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수의 유머학개론] 유머의 대원칙 정하기
[이정수의 유머학개론] 유머의 대원칙 정하기
  • 송지나 기자
  • 승인 2020.02.05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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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수 개그맨 겸 주부작가
이정수 개그맨 겸 주부작가

개그맨들은 장난을 심하게 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정도가 심해서 비개그맨들의 상식으로는 이해를 못하는 것들도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비개그맨들은 친구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나의 이혼 이야기를 우스갯거리로 삼으면 바로 싸울 겁니다. 그런데 개그맨들은 그냥 웃으면서 넘어갑니다.

이럴 수 있는 것은 그 안에 대원칙이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웃기면 됐다!”는 거죠. 그래서 웃기기 위해 어떤 소재도 이용할 수 있는 겁니다.

옹달샘이란 팀이 있습니다. 개그맨 유세윤, 장동민, 유상무로 구성된 팀인데, 이들에게도 대원칙이 있습니다. 바로 “어떤 장난에도 삐지기 없음!”이죠. 이들은 서로 너무 친해서 장난도 심하게 치거든요. 그래서 이런 대원칙을 세워 놓은 겁니다.

이들에게 갑자기 뺨을 때리는 것은 장난 축에도 못 끼죠. 농담에 가족을 동원하는 것도 허용범위입니다. 한동안 유행했던 것이 유상무의 전 여자친구 이야기였죠. 공개무대에서 애드리브로 같은 개그우먼이었던 A씨를 소재로 사용한 겁니다.

관객이 없는 녹화무대는 상대가 기분이 상하면 편집하면 되지만, 공개무대는 편집이 돼도 그 많은 관객의 기억에 남으니 더 조심해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웃기기 위해 그냥 던지고 봅니다. 삐지지 않을 것을 아니까요. (물론 그분도 이 상황을 그냥 웃으며 넘어갔습니다.)

이렇게 서로가 대원칙이 있으면 유머를 하기 편해집니다. 가정에서도 이런 대원칙을 정해 보세요. 예를 들면 결정이 어려운 것은 “가위바위보로 정한다!” 같은 거죠. 어떤 상황에서도 이 룰은 무조건 적용되는 겁니다. 아무리 심각해도 해보는 거죠. 물론 심각한 상황에서 하기 위해선 개그맨급의 배짱이 있어야 하는데, 이 배짱에 관한 이야기는 후에 진지하게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그럼 “가위바위보로 정한다!”를 생활에 적용해 보겠습니다.

<상황 1>

아내가 퇴근을 하고 지친 몸으로 현관문을 열며 집에 들어오고 있다.

남편: 설거지하기! 안내면 진 거, 가위바위보!

아내: (당황하며) 뭐?? 나…지금 퇴근….

남편: (웃으며) 너 안 냈다! 설거지! 아자!

이런 상황에서 화를 내면 대원칙이 무너지는 겁니다. 대원칙이 정착해야만 가정에 유머가 뿌리내릴 수 있습니다. 화를 내려면 그 순간 재치 없이 손을 못 낸 자신에게 화를 내야 하는 거죠.

 

<상황 2>

결혼 10년차의 부부. 늘 명절엔 시댁에 먼저 갔다가 처가댁에 갔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명절이 돌아왔다.

아내: (한이 많은) 저어, 여보. 이번엔 우리 집 먼저….

남편: 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안 돼!

아내: 그러지 말고, 10년 동안 시댁 먼저 갔으니 이번 한 번만 그렇게 해줘요!

남편: 아니, 지금까지 아무 말 없던 걸 왜 이제 와서?! 그냥 하던 대로 해! 까불지 말고!

아내: 뭐요?! 까불지 말고? 부인한테 까불지 말고? 야!!

남편: (욱해서) 야아~??

아내: 솔직히 내가 한 살 많은데, 그게 할 소리야! 까불지 말고~?!

남편: 한 살 많아서 좋겠다! 자랑이냐?

아내: 뭐? 이 사람이 진짜! 당신 이럴 거면 누구 집에 먼저 갈지 안내면 진 거, 가위바위보!!

남편: (얼떨결에) 보!!

아내: 내가 이겼다! 이번엔 친정 먼저 가는 거야!

위 상황에서도 어찌됐든 남편이 졌으니 처가댁에 먼저 가야죠. 시댁에 먼저 못가는 상황의 해결은 남편의 몫이니 알아서 할 일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무리가 되어 못 지킨다면 이에 상응하는 보상을 아내에게 해줘야 대원칙이 지켜지는 것이겠죠.

 

<상황 3>

오늘도 밥투정 중인 6세 민수. 열심히 이것저것 만든 엄마는 속이 터진다.

엄마: 민수야, 이 가지 좀 먹어 봐~ 엄마가 열심히 만든 거야.

민수: 안 먹어, 맛없단 말이야!

엄마: 한 입만 딱 먹어 보고, 맛없으면 안 먹어도 돼. 자, 아~!

민수: (입을 꾹 다물며 안 먹는다)

엄마: 너, 입 안 벌려? 진짜 딱 맛만 보라니까?!

민수: (결국 입을 작게 벌리고 먹는 듯 했으나, 딱 혀만 대고는) 웩! 맛없어!

엄마: 먹지 마, 다 먹지 마! 너는 이제 간식도 안 사주고 아무 것도 없을 줄 알아!

민수: (훌쩍이며) 엄마는 나 싫어하는 것만 주고…. 가지는 안 먹고 싶어! 안내면 진 거 가위바위보!

엄마: (당황하여 아무것도 하지 못함)

민수: 엄마 안 냈다! (웃으며) 내가 이겼으니까, 가지 안 먹어!

이때도 엄마가 정색을 하면 대원칙이 무시가 되는 겁니다. 그리고 이 대원칙이 지켜져야 다시 같은 방식으로 아이에게 가지를 먹일 수 있습니다. 엄마가 안 지키면 아이에게 지키라고 할 명분이 없는 거죠.

 

이 글에서 예시를 든 ‘가위바위보’를 적용해도 되고, 각자의 다른 방법을 찾아도 됩니다. 중요한 핵심은 어떤 것이든 정해진 대원칙은 절대 깨지 않아야 하는 겁니다.

혹여나 이 대원칙을 어겼을 경우 부여할 페널티도 만들어 둔다면 더 좋습니다. 일주일 식사 당번하기, 한 달간 청소 당번하기, 명절에 혼자 아이들 데리고 고향 방문하기, 비싼 선물하기 등 적정선에서 지킬 수 있는 페널티를 만들어 보세요. 그러면 대원칙이 더 잘 지켜질 겁니다.

 

<개그맨 이정수 프로필>
- 현) 네이버 칼럼니스트
- 현) EBS 라디오 행복한 교육세상(라행세) 출연
- 이리예 주양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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