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수의 유머학개론] 가정에서 유머하기
[이정수의 유머학개론] 가정에서 유머하기
  • 송지나 기자
  • 승인 2019.12.30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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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수 개그맨 겸 주부작가
이정수 개그맨 겸 주부작가

개그맨 부부들은 절대 이혼하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그들에겐 심각한 상황마저 반전 시키는 능력이 있어서 거의 모든 순간이 웃긴 에피소드가 되기 때문입니다. 유머가 전화위복의 기술이 된 달까요.

우리 부부는 술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주량에는 큰 차이를 보이죠. 저는 1차에 만족하는 스타일인데, 우리 아내는 3차 이상을 해줘야 합니다. 그런데 4차쯤 되면 완전 저 세상 텐션이 됩니다. 저는 그녀의 저 세상 텐션에는 쫓아가지도 못합니다. 그렇게 우리 아내의 폭주가 시작되면 저는 동영상을 찍어 둡니다. 그리고 다음날 정신이 돌아왔을 때 놀리죠. 한 이틀가량 놀려줍니다. 그럼 우리 아내도 기죽은 척 미안하다며 웃고 넘어갑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저는 그 상황에서 화가 나지 않았을까요? 화가 났습니다. 당연히 화가 나죠. 내가 사랑하는 여자가 통제 불능의 상태가 되어서는 폭주 중인데요. 하지만 이것을 유머로 승화시킴으로써 우리는 크게 싸우고, 3일 동안 냉랭할 수 있는 집안 분위기를 반전 시킨 거죠. 유머가 이렇게 가정을 행복하게 바꿀 수 있습니다.

행복을 위해선 유머가 필수입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가정에서 유머를 잘 할 수 있는 기본적인 방법을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쉽지는 않습니다. 유머를 잘한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가정은 유머하기 참 어려운 곳이기 때문이죠.

유머라는 것은 일종의 레퍼토리가 있어서 그 레퍼토리가 있는 동안만큼은 누구나 유머러스한 사람이 됩니다. 하지만 그 레퍼토리를 다 쓰고 나면 웃기기가 쉽지 않죠. 그런데 가정은 이미 레퍼토리랄 게 없는 곳입니다. 이미 밑천이 다 드러난 상황이라는 겁니다.

게다가 유머를 하기 위해서 분위기가 편해야 하는데, 전날 싸우기라도 했다면 다음날 유머하기가 웬만해서는 쉽지 않죠. 또 유머를 하기 위해선 집중이 필요한데, 가정에서 서로에게 집중력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 한번 해보자고요.

자! 가정에서 유머를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상대에게 만만해져야 합니다. 저는 키즈카페에 가면 신기한 경험을 합니다. 그곳의 아이들은 제가 개그맨인지도 모르는데도 조금만 놀다보면 저에게 반말을 하고 절 친구처럼 대합니다. 이 사람에겐 장난쳐도 되겠다는 동물적 본능이랄까? 사실 아이들은 모두 유머감각이 천재적이라서 직관적으로 알거든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의 천재성을 얌전과 예절, 권위로 퇴화시키죠.

가정에서 좀 만만해 지십시오. 특히 자녀들과 상대할 때는 꼰대가 돼서는 안 됩니다. 부모로서 아이들을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늘 정답과 예의를 강요해서는 유머가 생기기 어렵습니다. 나이와 부모라는 계급장을 내려놓고 인간 대 인간으로 대화를 하다보면 장난으로 넘어갈 수 있는 상황들이 많아집니다.

일전에 아침 등원 준비하는 동안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우리 아내는 딸 리예(6세)의 등원복을 스타일리스트답게 멋지게 내놨습니다. 그런데 그 옷에 감히!! 프로가 챙겨준 것인데 감히! “엄마! 이건 내 스타일이 아니야! 다른 걸 줘!”라고 말했습니다.

열이 받은 엄마가 말했죠.

“그럼 네가 가서 옷 골라와.”

“아냐! 엄마가 가져 와! 이상하네? 평소엔 잘 가져 왔는데!”

사실 보통 일반적인 집에선 대판 혼나고 끝날 수도 있는 상황이죠. 하지만 우린 어이없다며 한참을 둘이 웃었습니다. 리예는 우리가 편하고 만만한 거죠.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직관적으로 툭 나온 겁니다.

사실 유머라는 것이 너무 머릿속에 필터링 되면 안 웃깁니다. 타이밍이 중요하니까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영화를 홍보하겠다고 배우들이 나오면 예능인들이 힘들어 하는 이유가 이겁니다. 배우들은 한마디를 해도 생각을 많이 하고 하거든요.

