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문화탐방] 현대 미술이 묻다 “늙으면 안 되나요?”
[BT문화탐방] 현대 미술이 묻다 “늙으면 안 되나요?”
  • 최주연 기자
  • 승인 2019.10.02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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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나미술관 2019 국제 기획전 '아무튼, 젊음 Youth Before Age'
코리아나미술관 2019 국제 기획전 '아무튼, 젊음 Youth Before Age'

[베이비타임즈=최주연 기자] 초고령 사회로 접어드는 대한민국, 하지만 역설적으로 젊고 아름다운 외모에 대한 집착은 그 어느 때보다 심해져가는 듯하다. 한 살이라도 어려보이기 위한 ‘노력’은 나이든 세대뿐 아니라 2030 젊은 세대에게도 숙제처럼 보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숙제가 된 이 ‘노력’은 경제력과 연결된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피부과와 성형외과는 문전성시를 이루고 비싼 퍼스널트레이닝은 ‘줄을 서시오’다. 이뿐인가. 각종 매체들은 앞 다투어 젊어지는 상업적 비결을 소개하고 유목민처럼 이 제품 저 제품을 사 모으다 보면 젊음에 대한 집착은 더욱 심해져 갈뿐이다. 한마디로 갈증 나게 젊어지고 싶어진다.

이렇듯 젊음마저 강박이 되고 빈익빈부익부가 되는 씁쓸한 현실. 한걸음 물러나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는 힐링 포인트가 없을까? 마침 그 답이 되어 줄 반가운 전시가 있어 달려가 봤다.

압구정에 위치한 코리아나미술관(관장 유상옥·유승희)은 지난 8월29일부터 11월9일까지 현대 사회의 '젊음'을 주제로 ‘아무튼, 젊음’을 기획 전시 중이다.

국내외 작가 13인/팀의 사진, 설치, 영상, 관객 참여형 작품 21점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강조되는 ‘젊음’을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 모두를 아우르며 오늘날 젊음이 시사하는 바에 대해 다각도로 조명하는 전시다.

산야 이베코비치(Sanja Iveković)dml 인스트럭션 #1 Instruction #1 Ⓒ베이비타임즈 최주연 기자
산야 이베코비치(Sanja Iveković)dml 인스트럭션 #1 Instruction #1 Ⓒ베이비타임즈 최주연 기자

맨 처음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눈길을 끄는 것은 작은 텔레비전 영상으로 만날 수 있는 산야 이베코비치(Sanja Iveković)의 작품이다. 얼굴에 연필로 뭔가를 열심히 그리고 있는 작가의 모습에 갸우뚱 하다가 그 연필 선들이 마사지 방향을 뜻한다는 것을 알고 화들짝 놀라게 된다.

흑백 모니터에는 작가가 1976년에 실행했던 퍼포먼스가 있고 그 맞은편 컬러 모니터에는 40년이 지난 2015년의 작가가 똑같은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도 젊음에 대한 압박은 여전하다는 점을 드러낸다.

산야 작가는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사진, 퍼포먼스, 비디오, 설치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작업하고 있다. 또한 유고슬라비아계 크로아티아 예술계에서는 최초로 페미니스트적 관점을 작업에서 분명하게 드러낸 작가로 꼽힌다.

바로 옆에는 남성들의 보디빌딩 이미지를 그린 곽남신 작가의 작품들이 벽면을 채우고 있다. 근육에 집착하는 인물들을 과장되게 표현한 것으로 산야 작가의 얼굴에 대한 집착표현과 대비되는 남성들의 마초적인 남성성을 해학적으로 보여준다.

