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스칼럼] 행복한 순간의 기억, 사진
[맘스칼럼] 행복한 순간의 기억, 사진
  • 이영화
  • 승인 2014.05.15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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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 어머니는 젊다.

든든한 남편을 옆에 두고 살림 밑천 맏딸, 욕심 많고 야무진 둘째딸, 의젓한 아들에 늦둥이 막내를 앞으로 뒤로 세워놓고 카메라를 응시하는 40년전의 어머니는 젊다.

과거를 추억하는 여러 가지 방법 중에서 오래 된 사진을 보는 것 만큼 낭만적인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동영상처럼 목소리가 녹음 돼 생생하게 상황을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일기처럼 당시의 상황이나 감정을 섬세하게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정지된 화면속에서 많은 이야기를 생산할 수 있다. 게다가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이 함께라면 그리움과 상상력은 배가 된다.

이 사진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1년전쯤 찍었다고 하니 이 즈음이 어머니가 가장 행복한 시절이 아니었을까. 평소엔 무뚝뚝하지만 어머니께 늘 팔 베개를 해주시고 생선 가시 발라 애들 먹이느라 식사가 소홀한 어머니를 보고 밥상에 생선을 올리지 말라셨다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와 철 없는 4남매가 사진을 찍으러 가던 날을 상상해 본다.

그 날, 아버지는 외아들과 목욕탕에 다녀오셨을테고 딸들을 치장하느라 준비가 덜 된 어머니를 가볍게 채근하지 않으셨을까? 서둘러 가솔들을 이끌고 사진관으로 가는 길은 여느때처럼 막내를 안은 아버지가 앞장을 서고 두 딸과 아들이 어머니와 나란히 걸었을 것이다. 

사진관에 들어서서는 여섯 식구 모두 조금은 긴장되고 떨리는 몸짓으로 차례로 머리를 빗고 사진사가 이끄는대로 자리를 잡았을테지. 어머니는 딸들과 아들의 매뭇새를 챙기느라 미처 자리를 잡지 못하였고 아버지는 아마도 어머니의 손을 가볍게 잡아끌어 옆자리에 앉혔을 것이다. 그리고 사진사가 카메라를 쳐다보라고, 눈을 깜박이지 말라고, 웃으라고 말하는 순간, 막내의 구멍난 스타킹이 신경쓰여 치마를 끌어내리던 어머니가 고개를 들자마자...

하나, 둘, 셋 ‘펑!’

그렇게 가난한 여섯식구의 첫 사진관 나들이는 끝이 났다. 어쩌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짜장면이라도 먹고 돌아오지 않았을까?

어느 봄날 행복했던 여섯 식구의 기억이 이렇게 낡은 사진속에 영원으로 남아있다.

요즘은 누구나 언제나 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어디든 함께 하는 스마트폰의 위력이다. 순간순간을 기억할 뿐 아니라 남과 공유할 수도 있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 다시 찍을 수 있다. 수백장의 사진이 이미지파일로 저장돼 간편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순간이 주는 긴장감이나 떨림, 상상력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삭제 버튼을 누르면 그뿐이다. 

그런데 정말 그것으로 족한걸까? 파일로 저장된 추억이라니... 아쉬운 생각이 든다. 사진이라면 현상되고 인화되는 동안 눈을 감았을까? 표정은 어떨까? 하는 기대와 우려의 순간까지 고스란히 추억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온전한 가족으로서 마지막 사진을 찍은 어느 봄 날, 기억에도 없는 그 날이 휴대폰에 담긴 수백장의 사진보다 애틋한 것은 바로 그런 그리움과 떨림, 행복한 기억이 버무려져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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