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유치원 매입·공립 전환 ‘매입형 유치원’ 졸속 비판
사립유치원 매입·공립 전환 ‘매입형 유치원’ 졸속 비판
  • 이성교 기자
  • 승인 2020.01.13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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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 모르게 선정한 매입형 유치원, 결국 취소 신청 ‘뒤탈’
“유아교육 정상화 명목의 정부 정책이 교육현장 혼란 가중”

[베이비타임즈=이성교 기자] 정부가 국공립유치원 확충 방안 가운데 하나로 추진하는 매입형 유치원(사립유치원 건물을 사들여 공립으로 전환하는 방식) 확대 정책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학부모들을 상대로 의견수렴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매입형 유치원을 모집했다가 학부모 반발로 선정을 취소하면서 ‘졸속 행정’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매입형 유치원을 공모하는 과정에서 평가 배점 등이 바뀌는 등 선정 기준이 들쑥날쑥하고 일관성을 잃었다는 지적도 제기되는 실정이다.

교육 당국이 일부 사립유치원의 비리 사태를 빌미 삼아 국공립유치원을 확대해 유아교육을 정상화하겠다며 추진하는 매입형 유치원 정책이 오히려 교육 현장에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2019년에 매입형 유치원 등을 늘리는 방식으로 국공립유치원 1080학급을 증설해 유아 정원 2만여명을 추가 확보한다는 내용의 국공립유치원 확충 정책을 2018년 말 발표했다.

이에 경기도교육청은 유아교육 공공성 확립 방안으로 지나해 5∼9월까지 두 차례에 걸쳐 도내 원아 200인 이상 규모의 사립유치원을 대상으로 매입형 유치원을 모집했다.

모집 결과 90개가 넘는 유치원들이 지원했고, 1차에서 9개원과 2차에서 6개원이 선정됐다.

도교육청은 이들 유치원을 올해 2월 폐원하고 3월 공립으로 전환해 개원할 것을 목표로 선정된 유치원들과 부지 및 건물 매입가 감정평가도 마쳤다. 공립 전환에 들어갈 예산 730억여원도 올해 본예산안에 반영한 상태다.

그러나 10학급 이상 규모 15개 사립유치원의 대지와 건물을 사들여 공립 단설유치원으로 전환한다는 도교육청의 정책은 학부모의 반발에 부딪혔다.

◇ 경기 매입형 유치원 한 곳 학부모 반대로 취소 신청

경기도교육청은 지난해 8월 매입형 유치원으로 선정된 용인의 A유치원이 10월 31일 ‘선정 취소 신청서’를 접수했다고 지난해 11월 10일 밝혔다.

경기도교육청이 학부모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매입형 유치원을 모집했다가 학부모 반발로 유치원 한 곳이 선정 취소 신청을 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A유치원은 올해 3월 공립유치원으로 바뀔 예정이었으나 ‘재원생 학부모 70%가 전환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선정 취소를 요구했다.

도교육청이 매입형 유치원 선정 과정에서 해당 유치원 학부모들에게 선정 과정이나 결과를 제때 알리지 않았다가 학부모들이 들고일어나면서 뒤탈이 난 것이다.

자녀가 다니는 유치원이 당장 올해 3월부터 공립으로 전환된다는 소식을 언론 보도로 접한 학부모들이 문제를 제기하자, 도교육청은 부랴부랴 지난해 10월 설명회를 열었지만 학부모들의 불만은 누그러지지 않았다.

급기야 A유치원은 학부모 찬반투표를 진행한 결과 만 3∼4세반 학부모 134명 중 70%가 사립 유지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나자 도교육청에 매입형 유치원 선정을 취소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도교육청은 ‘이미 행정절차가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이를 반려했으나 A유치원과 학부모운영위원회는 선정 취소 신청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학부모 운영위원장 장모씨는 “두 기관이 아직 계약서나 확약서에 서명하지도 않았고 모집 공고문에도 ‘진행과정에서 취소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공립에는 없는 특화된 교육을 받으려고 사립을 선택해 왔는데, 우리들의 의견은 전혀 들어보지도 않고 멋대로 결정해 놓고 법적 근거도 없이 취소도 못 해준다고 한다. 이미 교육청과 학부모 사이에 신뢰가 무너졌는데 어떻게 믿고 자녀를 맡기겠느냐”고 비판했다.

