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영 변호사의 법률창] 유전자검사 결과 혈연관계 없어도 ‘친생자 추정’되나?
[윤미영 변호사의 법률창] 유전자검사 결과 혈연관계 없어도 ‘친생자 추정’되나?
  • 송지나 기자
  • 승인 2019.11.0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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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영 법무법인 사람 대표변호사
윤미영 법무법인 사람 대표변호사

요즘 드라마를 보면 부모와 자녀 사이의 유전자 검사 결과를 확인하는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엄마와 자녀의 관계는 병원에서 아이가 바뀌었다는 예외적인 사정이 없는 한 출산을 통해 확인 가능하다. 하지만 아빠와 자녀의 관계는 조금 다르다. 그래서 드라마에서도 엄마와 자녀 보다는 아빠와 자녀의 친자관계를 확인하기 위한 유전자 검사가 더 많이 등장한다.

민법은 부자(父子)관계를 조기에 확정함으로써 가정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친생자 추정제도를 두고 있다. 남편의 자녀라는 점에 대하여 다툼이 있는 경우에는 가정의 평화나 자녀의 복리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민법(제844조, 제846조, 제847조)은 아내가 혼인 중 임신한 자녀를 남편의 친생자로 추정하고, 친생추정을 받는 자녀에 대하여 친생부인의 소에 의해 그 친생을 부인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고 있으며, 친생부인의 소는 그 사유가 있음을 안 날부터 2년 내에 제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민법
제844조(남편의 친생자의 추정)
① 아내가 혼인 중에 임신한 자녀는 남편의 자녀로 추정한다.

제846조(자의 친생부인)
부부의 일방은 제844조의 경우에 그 자가 친생자임을 부인하는 소를 제기할 수 있다.

제847조(친생부인의 소)
①친생부인(親生否認)의 소(訴)는 부(夫) 또는 처(妻)가 다른 일방 또는 자(子)를 상대로 하여 그 사유가 있음을 안 날부터 2년내에 이를 제기하여야 한다.

그 결과 친생추정을 받는 자녀에 대해서는 제소기간(2년)의 제한이 있기 때문에 이 기간 내에 소를 제기하지 않으면 친생자 관계를 부정할 수 없게 된다. 즉 부자(父子)관계를 조기에 확정함으로써 가정의 평화를 유지하게 된다.

다만 아내가 혼인 중에 임신한 자녀임에도 남편의 자녀로 추정되지 않는 예외가 있다. 우리 대법원은 부부가 동거하지 않았을 때 생긴 자녀의 경우에는 친생자 추정 원칙의 예외로 인정하고 있었다. 즉 부부 중 한쪽이 장기간 외국에 거주하고 있었거나, 사실상 이혼하여 남남처럼 살고 있다는 등 처가 부의 자식을 포태할 수 없음이 외관상 명백한 경우에는 친생자 추정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최근 유전자 확인 기술이 발달하면서 용이하게 친자관계 확인을 할 수 있고, 그 정확도 또한 높다. 이에 남편과 자식의 유전자가 다른 것이 확인된 경우에도 친생자 추정을 적용해야 하는지가 쟁점이 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의 부부는 남편이 무정자증이었기에 다른 사람의 정자를 통해서 인공수정으로 첫째를 낳고, 부부의 친자식으로 출생신고를 했다. 둘째가 태어나자 남편은 무정자증이 치유된 것으로 생각하고 친자식으로 출생신고를 했는데, 이후 가정불화로 아내와 이혼 소송을 하는 과정에서 둘째가 혼외 관계로 출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에 남편이 두 자녀를 상대로 친자식이 아니라는 친생관계부존재 확인소송을 냈다.

위 소송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9. 10. 23. “인공수정 자녀는 부부와 실질적인 친자관계 모습을 형성·유지하고, 사회적으로 보더라도 인공수정 자녀는 부부의 자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며, “남편의 동의는 인공수정 자녀에 대해 친생추정 규정을 적용하는 주요한 근거가 되므로 남편이 나중에 자신의 동의를 번복하고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또한 대법원은 “혈연관계 유무를 기준으로 친생자 추정 원칙이 미치는 범위를 정하는 것은 민법 규정의 문언에 배치된다. 혼인 중 아내가 출산한 자녀가 유전자 검사로 남편과 혈연관계가 없다는 점이 밝혀졌더라도 친자식으로 추정된다”고 판단했다.

이는 부부가 동거하지 않은 기간에 태어난 자식에 대해서만 ‘친생자 추정’을 하지 않는다는 이전의 입장을 유지하기로 한 것이다.

법원의 이번 판단은 가족제도를 보호하고 유지할 필요성과 자녀의 복리에 중점을 둔 것이다.

대법원은 “혈연관계 없이 형성된 가족관계도 헌법과 민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가족관계에 해당된다”며 “이러한 가족관계가 오랜 기간 유지되는 등 사회적으로 성숙해지고 견고해졌다면 그에 대한 신뢰를 보호할 필요성이 크다”고 밝혔다.

이 판결에 따라 유전자 검사 결과상 친자관계가 아닌 사실이 밝혀지더라도 그 사실을 안 날로부터 2년 이내에 친생 부인의 소를 제기하지 않으면 친자관계를 부인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유전자 검사 상 친자관계가 아니라고 확인된 경우에도 친생자로 추정해 제소기간의 제한을 두고, 제소기간이 지나면 친생을 부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도록 하는 것은 가족관계 유지라는 입법 취지에만 치우쳐 진실한 친자관계를 확인할 권리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요즘 인공수정과 같은 새로운 형태의 임신과 출산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고, 가정 및 신분관계에 대한 사회의 인식도 변화하고 있다. 이런 변화 속에서 이번 판결은 가정의 평화, 자녀의 복리와 친자관계를 확인할 개인의 권리 중 가정의 평화 및 자녀의 복리 측 손을 들어 준 것이다.

 

<윤미영 변호사 프로필>

- 제51회 사법시험 합격, 사법연수원 수료
-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직무대리 역임
-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 민사조정위원 역임
- 대한변호사협회 산재소송실무 강의
- 現) 법무법인 사람 대표변호사
- 現) 대한변호사협회 인증 산재 전문 변호사
- 現) 수협중앙회 공제분쟁 심의위원
- 現) 서울특별시교육청 행정심판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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