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수의 유머학개론] 자신에게 맞는 유머를 찾아보세요
[이정수의 유머학개론] 자신에게 맞는 유머를 찾아보세요
  • 송지나 기자
  • 승인 2019.09.30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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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수 개그맨 겸 주부작가
이정수 개그맨 겸 주부작가

행복한 가정 만들기를 위해서 4년 동안 열심히 말하고 글을 썼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은 배제한 채 상처에 약만 바르고 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뭘까?’하고 고민하던 중에 도달한 것이 유머의 부재였습니다. 가정에 유머가 없으니 그냥 넘어갈 일도 진지하게 들어가게 되는 거죠. 그러다 싸우고.

육아를 함에 있어서도 유머가 너무 없습니다. 아이들이 사고를 쳐도 내가 웃을 수만 있다면 사고가 아닌데, 내가 화가 났으니까 그건 사고가 됩니다. 그러면서 우리 아이들은 사고뭉치가 되어 가죠.

이런 상황에서 제가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원래 괜한 사명감 같은 것이 있거든요! 그래서 유머교습소를 차렸습니다. 물론 실제 학원 같은 것을 차린 것은 아니고, 수강신청을 받아서 임의 장소에서 1대 1로 무료 강의를 해드리는 겁니다.

다수를 상대로도 유머를 알려 줄 수는 있지만, 사실 유머는 자신의 성향에 맞는 유머가 따로 있거든요. 그래서 직접 대화를 하면서 본인에게 맞는 유머가 무엇인지 알아가는 과정을 갖고, 그 다음에 어떤 유머가 좋겠다는 이야기를 해드리죠.

수강신청을 제일 처음으로 하신 분은 나이가 저보다 훨씬 많은 어르신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누님으로 호칭했습니다.

이분은 본인의 유머보다는 남편의 유머가 재미가 없어지고 저렴해졌다는 고민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어떤 분인지 물었더니, 남편분과 첫 만남 때 유머를 아직도 추억으로 간직하고 계셨습니다. 남편은 미국 시민권자셨는데, 당시 마치 자니윤씨를 연상시키는 고급스런 미국 유머를 사용하셨답니다. 그런데 지금은 자꾸 몸으로 웃기려고 해서 웃기지도 않고 정색하게 된다고요.

그래서 결혼 전의 이야기도 듣고 싶었습니다. 결혼하기 전부터 누님은 미래 남편에 대한 기준이 있었답니다. 아버지께서 건설 일을 하셔서 불안한 생활을 경험하며 자란 터라 남편은 집안도 괜찮고 직장도 아주 안정적인 사람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답니다.

그 이야기까지 듣고 나니 이분의 유머 방식이 상당히 수동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 자신을 웃겨줘야 웃을 수 있는 것이죠.

수동적인 유머도 유머의 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머에도 음양이 있거든요. 누군가 나를 웃기기 위해서 노력하면 나의 웃음으로 상대에게 즐거움을 주는 방식이죠. 그런데 이 방식에는 반드시 포용력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상대가 유머를 할 때 그 유머가 더 넓고 다양해 질 수 있도록 가능한 범위를 넓혀두는 것이죠.

그러나 사람은 안타깝게도 나이가 들면서 더 보수적이 되고 포용력이 좁아집니다. 게다가 자주 보는 사람일수록 유머의 소재가 금방 고갈되고, 패턴이 읽혀서 더 웃기기가 어렵습니다.

이 누님의 남편분이 이런 상황에 있는 것이죠. 원래 이 남편분은 유머가 많고 웃기려는 노력도 많이 하시는 분입니다. 누님이 원하는 성향의 사람을 잘 고르신 거죠. 그런데 소재는 고갈되고 상대의 평가는 점점 박해지니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누님에게 포용력을 넓히고 잘 웃는 연습을 해보라 제안을 드렸습니다. 남들이 나를 진짜 웃겼을 때만 웃는다면 점점 웃을 일이 없어질 뿐이라고요. 웃기려는 사람이 웃어주는 사람보다 힘듭니다. 그 마음을 헤아려야죠. 웃겼다고 돈 받는 사람도 아니니까요.

