신과 가족을 위해서 딱 2개월만이라도. 까짓것 2개월 정도는 해볼 수 있잖아요. 단지 2개월이지만 정말 신기한 경험을 하시게 될 겁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신의 본 모습을 잘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술이라는 윤활제를 이용해서 드러냅니다. 술만 마시면 말도 참 잘하고, 세상 친한 사이가 되어 있죠. 술 없이는 둘이 마주보고 5분도 대화를 이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어색해서요.

술은 일종의 최면입니다. 친한 줄 믿게 해주는 최면. 그래서 술을 마시지 않으면 주변 사람들이 정리가 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회식을 자꾸 빠졌더니 회사에서 왕따처럼 됐다는 것도 어쩌면 최면이 풀린 효과일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이 최면이 풀린 상태가 자신을 직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합니다. 자신의 역량을 정확하게 보는 것이 사회생활의 기본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은 자신을 늘 확대 해석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저도 저의 인기가 절정일 때, 개그콘서트에서 제가 빠지면 프로그램에 큰일이 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더 잘 나가더라고요. 하하.

자신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사회성과 대인기술은 어떤지,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의 어떤 점을 좋아했는지 알아야 합니다. 어쩌면 그 과정 중에 자신이 초라해 보일 수도 있고, 큰 ‘현타’가 올 수도 있겠습니다만 인생 막판에 깨닫는 것보다 초반에 아는 것이 좋겠죠.

저는 욕심이 많은 개그맨이었습니다. 데뷔하고 유명해졌을 때부터 차세대 예능MC감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도 그런 줄 알았고요. 그런데 다 내려놓고 자신을 돌아본 순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예능보다 교양프로그램에서 잘 웃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요. 아나운서 같은 개그맨이랄까요? 그렇게 머릿속이 정리가 되니까 목표치가 명확해졌습니다. 굳이 예능MC가 되기 위해서 관련된 곳을 기웃거리지 않아도 되더라고요. 저는 제 자리를 찾았습니다.

사회생활이 힘든 이유는 어쩌면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사실 자기 자리가 어딘지도 몰라 늘 고민하며 살잖아요. 술 한번 끊음으로써 이런 것들을 느낄 수 있는데, 해볼 만하죠. 사회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고, 집에서도 제자리를 찾고요.

마지막으로 “나는 집에서 ‘혼자’ 애를 보며”입니다. 이는 곧 자신을 혼자라고 느낀다는 거죠. 결혼을 할 때는 서로 보듬어 주며 외롭지 않게 살아가려고 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외로워졌다는 겁니다. 정상적인 가정이라면 구성원이 외로움을 느끼지 않아야 합니다. 외롭다는 것은 단지 같이 있는 시간이 부족해서 라기보다는 마음마저 따로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배우자와의 카톡창을 한번 열어보세요. 언제 어떤 대화를 나눴나요? 3일에 한번, 어쩌면 1주일 전에 한번 대화가 오가지는 않았나요? 이모티콘도 없는 건조한 대화 속에 대답도 “ㅇㅇ”처럼 간편하진 않았나요? 1은 없어졌는데, 대답도 없진 않았나요?

전화 통화를 할 때는 무슨 말을 하시나요? 늘 상투적인 ‘밥은 먹었어? 애는 뭐해?’ 같은 말만 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배우자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뭐가 그리 바빴는지 화가 난 듯한 말투로 대충 대답하고, 나중에 전화한다고 하며 툭 끊어 버리고는 다시 전화도 하지 않거나, 어차피 집에서 이야기하면 될 것을 굳이 전화로 해야 하냐는 극실용주의자 같은 대답을 한 적은 없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몸이 떨어져 있으니 그나마 마음이라도 전달할 수 있는 것들이 이런 건데, 이를 놓치는 순간 회식이라는 단어가 싸움의 핑계거리가 되기 좋죠. 회식을 안 가려고 노력하는 것을 알고, 배우자에게 신경 쓰려고 하는 것이 보이는데, 어쩔 수 없는 회식에 갔다고 이해 못할까요?

외롭지 않게 해주세요. 어쩌면 이것이 위에 얘기한 모든 것들을 뛰어넘는 최고의 해법이 아닌가 싶습니다. 외로움이 계속 이어지다보면 혼자인 것이 편해집니다. 차라리 혼자인 것이 편한, 그런 가정이 많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개그맨 이정수 프로필>
- 현) 네이버 칼럼니스트
- 현) EBS 라디오 행복한 교육세상(라행세) 출연
- 이리예 주양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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