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중칼럼] ‘시설난민과 시설폐쇄’ 부추기는 ‘지정갱신제’
[김호중칼럼] ‘시설난민과 시설폐쇄’ 부추기는 ‘지정갱신제’
  • 김복만 기자
  • 승인 2019.12.18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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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갱신신청 거부시 ‘사실상 폐쇄’…제도적 ‘시설난민’ 발생
본인 의지와 상관없는 생활근거지 이동에 따른 ‘쇼크사’ 우려
김호중 사회복지판례연구소 원장.
김호중 사회복지판례연구소 원장.

최근 노인학대로 인한 업무정지 처분을 받아 2개월간 시설문을 닫은 원장님과 상담하면서 매우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2개월간 업무수행을 하지 못해 받은 경제적 손실은 둘째치고, 업무정지로 인한 타 시설 전원조치와 다시 돌아오는 과정에서 어르신 5명이 사망했다는 것입니다. 시설난민이 부른 이동쇼크로 인한 어르신들의 사망에 억울함은 없을까요?

시설 난민(難民, refugee)은 업무정지 처분을 받은 노인요양시설 입소자가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타 시설로 강제 전원 조치돼 사실상 난민과 같은 처지에 이르게 된 상황으로 거주의 권리를 박탈당한 노인계층을 말합니다.

이 개념은 필자가 2016년 국회에 제출한 문건에서 사용한 개념으로 국회입법조사처 연구자료에서 인용해주신 내용입니다. 이동 쇼크는 정책의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이 부적절할 경우 그 책임의 소재를 밝히는 수단이 되는 개념이라고 사료됩니다.

경희대학교 간호과학대학의 이혜경, 이향련, 이지아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노인들에게 있어 거주지 이동은 사회 심리적 안녕과 생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러한 이동은 친숙한 근거지를 떠나고, 사회적인 인간관계 및 감정적인 애착을 단절시키는 등의 문제점을 발생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노년기에 이르러 시설에의 새로운 물리적, 사회적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상당한 노력이 요구됩니다. 특히 노인의 거주지 이동이 시설 입소인 경우에는 ‘이동쇼크(relocation shock)’, ‘이동스트레스증후군(relocation stress syndrome)’이라는 부정적인 용어로 불려지고 있습니다.(Laughline, Parsons, Kosloski, &Bergman-Evans, 2007)

더욱이 시설 입소가 자발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적응이 힘들고, 사망률도 높아집니다.(Reinardy, 1995) 적응이 되지 않은 노인들은 불안, 혼돈, 불면, 식욕저하, 우울, 외로움, 무기력과 눈물 등의 증상을 나타내며(Haight, 1995; Lee, 2002), 심각한 경우에는 자살시도나 실제 자살과 같은 부적응 양상을 유발할 수 있다(Kaisik & Ceslowitz, 1996; Lee, 2002)고 발표하고 있습니다.

이 연구는 기관의 노인학대 예방의 노력 여하와 무관하게 노인학대 판정에 따른 시설 업무 정지 처분이 남용될 우려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경험적으로 장기요양현장에서 민감하게 제기하는 학대판정과 행정처분의 비례원칙에 대한 지속적인 민원과 무관치 않습니다.

그런데 올해 12월 12일부터 장기요양기관 지정갱신제가 도입됐습니다. 신규 지정을 희망하거나, 기관 양수로 재지정 받을 경우 1개월의 심사 기간이 필요합니다.

특히 양수시설의 경우 기존 시설을 폐업하고 어르신을 타 시설로 전원 조치하거나, 노인의료복지시설로서 실비를 받아 1개월간 운영한 뒤 장기요양기관으로 지정받아야 장기요양급여를 신청할 수 있게 됩니다.

1개월의 심사 기간 동안 어르신들은 시설난민과 이동쇼크에 고스란히 노출되게 됩니다. 현실적으로 시설의 양도양수를 제한할 법적 근거가 없고, 재지정의 트랙은 비인격적으로 실행되게 됩니다.

이 제도는 행정처분 이력이나 설립자의 장기요양서비스 제공 이력 등을 심사기준으로 심사하여 불량기관을 걸러낸다는 것이 취지인데, 비지정 처분에 대한 취소소송을 제기한다고 하더라도 집행정지가 되기 곤란해 사실상 시설폐쇄와 다름이 없습니다.

따라서 양도양수시 1개월간 어르신의 시설난민과 이동쇼크를 예방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장치가 필요하고, 지정거부 처분에 대한 행정소송시 집행비 정지 문제를 고려한 보완장치가 요구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시설난민, 이동쇼크에 대한 법적 책임 공방이 적지 않을 전망입니다. 정책당국은 악을 제거하기 위한 악한 제도가 약자에 대한 희생만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 김호중 사회복지판례연구소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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