이어서 30대 중반의 남자 수강생이 왔습니다. 저보다는 어려 보였지만 형님이란 호칭이 편해서 형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분은 이미 보이는 모습이 후덕하니 웃길 것 같은 느낌이 물씬 났습니다. 좋아하는 개그맨을 물었습니다. 김준현 씨라네요. 어울릴 것 같았습니다. 김준현 씨는 일종의 먹잇감이 되어서 웃기는 스타일인데, 이 분도 그럴 것 같았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개그맨의 유머를 방식을 따르게 되거든요.

아니나 다를까 이분도 속되게 말하면 아내가 자신을 까서 웃기는 경우가 많답니다. 심지어 아주 맛있게 까서 사람들이 너무 좋아한답니다. 게다가 처가댁에 가면 아내뿐만 아니라 처제, 장모님까지 이분이 말실수 하나만 하면 그걸로 30분은 웃는답니다. 이런 집에 좋은 먹잇감이 장가를 들었으니 얼마나 신나겠나 싶었습니다.

‘이분 또한 수동적인 유머를 구사하는 분이구나’하고 단정 지어 갈 무렵 이상한 점을 발견 했습니다. 한 번씩 마음의 응어리가 터져서 몇 시간 동안 아내를 붙잡고 논리적 잔소리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생일을 물었더니 전갈자리더라고요.

전갈자리는 복수의 화신입니다. 독설을 잘하고 당한만큼 갚아주는 성향의 사람들이죠. 어쩌면 더 갚아줍니다. 자존심도 상당해서 자신이 무시를 당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면 여지없이 복수의 칼날을 갑니다. 그런데 이런 성향의 사람이 쭉 먹잇감 노릇을 하고 있으니 주기적으로 살풀이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공격적 성향의 사람이었는데, 수비적인 유머를 하고 있었던 겁니다.

아마 이분은 원래 공격적 성향의 유머코드를 가지고 있었는데 성장하면서 그 방식보다는 지금처럼의 수동적 방식이 사람들과 어울리기 더 좋았다고 학습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쭉 그 유머 패턴을 유지했는데, 결혼은 일반 대인관계와는 달랐던 겁니다. 사회생활은 어쩔 수 없이 화를 참고 지내야 하는 상황이 많지만 배우자에겐 본 모습이 제한 없이 나올 수 있어서 터지는 거죠.

이분 또한 자신에게 맞지 않는 유머코드를 유지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아내와 처가댁의 유머코드는 이미 확고하게 정해져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식의 유머는 이어질 것이고요. 그런 상황 속에서 이분은 어떻게 해야 아내의 패턴도 바꾸지 않고, 자신의 유머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요?

억울한 사람의 하소연으로 유머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분이 주기적으로 터지는 과정을 보면 놀림을 당하면서 참고 참다가 터지는 겁니다. 결국 놀림 당하면서 억울했던 감정이 있는 것이죠. 이 억울했던 감정을 피해자의 입장에서 하소연을 하는 겁니다.

여기서 피해자의 입장이라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피해자는 상대적 약자입니다. 그런데 화가 나서 상대에게 살을 날리듯이 화를 내면 약자의 입장이 아닙니다. 상대보다 위치가 상위가 됩니다. 그럼 유머가 아니죠. 상대보다 낮은 위치에서 상대에게 따져야 유머가 될 수 있습니다.

어린 아이가 억울하다며 떼를 쓰고 울면 귀엽고 웃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섭지 않죠. 아이가 나보다 약자여서 그렇습니다. 나보다 위치가 아래인 사람의 반항은 귀여울 뿐이죠. 그러니 이 형님은 노기만 잘 제어하면 자신의 분도 풀고, 웃음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이렇듯 사람마다 자신에게 맞는 유머가 있고, 적절한 상황이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나 적재적소에 어울리는 유머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드립의 신’이라고 불리는 신동엽 씨도 야외 예능은 안 합니다. 자신에게 안 맞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신동엽 씨도 이런데 일반인은 오죽하겠습니까? 하지만 최소한 자신이 자주 노출되는 상황과 장소에선 편한 자신의 유머를 사용할 수 있어야죠.

자신의 유머를 찾아보세요. 나는 주로 어떤 순간에 웃었으며 어떻게 웃겼었는지, 그런 순간들을 기억해서 다시 반복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방식에 경험이라는 살을 붙이는 거죠. 그러면 그것이 자신의 유머가 됩니다. 당신도 유머를 할 수 있습니다.

 

<개그맨 이정수 프로필>
- 현) 네이버 칼럼니스트
- 현) EBS 라디오 행복한 교육세상(라행세) 출연
- 이리예 주양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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