A유치원 학부모운영위원회 관계자는 “우리 유치원처럼 확약서에 아직 서명하지 않은 곳들이 있는 것으로 안다”며 “앞으로 우리와 비슷한 문제가 또 있을지도 모르는데 교육청은 별다른 대책도 없이 손을 놓고 있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도교육청 학교설립과 관계자는 “정부 국정과제인 국공립유치원 취원율을 2021년까지 40%로 높이려면 반드시 추진해야 하는 사업”이라면서 “취소요청 사유인 학부모 의견수렴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절차가 아니라 반려했다”고 설명했다.

유치원 방문한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유치원 방문한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 ‘선정 기준’ 3개월만에 완화…낮은 점수 유치원 매입

시설 좋은 사립유치원을 사들여 공립으로 전환하려던 경기도교육청이 ‘매입형 유치원’을 재공모하는 과정에서 되레 최초 평가 점수가 더 낮은 유치원을 매입하게 된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첫 공모에서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바람에 선정된 유치원이 당초 계획에 미달하자 재공모를 냈는데, 재공모에서 평가 주안점이 조정되고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은 유치원들이 재공모에 지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평가 배점 등이 바뀌고 주관적 평가 배점이 늘어나면서 등수가 뒤바뀌는 등 일관되지 못한 평가방식도 문제가 됐다.

도교육청은 지난해 5월 매입형 유치원으로 전환한 15개 유치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냈다.

모집 공고에는 대상 사립유치원 239곳 중 85개원(36%)이 지원해 경쟁률 5.6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그러나 공모 결과 매입형 유치원으로 선정된 곳은 9개원 뿐이었다.

1∼15등 중 근거리에 이미 단설유치원이 있어 최종 선정에서 탈락한 7등과 9등 유치원을 제외한 1∼11등 9개 유치원이 선정됐다.

당초 공모계획이었던 ‘15개원 선정’이 유지됐다면 17등까지 순차적으로 선정돼야 했으나 ‘가급적 개보수 공사 없이 바로 공립유치원으로 전환 가능한 유치원’이란 엄격한 시설기준을 적용해 9개 유치원(1∼11등)만 통과된 것이다.

도교육청은 사립유치원 15개원을 공립으로 전환한다는 도민과의 약속을 지킨다는 취지로 8월 중순 재공모를 냈으나, 지원한 46개원 중 단 두 곳을 제외하고 44개원이 첫 공모에 지원한 유치원들이었다.

사실상 첫 공모에서 탈락한 유치원을 대상으로 재평가가 진행된 것이고, 최종 선정된 6개원은 모두 탈락 유치원 중에서 선정됐다.

첫 공모에서 적용한 ‘엄격한 시설기준’을 3개월 만에 완화했을 뿐만 아니라 선정에 대한 정해진 매뉴얼이 없다 보니 첫 공모와 재공모의 정량평가 평가지표별 배점, 배점 간격 등 일부가 변경되기도 했다.

일례로 정량평가 평가지표 중 시설여건에서 건축 노후도를 평가하는 항목의 배점 기준이 첫 공모 때는 6년 미만이 최고점, 12년 이상이 최하점이었으나 재공모 때는 10년 미만이 최고점, 15년 이상이 최하점으로 조정됐다.

정량평가 총점은 75점에서 70점으로 축소됐지만, 심사위원의 주관적 판단이 반영되는 정량평가의 종합의견 배점은 10점에서 12점으로 늘었다.

정성평가인 현장평가 점수도 25점에서 30점으로 늘어, 전체적으로 주관적 평가 점수의 배점이 늘면서 전반적으로 주관적 평가 점수가 확대됐다.

평가방식이 수정되면서 동일한 심사위원들이 동일한 유치원을 평가했음에도 첫 공모 때 매겨진 등수가 재공모에 와서는 뒤바뀌기도 했다.

심지어 첫 공모 때 합격권에 있던 유치원보다 등수가 최고 30등 넘게 차이 나는 유치원이 재공모 결과 매입형 유치원으로 최종 선정되는 일도 일어났다. 첫 공모 때 최종 43등이었던 모 유치원은 재공모에서 6등으로 매입형 유치원에 선정됐다.

한편, 도교육청과 지역교육청이 공모에 선정된 사립유치원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순회 설명회에서 학부모들은 이구동성으로 “사립유치원의 공립화를 원한 적 없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도교육청이 지난해 10월 14일 경기도 화성시 모 유치원에서 개최한 학부모 대상 ‘매입형 유치원 설명회’에서 한 학부모 대표는 “공립유치원 원하지 않는다. 공립유치원이 사립보다 싸지만 맞벌이 부부에겐 일할 여건을 주지 않는다”며 “6시 이후까지 아이를 돌봐주지 않는 공립으로 전환되면 다시 사립유치원으로 옮겨야 한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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