마사 윌슨(Martha Wilson) 미녀 + 야수같은 Beauty + Beastly, 1974/2009 Ⓒ베이비타임즈 최주연 기자
마사 윌슨(Martha Wilson) 미녀 + 야수같은 Beauty + Beastly, 1974/2009 Ⓒ베이비타임즈 최주연 기자
마사 윌슨(Martha Wilson) 나는 내가 가장 무서워졌다 I have become my own worst fear/ 변형 Deformation, 2009/1974 Ⓒ베이비타임즈 최주연 기자
마사 윌슨(Martha Wilson) 나는 내가 가장 무서워졌다 I have become my own worst fear/ 변형 Deformation, 2009/1974 Ⓒ베이비타임즈 최주연 기자

전시관을 찾은 한 여성 관객이 발걸음을 멈추고 바라본 작품은 마사 윌슨(Martha Wilson). 그녀는 27살의 자신과 63세의 지금 모습을 마주보게 하고 아랫부분에 다음과 같이 캡션을 달았다. “미녀 + 야수같은 Beauty + Beastly” 젊을 때는 미녀고 늙은 지금은 야수라니...너무한 것 아닌가 하면서도 속마음이 또 한 번 덜컹거린다.

전지인 작가의 ‘Folder: 직박구리 #젊음’을 설명하는 박혜진 코리아나미술관 큐레이터 Ⓒ베이비타임즈 최주연 기자
전지인 작가의 ‘Folder: 직박구리 #젊음’을 설명하는 박혜진 코리아나미술관 큐레이터 Ⓒ베이비타임즈 최주연 기자

다음 작품은 전지인 작가의 ‘Folder: 직박구리 #젊음’이다. 전시관을 가로 질러 매달린 은색 아크릴 거울 안에  ‘젊음’을 주제로 여러 나라들의 속담들이 새겨져 있다. 속담들은 하나같이 불편한 내용이다. ‘마흔 남자는 꽃처럼 젊지만, 마흔 너는 쓰레기 더미의 오래된 질그릇 조각’ 이란 문구를 읽다 문득 시선을 올리면 거울 속에 내 자신이 보인다.

전지인 작가는 관람객에게 속담으로 야기되는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동시에 사회적으로 합의된 개념에 암묵적으로 부응하게 되는 사회의 일원으로서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아리 세스 코헨 (Ari Seth Cohen)의 어드밴스드 스타일 블로그
Ⓒ아리 세스 코헨 (Ari Seth Cohen)의 어드밴스드 스타일 블로그

전시장에는 반가운 사진작가의 이름도 보인다. 10년 전부터 어드밴스드 스타일이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며 멋진 실버 세대들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는 아리 세스 코헨 (Ari Seth Cohen)이다. 그가 촬영한 사진 속 시니어들은 젊은 외모에 집착하지 않고 각자의 개성을 살려 멋지게 차려 입은 모습이다. 그들은 ‘젊음’은 외모가 아닌 내면의 열정으로 판단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영상 작품들도 시선을 끈다. 존 바이런(Jon Byron)의 ‘틈을 조심하세요 Mind the Gap’는 작은 오해에서 비롯된 세대갈등을 보여준다. 줄리아 샬럿 리히터(Julia Charlotte Richter)의 ‘재생 누르기(토끼를 쫓아라) push play (chase the rabbit)’도 남성의 모습에 여성의 인터뷰를 입혀 젠더로 구분되는 사회규범을 꼬집는다.

리딩 & 라이팅 룸에서 만날 수 있는 관객들의 이야기 Ⓒ베이비타임즈 최주연 기자
리딩 & 라이팅 룸에서 만날 수 있는 관객들의 이야기 Ⓒ베이비타임즈 최주연 기자

전시관의 마지막 코스에 자리한 리딩 & 라이팅 룸은 ‘젊음’과 ‘나이 듦’에 관한 책을 다양하게 읽어볼 수 있다. 또한, 테이블에 비치된 사진들 중 마음에 드는 사진을 골라 떠오르는 문구를 적은 뒤, 붙일 수 있다. 관람객들이 사진에 남긴 글들을 하나씩 읽어보는 것도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좋은 시간이 될 것이다.

코리아나미술관은 지난 16년 간 ‘신체(body)’와 ‘여성/여성성(women/femininity)’ 담론 연구를 바탕으로 현대미술 전시를 꾸준히 기획해 왔다. 박혜진 코리아나미술관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를 기획하면서 부모 세대와 우리 세대의 관계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며 “고령사회에서 젊음과 나이 듦의 기준이 다시 구분되어야하는 만큼 관람객들이 의미를 다시 느껴볼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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