아무튼 부모라는 권위를 좀 내려놓고 자녀가 부모를 편하게 대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권위적인 것과 진정한 권위 중의 선택. 다르게 표현하자면 따르게 만들 것인가? 따르고 싶게 할 것인가? 이 선택을 하셔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유머에는 편한 환경도 아주 중요합니다. 제가 군대를 제대하자마자 부모님께 개그맨을 준비한다고 말씀드렸더니 부모님이 상당히 당황해 하셨습니다. 연예인의 피가 1도 없는 집안에서 그런 결정을 한 것에 대한 놀람도 있었겠지만, 집에서 도통 웃기지 않던 아들이 갑자기 연기자도 아니고 개그맨을 하겠다는 것에 놀라신 거죠. 저는 집에서 웃겼던 적이 거의 없었으니까요. 밖에서 친구들 사이에선 웃겼지만 집에선 그러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웃길 분위기도 아니었습니다. 늘 부모님이 싸우는 통에 눈치만 봤거든요. 여러분의 자녀가 저처럼 유머능력을 숨기고 자라지 않게 해주세요.

유머하기 편한 환경이라는 것은 ‘웃어도 될까? 웃겨도 될까?’를 고민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웃고 싶으면 웃는 거죠. 엘리베이터에서 연습하면 좋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곳은 동네에서 아는 얼굴과 마주 칠 때 연습하시면 됩니다.

엘리베이터의 상황은 주로 이렇습니다. ‘어? 아는 사람이다. 인사할까? 앗! 돌아섰다. 에이, 그냥 나도 핸드폰이나 보고 있자.’ 이런 마음이죠. 그런데 엘리베이터에서 사람을 만나면 활짝 웃으며 먼저 “안녕하세요!” 해보세요. 그러면 상대도 인사를 하거나 시큰둥하게 꾸벅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생각지도 못한 다른 대화로 연결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핵심은 어떤 반응이 나올지 모르는 사람에게 먼저 웃는다는 겁니다.

웃음은 평화의 사회적 메시지 같은 것이어서 상대가 웃어주면 나와 싸우고 싶지 않다는 의미로 받아 드리게 됩니다. 그럼 그 어색한 엘리베이터에서도 좀 편안한 분위기가 만들어 집니다. 이것은 자신에게도 좋은 효과가 있겠지만 이걸 본 자녀들도 웃음이 좋은 작용을 한다는 것을 보고 배우게 될 겁니다.

마지막으로 대화의 연결입니다. 대화도 연결이 잘 되지 않는데, 더 고급기술인 유머는 과욕이죠.

예전 무한도전에서 가요제를 위해 뮤지션들이 대거 등장해서 무도멤버들에게 오디션을 봤던 일이 있습니다. 그때 혁오밴드가 나왔었죠. 당연히 혁오밴드의 리더 오혁씨에게 유재석씨가 인터뷰를 했습니다. 질문을 받은 오혁씨는 장고 끝에 예, 아니오 정도의 단답으로 끝냈습니다. 천하의 유재석씨도 당황해하며 뭔가를 더 많이 이야기를 해달라는 액션을 보여주며 웃음을 자아냈죠. 이렇게 단답형 대답엔 토크신 유재석씨도 대화의 연속이 어렵습니다. 유머를 하려고 해도 대화가 이어져야 유머를 할 거 아닙니까?

대화를 잘 이어갈 수 있게 말을 걸어보세요. 인터뷰하듯이요. 단답형으로 나오지 않게 잘 물어봐야 합니다.

“오늘 유치원(회사)에서 어땠어?”하고 물으면 뭐라고 할까요? 대부분 “응, 좋았어!” 할 겁니다. 거기서 대화는 끝나죠. 이렇게 물으면 안 된다는 거죠.

“오늘 유치원에서 시금치가 나왔어?” “아니!” “아~ 그럼 미역국이 나왔구나?!” “그것도 아닌데?!” “아하! 그럼 소시지가 나왔겠네?” “응! 소시지랑 당근이 나왔는데, 나 당근도 먹었어!” “오~ 당근을 먹다니! 그럼 김치도 나왔겠네?” “응! 김치도 나왔지!”

이렇게 대화가 이어지게 인터뷰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다가 보면 유머가 자연적으로 나오거나 유머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생깁니다.

인터뷰를 잘하기 위해선 관심이 필수적입니다. 상대가 궁금해야 한다는 거죠. 가족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자녀들이 유치원과 학교에 다녀와서 오늘 이랬어, 저랬어 재잘대면 솔직히 무슨 말인지 다 못 알아들었으면서도 피곤해서 ‘어, 그랬구나~’라고 그냥 넘어가는 경우도 관심 부족인 겁니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넘어갔던 순간들. 이 경우 아이들이니까 잠깐 좀 그냥 넘어가자 싶은 마음이 있는 것 이해합니다. 그런데 배우자에게 관심이 없는 것은 큰일이죠. 어쩌면 자신에게 상처가 될까봐 관심을 끊은 것일 수도 있죠. 그 사람이 뭐가 변했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등등에 관심이 있어야 유머의 소재가 생길 수 있거든요.

좋은 행사 진행자들은 늘 현장에 일찍 가서 현장의 상태를 확인하고 기억합니다. 나중에 필요할 때 유머의 소재로 사용하려는 것이죠. 가정에서도 이런 습관이 필요합니다. 가족 구성원들을 관심 있게 봐주세요. 그럼 유머도 되고 사랑도 되고 행복도 올 겁니다.

 

<개그맨 이정수 프로필>
- 현) 네이버 칼럼니스트
- 현) EBS 라디오 행복한 교육세상(라행세) 출연
- 이리예 주양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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